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
1956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다. 계명대학교 한문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문학전공 교수로 38년 11개월 봉직하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2021년 2월 정년퇴임하였다.
내가 환갑이 되던 해부터 제자들은 매년 사우회(師友會)를 열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동료교수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과분한 호사를 누려왔다. 이번에 정년퇴임을 맞아 제자들이 또 “정년퇴임 기념논총 운운”하기에 단번에 물리치고, 대신 나의 공부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그간 썼던 졸고(拙稿) 몇 편을 묶어 단행본으로 간행하기로 하였다. 학회지에 투고한 논문들을 정리하다보니, “다시 보기 싫은 것이 자기 원고”라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더구나 나는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문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익재가 <역옹패설서(?翁稗說序)>에서 말한 ‘패설’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면서 그 서문에 “지금껏 나의 공부는 백지 위에 점 하나를 찍은 것에 불과하고, 이후 백지를 점으로 채워나가도록 정진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워낙 천학비재(淺學菲才)인지라 변변한 연구업적을 내지 못하였다. 직장에서 봉급을 받는 대가로 수행해야 하는 의무과제의 책임을 감당하기에 급급해하는 가운데, 2~3년에 1편의 논문을 쓰더라도 ‘학계에서 읽히는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학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무척 쑥스럽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신라수이전>의 작자, 식영암의 정체, 김극기 유고, ‘수필’의 성격, 한시작가 비정(批正) 등 일련의 원전 비평적 연구, 그리고 제자들과 공동으로 작업한 <해동문헌총록> 역주사업(2년)과 <동시총화> 역주사업(3년)에 대해서는 나름의 자부심을 느낀다.
아무튼 40여 년의 연구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내 공부의 자취를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이 졸저가 고려시대 한문학을 연구하는 동학들에게 보정(補正)의 재료가 되고 시금석이 된다면 퍽 다행이겠다. 증자(曾子)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여 훼상한 것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근심을 면하게 되었다고 안도한 것처럼, 나도 이제 이 책을 마지막으로 학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적(閑適)을 즐기고 싶다.
끝으로 흔쾌히 출판을 맡아준 도서출판 역락의 이대현 사장과 원고를 정리하고 교정하는 데 힘써준 제자들, 특히 어강석 교수(충북대), 이태희 박사(한중연), 김동건 박사(한중연), 안이슬 양(박사과정 수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