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2019년 앤솔러지 《감겨진 눈 아래에》에 단편소설 〈애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한성부, 달 밝은 밤에》와 《감찰무녀전》, 자전적 에세이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가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대만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 문화와 신문 방송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2019년 베이징 국제도서전에서 번역 살롱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중국 문학 번역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행사였는데, 하루는 중국 SF 작가인 천추판의 출간 행사가 열렸다. 정확히는 개정판 출간 행사였다. 천추판 작가의 대표작이자 2013년에 출간되었던 『황조(荒潮, Waste Tide)』가 영문판 출간과 함께 중문 개정판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천추판 작가는 자리에 앉은 번역가들에게 이번 개정판을 출간하게 된 계기를 가장 먼저 이야기해주었다.
천추판 작가가 총 98곳에 달하는 부분을 수정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켄 리우였다(한국에서는 켄 리우가 작가로 유명하지만, 중국에서는 번역가이자 중화권 SF 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해주는 에이전트로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켄 리우는 왜 천추판에게 작품을 수정하라고 권했을까. 그건 천추판 작가의 작품 속에, 소설을 이루는 언어에 여성 혐오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천추판 작가는 이제껏 당연하게 써왔던 모국어인 중국어에 여성 혐오적인 부분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무지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작품을 수정했다고 했다.
확실히 중국어에는, 한문에는 여성 혐오적인 부분이 많다. 여성을 뜻하는 ‘女’가 두 개가 되면 ‘송사할 난(奻)’이 되고, 셋이 되면 ‘간음할 간(姦)’이 된다. 요(妖)는 한 끗 차이로 ‘요사할 요’가 되거나 ‘아리따울 교’가 된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언어 속에 담긴 혐오를 예민하게 포착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는 결국 언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혐오가 담긴 언어를 수정하는 것은 작가로서도 번역가로서도 독자로서도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자리에 여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여성 혐오를 논하는 자리였는 데도 말이다. 그날의 ‘여성’은 스징위안의 표현대로 ‘남성의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만 언급되었다. 그날 사람들은 천추판을 이야기했고, 류츠신을 이야기했으며 켄 리우를 이야기했다. 그들의 작품 속에 담긴 ‘여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여성 SF 작가는 누구도 논하지 않았다. 나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여성 SF 작가와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