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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비유되곤 한다. TV,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등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첨단 전자기기의 필수적인 부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일본,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반도체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한 경제학자는 “감자칩과 컴퓨터 칩이 뭐가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저임금 공장 노동자를 찾던 미국 기업가들이 동아시아의 풍부한 노동력에 매력을 느꼈고, 이 지역 정부와 기업은 실리콘밸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생산기지 역할을 자임했다. 그 결과 오늘날 대만에서 생산하는 칩은 매년 세계가 소비하는 새로운 연산력의 37퍼센트를 제공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두 기업은 세계 메모리 칩의 44%를 생산하고 있다. 그 어떤 산업 분야보다도 극소수 특정 지역, 특정 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영역이 바로 반도체 생산 분야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오늘날 세계 반도체 공급을 위험에 빠뜨리는 가장 심각한 지정학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패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면서 양국은 모두 산업과 안보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반도체를 통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대만, 그리고 TSMC가 있다. 대만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TSMC의 최신 반도체 제작 설비를 향한 중국의 단 한 발의 미사일 공격만으로도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자동차, 통신망 등 현대 사회의 첨단 기술 전반에 걸쳐 수천억 달러를 훌쩍 넘는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적 갈등 상황에 글로벌 경제 전체가 인질로 잡혀 있는 현시점에서, 반도체 산업의 태동부터 미·중 패권 대결, 한국과 대만, 일본, 실리콘밸리의 치열한 기술 경쟁과 미래 전략까지 반도체 산업의 70년 역사를 담아낸 논픽션 역사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과 패권전쟁을 조망하며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어느 쪽이 되리라 속단하지 않는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