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내 삶의 거의 대부분 시간을 우리말의 곡진한 결을 가진 방언 수집과 연구에 공을 들였다.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에 발맞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적 방언조사 사업에 조사연구원으로 첫 발을 디딘 후에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방언지도 연구를 위해 공부하러 다녀오면서 컴퓨터를 활용한 K-mapmaker라는 방언지도제작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국립국어원장 시절에는 폐쇄적인 표준어 정책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기 위해 남북방언조사사업을 비롯한 일상생활전문용어 조사사업 추진과 더불어 한국시인협회를 통해 전국 방언으로 쓴 시집 간행을 도왔다. 대학 교단에서 내려서면서 『세계 속의 방언』이라는 퇴임기념논문집을 꾸몄다. 방언 교재를 비롯한 방언 관련 방언지도집과 방언의 미학을 비롯한 영국, 중국, 일본 등 해외 방언 연구서의 번역과 문학방언 연구서도 여러 권 간행하였다. 방언 자료조사와 정리 그리고 해석이라는 연구 목표와 이러한 연구가 갖는 철학적 함의로서 언어의 다양성과 다원공존이라는 한 시대를 꿰뚫는 사유에 깊이 천착하였던 시절을 돌이켜 본다.
내가 국립국어원장으로 일하던 때였던 2006년, 당시 한국시인협회에 전국시인들이 고향 방언으로 창작한 시를 묶은 방언시집 출간을 요청하였다. 현대시 100주년인 2007년을 기념하는 차원이었다. 국립국어원의 뜻밖의 요청에 시인들은 놀라워하면서도 크게 반겼다. 반면 국어학계에서는 방언시집 발간 지원을 국립국어원에서 해야할 일인가 의문의 눈초리를 보냈다. 강한 거부의사도 서슴지 않았다. 모 대학 교수는 국립국어원장이 표준어의 어문정책을 파괴하는 행위를 한다며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원장 파면을 선동하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조는 확고했다. 그 이유는 나는 이미 역사적 사회적 문명 변화의 신호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새로운 언어의 창조자다. 방언은 표준어 이전의 모국어이자 모태어다. 시를 통해 모국어를 보다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국어라는 언어다양성을 지키고 지지하는 것 또한 국립국어원의 역할이자 의무라는 논지로 이 사업을 지원했다며 당당히 맞섰다.
사실 국립국어원은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을 향상시키는 조사와 연구 사업을 추진하고 또 체계적인 정책 수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기관이다. 국가의 언어자원에는 방언이 큰 몫을 한다. 모국어를 보다 풍성하게 살리려면 표준어 관리도 중요하지만 지역 방언도 중요하다는 국어정책의 기본을 이해한다면 이 얼마나 필요충분한 사업이었던가. 정제된 언어인 표준어를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역 방언을 되살려 표준어의 경계와 범주를 확대하는 것 또한 중차대하다. 특히 넘쳐나는 차용외래어의 환경과 무분별하게 생성되는 신조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말을 온전하게 지키는 언어 생태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다. 방언이 표준어를 훼손하는 게 아니라 언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중요한 언어 자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표준어를 신화처럼 여기던 국어학계에서도 말문을 닫았다. 국가 언어정책의 기본 틀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나는 사업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인 101명, 내 고향말로 시를 쓰다'라는 부제를 단 방언시집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서정시학, 2007)가 출간되었다. 팔도 토착 방언들로 지은 시 작품이 과거를 하나씩 호명하듯 기억의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방언이 섞인 시의 맛이 따뜻하고 신선하다는 평가들이 이어졌다. 환경과 기술의 빠른 변화 속에서 잊혀진 시간과 공간의 풍경들을 방언 시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며 반가워했다. 표준어의 위력에 억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있던 토속적인 감정과 그들 간에 유통되는 토속의 지식정보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방언시로 살아났다. 이후 국어국문학계에는 문학방언에 대한 연구 붐이 일어났고 많은 시인들이 작품 속에 방언을 고이 품어 주었다.
내친 김에 나는 언어다양성 정책을 학술적으로 지원하기로 하고, 2008년 한국언어학회와 공동으로 “제8차 세계언어학자대회”를 한국 고려대학교에 유치하였다. '언어의 다양성'을 주제로 자본 우위 국가들의 식민지배로 인해 절멸해 가는 소수자 사용 언어와 변두리의 방언 보전과 유지를 위한 국제협력의 장을 펼쳤다. 세계언어학자대회였지만 문학인들을 대거 초청하여 발표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또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어야말로 언어의 존속을 위해 그리고 창의적 변용을 통한 집단 정체성과 지식정보 축적을 기본으로 한 언어의 다양성 보전이라는 학계의 동의를 선언적으로 이끌어 냈다.
이 두 사업과 함께 생활전문용어 조사사업을 10년간 추진하여 방언이 문화의 다양성 속에 창의성이나 독창성뿐만 아니라 개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자산으로 인식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특히 지식정보 전달 매체인 언어와 방언이 지역과 계급적 차등과 차별을 뛰어넘는 언어 자원의 기초가 된다는 나의 언어관을 국가 정책으로 실현한 매우 의미있고 기쁜 일이었다. 학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 가장 보람된 추억 가운데 하나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제주 언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지원해준 제주특별자치도 오영훈 지사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인사드린다. 그리고 꼭 국립방언연구원 설립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도 내가 시집으로 만난 시인들의 작품 속에 황금의 알과 같은 방언들을 찾아내어 더욱 빛이 반짝이도록 갈고 닦고 있다. 「경북매일신문」 칼럼을 통해 문학 방언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금년 4월 국립한글박물관(김일환 관장)에서 “사투리는 못 참지”라는 방언을 소재로 한 특별전시기획전이 열렸다. 정부 기관의 공식적인 행사로 자리매김을 할 만큼 방언이 언어자원으로서 국가적 공인을 얻은 뜻깊은 전시가 열려 더욱 기쁘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격려를 바라며 한국문화사 진나경 씨를 비롯한 출판진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손주 윤, 건, 은, 린이가 자라서 이 책을 읽게 될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