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읽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사진이다. 말하려 하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흑과 백으로 보여주는 잔혹과 야수성, 그것이 바로 사진으로 보여주려는 사진가가 갖는 세계의 총체성 개념이다. …… 사진가는 사진을 찍으면서 인문학자로서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시인은 그 사진을 보고서 이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의 생각은 교유하면서 뒤섞인다. 이 책은 사진을 놓고 하되, 사진에 관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생각과 해석과 뒤섞음이다.
이 책은 실천이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증하고 논증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본문 못지않게 주에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것도 모두 이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인도사의 불모지인 한국의 학문 풍토에서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낯설고 어려운 내용이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읽으면, 그리고 낯선 책 제목과 사람들의 이름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논증의 힘과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