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시프트》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장편소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스노볼 드라이브》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입속 지느러미》, 연작소설 《꿰맨 눈의 마을》 등을 썼다.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2, 30분을 걸으면 바다가 나왔다. 도착하기 10분 전부터 공기가 습해지고 짠 내를 머금은 강풍에 앞머리가 엉망이 되었다. 가장 싫은 건 냄새였다. 그때는 바다를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으나 지독한 냄새만은 질색했다.
그래도 야간 자율학습을 제치고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느긋한 밤 산책은 꽤 운치 있었다. 목적지는 대부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삭막한 해안 공원이었다. 순전히 학교 정문에서 직진하면 저절로 그곳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 걸으려야 걸을 수가 없었다. 일렁이는 검은 물이 가로막아 길이 없었다. 가로등이 드물고 근처에는 망한 가게와 개관 직전의 박물관 등이 포진해 있어 뭐라도 튀어나올 듯 을씨년스러웠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려고 갔다. 일종의 담력 시험이었달까.) 공원 울타리를 붙잡고 서면 어둠에 잠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너무 까매서 갯벌인지 물인지, 구멍인지 우주인지 알 수 없었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둠을 응시하다가 저 밑바닥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곤 했다.
나는 괴물 이야기를 좋아한다. 읽거나 보는 것도, 쓰는 것도 좋다. 그중에서도 물속에 사는 괴물이 가장 흥미롭다. 어렸을 땐 심심하면 심해 생물 사진을 찾아보고 해양 괴담을 뒤적였다. 그리스신화 속 세이렌에게도 역시 매혹을 느꼈는데, 자료 조사 중 작게 당황한 일이 있었다. 당연히 인어의 형상인 줄 알았지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발톱이 날카로운 새의 형상으로 기록된 것이다. ‘인어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낙심하며 자료를 더 찾았다. 다행히 중세시대 후반부터는 바다의 정령으로 인식되어 여러 미술작품에 인어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생선 내장이나 알탕도 먹지 못하면서 끔찍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를 쓰는 일은 왜 이리 즐거운지 모르겠다. 《입속 지느러미》는 취향이 한껏 들어간 소설이다. 본래 도시와 청년이 키워드인 호러 앤솔러지에 들어갈 단편을 청탁받고 시놉시스를 떠올렸으나 당시에는 그다지 무섭지 않아서 완성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단편 분량은 한참 부족했지 싶다.
리디에서 연재를 제안했을 때, 곧장 이 이야기를 생각했다. 이야기가 자신에게 적합한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 같기도 하다. 기존 시놉시스에 살을 붙여 여러 장소에서 야금야금 초고를 썼다. 종로의 오래된 카페, 청계천 골목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 호텔의 로비. 장마철에 고향에서 짙은 해무를 바라보며 쓰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근처 해안 공원에는 가지 못했다. 지금 그곳은 더 이상 스산하지 않다. 번듯한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을 반긴다. 공간에도 분명 과도기가 있다. 한 지점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가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겪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돌아오는 겨울에는 그곳에 갈 것이다. 여름보단 한겨울 바다가 취향에 맞다. 바람은 매섭겠지만.
AR부서에서 일하는 친구 J에게 몇 가지 도움을 받았다. 갑작스럽고 귀찮은 질문에 정성껏 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후반부를 쓰는 동안은 내내 장마였다. 지나간 계절의 습기와 무산된 꿈의 일부를 담았으니 모쪼록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