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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기천

출생:1913년, 러시아 연해주 스파스크 촌

사망:1951년

최근작
2012년 7월 <백두산>

조기천

1913년 러시아 연해주 스파스크 촌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조기천의 출생지는 함경북도 회령으로,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70년 카자흐스탄 알마아따 작가 출판사에서 출판된 ≪시월의 해빛≫에 조기천의 약력이 1913년 스파스크 출생으로 명기되어 있고, 여러 증언 및 자료 등을 토대로 볼 때도 그의 출생지는 연해주 스파스크 촌인 것으로 확인된다.

17세에 스파스크 촌의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인 1930년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 조선사범전문학교에 입학해 1933년에 졸업했으며, 이 시기 ≪선봉(先鋒)≫ 신문에 첫 시 <파리꼼무나>(1930)와 더불어 <공격대원에게>(1931), <야외연습>(1932)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38년 7월 러시아 중(中)시베리아 옴스크 고리키 사범대학 러시아 문학부를 졸업하고 그해 9월부터 2년간 카자흐스탄 크슬오르다 시 조선사범대학 문학부에서 세계문학사를 강의했으며, 1939년 8월 모스크바 종합대학 대학원에 파견되었으나 조선인은 일본 간첩이 될 수 있다는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크슬오르다 시로 되돌아온다.

이후 대학의 교편 생활을 접고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중앙아시아 고려인 신문인 ≪레닌기치≫에서 기자,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소련군에 지원 입대해 소련군 장교로 북한에 들어오게 되며, 소련군정 기관지인 ≪조선신문≫에서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부터 문예총 작가 동맹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된다.

1946년 <두만강>을 필두로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북한의 토지개혁을 소재로 한 <땅의 노래>(1946), 항일 무장 투쟁을 다룬 <백두산>(1947)을 발표하면서 북한 문단에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밖에도 <생의 노래>(1947), <휘파람>(1947), <네거리에서>(1947), <우리의 길>(1947), <항쟁의 려수>(1948), <조선은 싸운다>(1951)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51년 이기영, 이태준, 임화, 한설야 등 당시 북한 문단의 최고 핵심 작가들과 함께 북한 최고의 훈장인 국기훈장 제2급을 수상했으며 1951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51년 7월 31일 밤 12시경 미군 항공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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