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섯 번째 시집을 낸다. 남모를 감회가 있다.
시집을 정리하다 문득, ‘세상에 남은 인연’이란 제목이 떠올랐다. 왜 이런 생각이 났을까. 세상의 인연으로부터 그만큼 더 벗어나 세상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보통 길이의 서정시 외에, 짤막한 단시, 그리고 긴 산문시가 많이 늘어났다. 그만큼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인가. 우리의 소중한 아픔들도 이젠 꽤 잘 보인다.
이제, 이런 시들을 통해서 늘상 일상처럼 세상을 느끼고 표현하고, 보잘것없는 내 작은 삶이나마 스스로 시라는 장으로 갈무리하는 나날들에, 나름대로 행복한 보람을 느낀다. 남들이 보아주지 않는다 해도.
또한, 이번 시집에서는 골수에 사무친 체험들이 제 말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시의 장으로 나오도록, 몸에 배인 체험의 몸말들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다 보니, 온갖 방언들도 자연스레 밀물져 나오게 되었다.
시집을 정리하고 난 뒤, 지난 여름 비 오는 여름날 구시포 바닷가에서 만난 김대곤 시인이 ‘세상에 남은 인연’보다는 ‘지상에 남은 술잔’이 더 낫겠다 해서, 시집 제목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것도 내게 이 세상에 남은 소중한 인연이 아닌가 한다.
표사를 얹어주신 이병천 선배님, 윤효 형, 서홍관 형, 그리고 해설을 써주신 호병탁 형님께, 오랜 인연의 부끄러운 감사를 올린다.
단기 4352년/2019년 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