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책은 이상하다. 낱권으로 된 창작집도 아니고 가지런한 소설전집도 아니다. 이름을 『오탁번 소설』 1, 2, 3, 4, 5, 6으로 했다. ‘오탁번 소설’ 외려 ‘소설 오탁번’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내 안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나’가 헤살 놓는다.
한국전쟁, 피란, 배고픔과 가난, 좌절하는 젊음의 분노와 저항이, 느릿느릿, 가파르게, 들쑥날쑥하는 이야기가 말짱 서사적인 허구가 아니라 어느 특정인의 아롱다롱한 전기적 기록 같다. 60여 편의 소설 속에는 배고파서 우는 소년이 있고 절망에 몸부림치고 세상의 높은 벽 앞에 맨손으로 돌진하는 무모한 젊음이 있다.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까마득한 시간 속에서 혼자 외로웠다. 1969년 「처형의 땅」으로 등단했으니 반세기가 다 됐다. 나도 한때는 부지런한 작가였다. 80년대까지는 소설에 주력하면서 시는 ‘현대시’ 동인지에나 발표를 했었다.
「처형의 땅」의 등장인물인 ‘우리들 중의 하나’가 나의 다면적 자화상이라면 「굴뚝과 천장」의 ‘그’ 또한 지울 수 없는 나의 자화상이다. 요즘 독자들은 나를 ‘시인’으로만 알지 싶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는 하루 열 번도 넘게 내 시가 나비처럼 날아다니지만, 소설은 가물에 콩 나듯, 그것도 중고책 판매 사이트에서나 코빼기를 잠깐씩 비친다.
작가의식 속에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신비한 패러다임이 있다. 내 문학적 영토의 암사지도에는 악마와 천사가 가위바위보하고 소년과 노인이 숨바꼭질하는 산이 있고 섬이 있다. 시와 소설이 넘나들며 소나기가 내리고 누리가 쏟아진다. 그래서 나의 시에는 앙증맞은 서사가 종종 보이고 또 소설의 한 부분을 떼어내면 그냥 시가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1부터 4까지는 발표 순서대로 작품을 수록한다. 그래야지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펼쳐지는 서사적 풍경이 곧이곧대로 보인다. 좀 긴 소설은 5와 6에 따로 앉힌다.
30년, 40년 전에 냈던 절판된 창작집과 그 후에 발표한 소설을 몽땅 불러내어, 헤쳐 모엿!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