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롤스는 1921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195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반성적 균형 상태’라는 개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부터 2년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 기간 세미나를 통해 벌린, 하트, 햄프셔와 같은 철학자, 법학자, 정치학자와 나눈 지적 교류는 이후 롤스 철학의 지적 토대가 되었다. 코넬 대학의 부교수를 거쳐 MIT 철학과의 토대를 닦았으며 1962년 하버드 대학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 1971년 발간한 『정의론』은 학술서로는 드물게 50만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3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후 『정치적 자유주의』와 『만민법』을 출간하며 정의론 3부작을 완결 지었다. 엄격한 철학자 이전에 인자한 스승으로 존경받았던 롤스는 2002년 매사추세츠 렉싱턴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상적으로 사회 계약론의 전통에 서 있는 롤스는 20세기의 칸트로 불리며, 20세기 중반 영미 세계에서 사실상 사라진 정치 철학을 부활시킨 철학자로 여겨진다. 『정의론』이 출간된 이후 이 책을 둘러싸고 일어난 찬반 논의가 영미 세계 정치 철학의 주류를 이루었고, 결과적으로 ‘정의’는 당대 영미 정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정치 철학자로 성공하려면 롤스를 비판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며, 실제 공동체주의, 자유지상주의, 완전주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등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점에서 롤스는 당대 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시작이자 이에 맞서는 철학의 시작이기도 했다. ‘공정으로서 정의’로 요약되는 롤스의 철학적 관심은 일관되게 ‘정의’였으며, 이런 관심은 이후 자유주의 사회에 만연한 화해할 수 없는 신념들의 공존을 다룬 『정치적 자유주의』와 국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민들의 공존을 다룬 『만민법』으로 확장되었다. 롤스의 사상은 칸트, 로크, 루소, 헤겔, 밀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자유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마르크스에도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롤스의 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은 『정의론』이다. 『정의론』은 수많은 생소한 개념으로 지어진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탓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의론』의 서문에는 롤스 스스로 친절하게 독자들이 읽어야 할 부분을 상세히 짚어 주고 있다. 독자들은 『정의론』을 통해 롤스의 정의관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 ‘정의의 두 원칙’, ‘차등 원칙’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관심이 생긴다면, 이에 관한 롤스의 강의록인 『공정으로서의 정의 ? 재진술』을 함께 읽으면 좋다. 서두에 등장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 정의”이며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볼 수 있듯 『정의론』은 사회 전체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유린될 수 없는, 정의가 보장하는 권리들의 내용을 탐구하고 있다. 롤스는 ‘쾌락’과 ‘고통’이라는 두 주권자가 만들어 내는 효용 지상주의(공리주의)가 사회 제도와 행위 전반에 퍼져 있는 현실에 맞서, 사회 구성원들의 공정한 협력 조건으로서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 자유의 보장과 정당한 사회 경제적 자원의 분배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롤스가 주목하는 것은 분배 문제인데, 사회가 생산과 분배의 체계라고 할 때 사회 갈등은 협력을 통해 생산하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몫이 얼마여야 하는가’라는 분배의 문제에서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롤스는 기업가 계층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사회 구성원과 비숙련 노동자 계층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구성원들이 출발선상에서 지니는 삶의 전망의 불평등을 직시하며, 이런 최초의 불평등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묻는다. 롤스는 『정의론』을 통해 이러하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을 찾고 있으며, 정당화된 조건하에서만 공정한 사회적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정당화된 조건을 ‘정의의 두 원칙’에 담아내고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시민들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규정하고 확립한다. 제1원칙에 따르면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신체의 자유, 사유 재산권, 부당한 체포나 구금을 당하지 않을 자유 등은 시민들의 기본적 자유로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할당되어야 한다. 한편 두 번째 원칙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규정하고 확립한다. 제2원칙에 따르면 재산과 소득의 분배가 반드시 균등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불평등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특히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차등 원칙). 그리고 공직을 비롯한 사회적 직책은 누구나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공정한 기회의 원칙). 롤스는 이 정의의 원칙들이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용될 때 사전적 서열을 이룬다는 점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제1원칙은 제2원칙에 항상 우선하며, 제2원칙 내에선 공정한 기회의 원칙이 차등 원칙에 우선한다. 이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이유로 개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때 ‘공정한 기회의 원칙’과 함께 제2원칙을 구성하고 있는 ‘차등 원칙’을 주목해서 살펴보면 좋다. ‘차등 원칙’은 정당화될 수 있는 불평등의 근거가 보다 ‘평등’한 상태를 추구하는 행위에 있음을 보여 주는데, 이런 불평등으로부터의 평등 실현이 일어나게 되는 사회 구조에 어떻게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게 되는지에 주목하며 읽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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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을 읽었다면, 다음 단계로 나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아주 쉬운 일이다. 『정의론』 다음으로 읽으면 좋은 책은 당연히 정의론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정치적 자유주의』다. 이 저작의 기본 구조는 『정의론』의 골격과 유사하지만, 이를 통해 롤스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상당히 다르다. 『정의론』이 기본적 자유와 사회 경제적 자원의 공정한 분배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면, 『정치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화해할 수 없는 상이한 신념들의 공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롤스는 현재의 자유주의 사회가 더 이상 하나의 결속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는 데 주목한다. 공동체는 어떤 하나의 신념이나 가치 아래 구성원들이 서로 결속할 수 있는 정치 집단인 반면, 자유주의 사회는 다양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덕 신념들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이제 자유주의 사회에는 시민들을 공동체인 양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압도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다양한 신념들이 때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종교 개혁 및 전쟁 이후 서구 사회에 만연한 이런 다원주의의 현실을 직시하고, 더 이상 같은 신념을 공유할 수 없는 이들이 신념의 불일치를 극복하여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롤스는 정치 철학의 임무가 이런 분열된 신념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공동체가 될 수 없는 사회 세계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말하며, 헤겔의 용어를 빌려 ‘인간과 사회 세계의 화해’라고 표현한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프로젝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롤스가 내놓는 ‘합리적인 것(the rational)’과 ‘합당한 것(the reasonable)’의 개념 구분에 주목해야 한다. 롤스는 누군가에게 ‘합리적인 것’이 동시에 누군가에는 부당하고 심지어 무법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롤스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일관적으로 전제하는 ‘합당한 것’의 개념은 이런 ‘합리적인 것’의 단점을 보완한 개념이다. 롤스에 따르면, 합당한 시민들은 가치 분열로 인해 자신들의 사회가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 왔음을 알고 있기에 자신들이 손해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라도 공정한 협력의 조건을 상호 간에 제시하고 받아들이고 준수하고 그것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다. 이때 롤스가 말하는 공정성이란 결과나 절차의 공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협력의 조건을 합의를 통해 서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그 협력의 조건이 만들어지는 구체적 과정은 어떻게 되며, 나아가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 것일까? 더 중요하게는 분열된 신념을 지닌 구성원들이 어떻게 이런 협력의 조건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독자들은 ‘중첩적 합의’와 ‘공적 이성’이라는 개념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 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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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자유주의』를 다 읽었다면 이제 3부작의 마지막이자 국제 사회의 정의론을 다룬 『만민법』을 읽어 보자. 세계화 시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민법』은 어느 정도 낡은 관점에 기대고 있는 정의론이라 할 수 있다. 『만민법』의 좀 더 정확한 번역은, 사실 영문 제목 그대로 『인민들 간의 법』이다. 여기서 롤스는 ‘인민(the people)’이라는 용어를 전통적인 주권 국가를 부정하는 입장에서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인민이 국가를 대체한 용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롤스는 국제 사회에서 중심적인 행위자를 여전히 ‘국가’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 저작은 세계화라는 새로운 환경과 맞물려 등장한 세계 시민주의, 탈민족 국가 이론, 초민족 국가 이론 등과 대척점에 선다. 특이한 점은 지구적 차원의 분배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세계 시민주의 정의론의 시작이 바로 『정의론』의 차등 원칙이라는 점이다. 롤스의 많은 제자들이나 지지자들이 이 차등 원칙에서 영감을 얻어, 선진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반복되는 착취 등으로 생겨나는 개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세계 시민주의 프로젝트를 추구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롤스는 자신이 『정의론』에서 내세운 차등 원칙이 국제 사회에 적용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저를 이루는 신념인 다른 이들에 대한 ‘관용’이야말로 국제 사회 정의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롤스는 『만민법』의 토대가 된 동일한 제목의 논문을 1993년 내어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내어놓은 것과 같은 해였다. 롤스는 논문 「만민법」에서 자유적 사회가 어떻게 비자유적 사회, 특히 이슬람 사회와 같이 종교적으로 위계적인 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지 제시하며, 이런 협력이 바로 미국 외교 정책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사회는 어떻게 다른 문명 사회와 관용을 통해 협력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상대 국가들이 협력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협력의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롤스의 정의론 3부작을 다 읽고도 더 알고 싶다면, 그의 하버드 대학교 강의록인 『도덕 철학사 강의』와 『정치 철학사 강의』를 읽어 보면 도움이 된다. 이 두 강의록과 롤스의 정의론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강의록의 군데군데에서 어떤 사상가들이 롤스의 저작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 철학사 강의』에서는 롤스가 자신의 정의관의 밑바탕인 칸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확연히 볼 수 있다. 이 강의록은 영어로 쓰여진 글 중 칸트에 관한 최고의 해석으로 손꼽힌다. 더불어 롤스가 정치 철학이 행하는 임무의 단초를 찾은 헤겔 사상도 맛볼 수 있다. 『정치 철학사 강의』에서는 롤스 사상의 기반인 사회 계약론을 기초한 홉스, 로크, 루소 등을 만나 볼 수 있으며, 롤스가 미국 정치 문화의 일부라 여기는 밀과 함께, 자유주의에 대한 열려 있는 비판으로서 마르크스 읽기도 찾아볼 수 있다. “가능한 것의 한계는 현실적인 것이 짓지 않는다”고 확고히 믿었던 롤스. 그래서 정치를 권력이 아닌 정의와 도덕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모든 냉소를 경계했던 롤스. 롤스를 읽을 때 문득 이런 냉소적인 생각이 든다면 롤스가 『정치 철학사 강의』에서 힘찬 어조로 남긴 이 말 한마디를 상기하면 좋겠다. “만약 그들의 말이 옳다면, 이런 원칙들과 이상들을 되뇌이고 호소하는 도덕과 정치의 언어는 이미 오래전에 작동하길 멈추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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