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자문위원 장 지글러는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빈곤과 불평등의 현장과 이를 외면하는 구조를 간결하고도 엄중하게 전했다. 물론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그는 다시금 입을 열고 마음을 펼친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던 대화는 세월의 깊이를 더해 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로 바뀌었고, 대화의 주제도 오늘날 빈곤과 불평등의 근원이라 할 자본주의로 넓어졌다.
이 책은 80대 중반에 이른 그가 동시대에 전하는 고발이자 다음 세대에 전하는 희망이다. 그는 세계를 뒤덮은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이를 해결하고 대체할 새로운 방법을 시원하게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전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다만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다고, 그럼에도 지금의 사회는, 그러니까 5초마다 10세 미만 어린이 한 명이 굶주려 생명을 잃는 상황은 결단코 원치 않는다고, 방법을 모른다고 해서 희망까지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외친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처참하고 엄혹한 이야기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다행히 인류에게는 각각의 신념과 행동으로 역사를 바꾸어낸 경험이 여럿이고, 그 경험은 아직 잊히지 않았고, 그렇기에 여전히 시도할 수 있는 희망이니, "지금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고민해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