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는 192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포화를 피해 남프랑스로 피난을 간 동안 자신을 철학으로 이끈 스승을 만났으며, 결핵 수술 후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당시의 파리 지식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1962년 『니체와 철학』을 출판함으로써 프랑스 현대 철학의 새 장을 열었으며, 68혁명 이후 인생의 동지 펠릭스 과타리와 만나 공동 작업을 통해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 그리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같은 결과물을 남긴다. 평생의 질병인 폐결핵 및 천식과 맞서면서도 심한 음주와 흡연을 멈추지 못하던 그는, 1995년 인공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던 몇 년의 무력한 삶을 끝장내고자, 가족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능동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들뢰즈는 현대 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다시 말해, 들뢰즈는 자신에게 유입된 이전 시대의 모든 철학적・사상적 주제를 종합하여 독자적인 체계를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선배는 니체이다. 들뢰즈는 니체의 가장 난해하고 비밀스러운 사상인 ‘영원 회귀’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여 ‘차이와 반복’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차이’란 생성의 본질이며 ‘반복’이란 생성의 순간의 되풀이이다. 그리하여 ‘영원 회귀’ 사상은 ‘차이 생성의 되풀이’로서의 존재론으로 다시 서술되며, 이러한 존재론은 윤리학, 정치학, 미학으로 확장된다. 들뢰즈의 철학이 존재론을 출발점으로 삼는 까닭은, 모든 실천은 존재의 운행을 위배하면서 도모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들뢰즈의 실천 강령은 무엇인가? 자신의 힘의 끝까지 펼침으로써 그 어떤 회한도 남기지 않을 방식으로 행동하라는 것이 그 하나이며, 신경 체계에 직접 작용할 수 있는 감각을 창작하라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런 행위의 우연한 결과들의 종합이 세계를 바꿀 유일한 틈새이다
사후 약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들뢰즈의 철학 사상은 여전히 국내외를 막론하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들뢰즈 국제 학회에서 절실히 체험한 사실이다. 들뢰즈는 이해를 위한 노력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당분간 더 필요한 철학자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사실인데, 한국에서 들뢰즈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 동안의 한국의 들뢰즈 수용사에서 들뢰즈의 철학에 접근하는 데 있어 오히려 해로움을 끼친 소개자들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들뢰즈 관련 서적을 고를 때에는 더욱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처음 입문하는 경우라면, 어려운 감이 있더라도 어떤 점에서 들뢰즈의 철학이 독자성을 지닐 수 있는지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점을 간과할 경우, 한 철학자의 고유함이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 속으로 용해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소개들은 들뢰즈의 철학을 본래의 맥락에서 완전히 떼어 내서,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보수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인 방향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들뢰즈를 배반한다. 단언컨대 이들의 소개를 한 글자 한 글자 짚어 가면서 검토해 보면 문제점이 명백히 밝혀지게 될 것이다. 들뢰즈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원전을 직접 읽는 것이 왕도이나 언어의 장벽, 서술의 불친절함, 번역의 부실함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입문을 위해 가장 적합한 책은, 이정우가 번역에 참여한 우노 구니이치의 『들뢰즈, 유동의 철학』이 아닐까 한다. 우노는 들뢰즈 밑에서 아르토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들뢰즈의 『푸코』, 『주름』,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우노의 이 책은 들뢰즈 사상의 개요를 일본인 특유의 교과서적인 방식으로 정리했으며, 교과서가 지닌 한계보다는 장점을 잘 보여 준다. 요컨대 입문자에게 필요한 사상의 얼개를 잘 정리하고 있다. 그는 들뢰즈 철학의 단계를 『차이와 반복』의 전후, 『안티 오이디푸스』 및 『천 개의 고원』, 나아가 이미지 철학으로 구분하면서 정리하는데, 이 구분은 들뢰즈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대표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너무 도식적인 뒷맛을 남긴다는 아쉬움이 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여행 안내소에서 구할 수 있는 지도 정도로 여기면 좋겠다. 입문자에게 권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원전으로는 『디알로그』(1977)를 꼽고 싶다. 이 책은 들뢰즈가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클레르 파르네와 행한 대담인데, 여기서 들뢰즈는 자신의 사상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풀이하고 있다. 『카프카』(1975)를 제외하고는, 『안티 오이디푸스』(1972)와 『천 개의 고원』(1980) 사이에 출간한 유일한 저작임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이 지닌 독특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들뢰즈가 이렇게 친절하고도 쉽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저술은 극히 드물다. 1988년 들뢰즈는 파르네와 나눈 대담을 녹화하는데, 이는 들뢰즈 사후인 1996년 ‘들뢰즈 ABC(L’Abecedaire de Gilles Deleuze)’라는 제목으로 ATRE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었으며,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영어 대본을 구할 수도 있다. 들뢰즈의 흔치 않은 대담들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들뢰즈 철학의 입문으로 삼기에 유용한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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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가장 중요한 저술은 『차이와 반복』도 『의미의 논리』도 아닌, 『니체와 철학』이다. 유독 한국에서 의의가 과장된 책이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인데, 이 책들이야말로 초반부터 독자의 기를 꺾는다는 점에서 가장 나중으로 미루는 편이 좋다. 반면 독자가 『니체와 철학』을 잘 소화했다면, 이후에 전개될 들뢰즈 철학의 핵심 주제들 대부분을 거의 다 이해했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국내에 소개된 번역에는 아쉬움이 크다. 다른 언어 번역으로라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다행이 들뢰즈는 이 책의 요약본도 출간했는데, 『들뢰즈의 니체』가 그것이다. 분량이 짧은 것은 아쉽지만, 이 책은 니체의 생애에 대한 강렬한 소개, 니체 철학의 얼개, 니체의 주요 개념 해설, 니체의 주요 구절 발췌 등을 통해 들뢰즈 자신의 관점으로 그린 니체의 초상을, 어쩌면 들뢰즈 자신의 그것이기도 한 초상을 보여 준다. 니체 철학을 구성하는 두 축인 ‘힘’과 ‘권력(권력 의지)’은 니체 자신과 들뢰즈 자신에 대한 숱한 오해를 낳는 부분이면서도 결국은 들뢰즈 철학의 핵심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욕망의 본질이 생산과 구성이라는 점은 니체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주요 선배 가운데 니체만큼은 아니지만 중요한 영향을 준 학자는 스피노자이다.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라는 대작은, 역시 아쉽게도 번역 상태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다행히도 들뢰즈는 이 책의 요약본에 해당하면서도, 개정 증보판에 추가적인 논문을 보태어 『스피노자의 철학』을 출간했다. 꽤나 압축적으로 쓴 책이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들뢰즈의 관점으로 그린 스피노자의 초상을 아주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생애, 윤리와 도덕의 차이, 『에티카』의 주요 개념 해설, 스피노자의 현재적 의의 등 양적으로 『들뢰즈의 니체』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준다. 특히 마지막 논문 「스피노자와 우리」는 처음 발표된 글에 동물 행동학자 윅스퀼과 관련된 내용을 추가하여, 후반기 들뢰즈 사상의 변모(affect 개념)를 잘 짐작게 해준다. 참고로, 들뢰즈가 긴 저술을 요약본 형태로 다시 출판한 것은 『들뢰즈의 니체』와 『스피노자의 철학』 두 권뿐이다. 들뢰즈를 소개한 중요한 학술서로는 서동욱이 2000년대 초반에 출판한 『차이와 타자』 및 『들뢰즈의 철학』을 꼽을 수 있다. 서동욱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들뢰즈 철학을 독자적으로 연구, 소개했다. ‘생각에 대한 이미지’, ‘주체 및 타자’, ‘법’, ‘기계’, ‘예술 철학’, ‘초월론적 경험론’, ‘사후성’, ‘존재론’, ‘오이디푸스 비판’, ‘욕망’ 등 들뢰즈의 주요 주제를, 그것도 다른 사상가들과 비교하면서 다루었다는 점은 한국의 들뢰즈 연구사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물론 세월이 흐른 현재 시점에서 보았을 때 개념 번역어의 선택이나 원전 해석의 맥락 측면에서 아쉬움을 보여 주긴 하지만, 서동욱은 들뢰즈를 학술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학자이며 이후의 모든 들뢰즈 연구자 및 독자는 그의 저서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차기 들뢰즈 연구서도 조속히 출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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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철학자들이 난해함으로 인해 독자를 괴롭히지만 그 정도가 들뢰즈보다 더한 철학자는 철학사에 없을 것이다. 특히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전통 철학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고 문학과 예술, 수학과 과학, 정치와 경제, 기술과 의학 등 모든 인간 활동 분야의 자원을 활용한다는 점이 연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필자 또한 그 어려움을 겪으면서 『베르그송주의』, 『천 개의 고원』, 『들뢰즈 커넥션』 등의 책을 번역했으며, 2014년 6월 현재 『안티 오이디푸스』 번역을 마친 상태이고, 오랜 시간을 바쳐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이라는 학위 논문을 썼다. 외람되지만, 이 논문을 고급 독자에게 들뢰즈에 대한 입문서로 소개하고자 한다(출판되지 않았으나, 서울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들뢰즈에게 영향을 끼친 핵심 사상가인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손에 대한 들뢰즈의 연구를 새로운 관점으로 요약한 것으로, 들뢰즈 철학에서 마르크스의 위상에 대한 독창적 논의가 개진되었으며 들뢰즈 존재론의 얼개와 의의, 정신분석 및 자본주의 비판, 분열증의 긍정적 의미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최근에 저술된, 그것도 한국어로 쓴, 의미 있는 연구서의 하나라 자부한다(논문 일부가 이미 외국 저널에 발표되었기에 이런 과한 표현에 양해를 구한다). 들뢰즈가 과타리와 함께 쓴 모든 책은 고급 독자의 도전을 기다린다. 그러나 『카프카』와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번역 및 역주는 끔찍한 수준이다. 한편 『천 개의 고원』의 서론인 「리좀」은 길지 않은 분량이면서도 저자들에 의해 단독으로 출판된 적도 있으니, 반드시 읽어 보기를 권한다. 기존의 책의 서술 방식을 완전히 넘어서 있는 이 글은 우리의 생각을 뿌리째 뒤흔드는 ‘새로운 생각’을 담고 있다. 나무 또는 뿌리 형태의 생각과 리좀 형태의 생각을 예리하게 분리하면서도, 양자가 초월적으로 단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막대의 양 끝처럼 서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부단한 실천만이 리좀의 운동성을 살리고 혁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할 수 있음을 저자들은 주장한다. 『천 개의 고원』이라는 방대한 책을 다 읽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겠으나, 차라리 도서관에서 「리좀」 부분만 반복해서 보는 편이 더 효율적이리라 본다. 일단 어떤 식으로건 들뢰즈의 철학의 핵심을 맛보고 나면 다른 책들을 읽는 것이 그만큼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독을 통해 들뢰즈를 정복해 보고자 하는 의욕을 북돋우는 책으로 『안티 오이디푸스』를 꼽고 싶다(이 책은 2014년 6월 현재 새로 번역되어 출간 준비 중이다). 과타리와 만나 작업한 첫 저서이자 68혁명의 열망과 좌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책은, 훗날 『천 개의 고원』으로까지 연장되지만, 단독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 들뢰즈의 철학적 토대인 존재론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직전 저작인 『의미의 논리』에 등장하는 ‘종합 이론’은 완전히 폐기되며, 『안티 오이디푸스』에 이르러 비로소 끝까지 지속될 갱신된 모습으로 정립된다. 또한 정신분석을 현대의 신학이라 비판하면서 완전히 결별하고, 혁명적 정치를 위해 ‘분열?분석’이라는 새로운 실천학을 제시한다. 나아가 국가의 역할, 자본주의 체제, 화폐와 시장에 대한 면밀한 역사적?논리적 분석을 통해 현재 세계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선견지명 있는 고찰을 보여 준다. 그리고 니체와 마르크스의 행복한 결합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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