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의 이들과 앉으면 반드시 자식 이야기가 나옵니다. 멀쩡한 부모는 거의 없더군요. 믿는다 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은 곪아 있고요. 그래도 믿으려 합니다. 죽기 살기로 사랑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사랑받는 게 뭐 그리 힘든지 자꾸 피하려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사랑하여도 나와 그대, 두 사람만으로 가족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부족하더군요. 자식이라는 존재가 나타나서야 비로소 가족이라는 단어가 완성되더군요. 운명입니다. 그런데도 그 소중한 인연들이 자꾸만 삐걱거립니다. 누구 탓일까 가만 생각해 보니 제 지난날이 떠오르더군요. 나도 그랬던 게 분명합니다.
독수리, 기러기, 거기에 국내산 기러기 아빠, 엄마까지 있다더군요. 그래서 이처럼 우화의 주인공이 되는데도... 후회는 없나요?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경하는 법, 간절하게 사랑하는 법, 소중히 사랑받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미움은 스스로의 영혼을 상처 입힌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우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공항을 나오기도 전에 용준의 부음을 전해 듣고 한동안은 그저 허망하기만 했습니다. 문득 쓰던 이야기는 접어두고 새 파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꼬박 1년이었습니다. 일곱 번쯤은 술에 절어 거의 다 쓴 원고를 한 순간에 날려버리기도 했고요. 부끄럼 많았던, 아니 겸허함을 잃지 않았던 그 영혼이 훼방을 놓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망설여지고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차마 덮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눈 감는 그 순간까지 기억하고, 내 아이들의 눈을 통해 영원히 전해야 할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작가 후기' 중에서)
나는 일부러 그들을 찾아서 만난 적은 없었다. 아니, 그래야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가는 길목마다 마주치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굶주린 유랑의 길에서도 염치를 지키려던 어린 눈빛이었다. 그것은 절망의 땅에서 피어나는 기적의 꽃이었으며 희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의 단절이라는 놀라움이었다. 길이 있으면 이쪽과 저쪽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눈앞조차 내다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와 다름없었다. 어떻게 그처럼 인간의 생각마저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두려웠다. 길이 없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그들에게 생각의 길을 이어 준다면 역사는 스스로 물줄기를 바꾸리라 확신한다.
나는 일부러 그들을 찾아서 만난 적은 없었다. 아니, 그래야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가는 길목마다 마주치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굶주린 유랑의 길에서도 염치를 지키려던 어린 눈빛이었다. 그것은 절망의 땅에서 피어나는 기적의 꽃이었으며 희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의 단절이라는 놀라움이었다. 길이 있으면 이쪽과 저쪽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눈앞조차 내다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와 다름없었다. 어떻게 그처럼 인간의 생각마저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두려웠다. 길이 없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그들에게 생각의 길을 이어 준다면 역사는 스스로 물줄기를 바꾸리라 확신한다.
나는 일부러 그들을 찾아서 만난 적은 없었다. 아니, 그래야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가는 길목마다 마주치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굶주린 유랑의 길에서도 염치를 지키려던 어린 눈빛이었다. 그것은 절망의 땅에서 피어나는 기적의 꽃이었으며 희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의 단절이라는 놀라움이었다. 길이 있으면 이쪽과 저쪽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눈앞조차 내다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와 다름없었다. 어떻게 그처럼 인간의 생각마저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두려웠다. 길이 없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그들에게 생각의 길을 이어 준다면 역사는 스스로 물줄기를 바꾸리라 확신한다.
이제 사랑하며 살자. 내팽개쳐 둔 지고지순한 사랑을 연인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벗에게 나누며 살자. 그러기 위해 어딘가에 감춰 두었던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되찾자.
이 소설은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내 가까이에서 숨 쉬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이다. 35 신화의 주인공, 굳은 의지와 허심으로 폐암의 병마를 이겨 내고 계신 또 한 분,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 마음의 쉼터가 되어 주시는 몇 분, 나는 그런 모든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사랑을 훔쳐 썼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 향기로운 사람의 냄새에 취할 수 있으니.
당신에게도 그런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을 펼치면 그 향기로운 사람의 냄새가, 또 따뜻한 정의 훈기가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일찍 여읜 아버지라는 이름의 존재를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선지 벗과 이웃의 등 너머로 바라보는 당신들의 사랑이 참 새로웠습니다. 그리움의 착시였을까요? 아니요, 절대 그건 아니었습니다.
고등어 한 손 손에 들고, 석양을 등지고 돌아오시던 그날의 기억도 가물거리기는 하지만 아직 남아 있습니다. 허허, 내뱉는 쓴웃음 그늘의 눈물자국도 선연합니다. 거친 고함과 억지소리는 여지없는 벽창호인데 뒷모습은 어찌 그리도 초라하던지…….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나니 진정으로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내 인생을 뜬구름 위에 더부살이처럼 얹어 놓았던 대가였습니다. 비로소 희망이라 생각했던 것이 한바탕 꿈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것이 인생이더군요. 그러나 현실은 소설처럼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불완전한 극이 아닐까요. 너무 오랫동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운명이 된 ‘가족’이라는 화두마저 비켜 가려고만 했습니다. 떠나지도 못하고 겉도느라 낯만 뜨거워진 지난 몇 해. 이제 문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이 글은 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아직 어린 줄만 알았던 아들이 벌써 제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제 갈 길을 찾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지만, 너무 오랫동안 주고받은 이야기가 없어서인지 어째 어색하기만 하다.
맞다. 아저지가 아들에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그래도 한 번 쯤은 호숫가에 나란히 앉아 저무는 석양을 바라봐야 한다. 마음의 여유, 관조의 미덕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불쑥 제 앞길에 끼어드는 아비를 아들이 선뜻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아들의 이메일 주소도 몰라 뒷북을 치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한다. 수북이 쌓여가는 편지를 보며 답답해하다가 감히 책으로 엮어볼 용기를 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 편이 담담함을 유지한 채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 ... )
이제 나는 아들의 친구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이 책이 나뿐 아니라 머뭇거리는 모든 아비와 아들딸들에게 소통의 고리가 되었으면 한다.
처음에는 내 자랑스럽던 조국 대한민국이, 그것도 자칭 세계 십 몇위의 경제 강국 운운하는 국가가 맞기는 한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마음을 굳혔다. 겨우 이 정도라면 내 짧은 지식과 단 한 번의 여행에서 받은 느낌이라도 생생하게 전해야겠다. 고통은 함께 나누어야 하며, 희망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호소해야겠다.
사실 안중근은 내게 오래된 숙제였다. 1996년, 한 극단 연출가로부터 안중근 탄생 100주년 기념극의 대본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었다. 그러나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안중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는 곧바로 손을 놓았다. 그는 거의 성인의 반열이었고, 예수나 붓다의 평전을 감히 인간이 쓸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기어이 책을 쓰며 안중근은 영웅이기 전에 한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을 끝낼 수 있게 한 힘이었다. 맞다. 안중근은 영웅이다. 우리만의 영웅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들의 영웅, 평화의 영웅이다. 그가 평범한 사람으로서 영웅이 되었음을, 특히 침략의 뜻을 품은 이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그이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평범하지만 의기 높은 이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경고가 아니라 반성의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족, 사랑, 희망, 그런 소중한 모든 것의 싱체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일지도 모릅니다. 아주 작은 틈에서도 온몸이 시린 것을 보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잠깐 몸뚱이가 시리다고 도망친다면, 울타리는 점점 틈이 벌어져 기어이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도망치기 전에 먼저 내가 한 발 다가서면 그 곳에 이미 다른 누군가가 손을 내밀고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혹은 사랑이...
이 책을 쓰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 난 몹시 스산했다.
가끔씩 책을 갖고 싶다는 요청을 들었지만 흘려넘겼었다. 어느 날 책이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복간을 망설이며 책장을 넘기다가 몇 자 더 적어넣었다. 제목은 그대로 했다.
나이가 들어가도 과연 내가 여자를 아는 것일까 두렵다. 그렇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게 진정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은 사랑을 믿나요?' 묻고 싶은 건 여전하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사랑만은 온전했으면, 바라는 난 아무래도 철들긴 틀려버린 모양이다.
북방과 닿아 있는 감문의 문화
고대 한반도와 인연 깊은 북방 홍산문명 시원지를 돌아본 적이 있다. 이렇다 할 나무 한 그루 없는, 야트막한 초원의 구릉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서는 고대의 무덤이 산등성이에서 발견되고는 한다. 기이했지만 하늘로 돌아가는 영혼의 길을 가깝게 하려는 뜻이려니 여겼다.
뒤에,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秦)의 옛 터전인 중국 깐수성(甘肅省) 톈수이시(天水市) 인근 마지아원(馬家塬) 유적지에서 또 산상(山上) 고분군(古墳群)을 만났다. 공식 발표가 있으면 다시 한 번 세계가 놀랄 화려한 유물의 보고였고, ‘오랑캐’라 불린 융(戎)이 주인이었다.
최근, 경북 고령의 대가야 유적지를 돌아보며 그 엄청난 산상 고분군에 번갯불을 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옛 감문국 터에서 마주한 산상 무덤. 초라한 돌무지였지만, 선(線)을 잇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태초부터의 토착민이란 없다. 모두 어디선가 흘러들어와 뿌리 내렸을 뿐.
포용으로 제국을 만들고, 배척으로 몰락하는 생생한 역사의 교훈.
한반도 정중앙, 강은 흐르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감문. 어디 그 땅뿐이랴. 비슷한 환경에서 수많은 국(國), 혹은 부락들이 명멸했겠지만 그래도 기록이 남았고 풍속이 전해졌다면 그만한 까닭이 있을 터. 사방으로 길을 연 포용의 마음, 시대의 파고에 밀려 사라지더라도 정신만은 길이 남기려는 굳은 의지가 그리된 것이라 믿는다.
배척의 갈등과 미움의 분노, 뿌리와 정신에 소홀한 이기(利己)와 물질의 시대에 소중한 유산의 이야기로 받아준다면 고맙겠다. 덧붙여, 북방과 한반도의 인연은 점점 명징해지고 있다. 언젠가 찾아갈 그 뿌리의 땅을 그리며, 모두가 큰마음으로 하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취재 도중 만났던 한 정보기관의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들의 아픔에는 눈믈을 흘리지만 내 길을 지키는 것도 통일의 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한 픽션이 아니면 그들의 노정이 드러나 또다른 비극이 될지 모른다며 모든 취재를 거부했다. 내가 주인공을 찾지 않고 픽션의 여정을 택한 것도 바로 그의 이야기를 수긍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모두들 간절한 민족사랑과 통일의 열망을 가슴에 담고서도 서로 그 길이 달라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보들의 놀음이다. 이 소설이 가슴을 터놓고 더 큰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나는 진정 바란다.
취재 도중 만났던 한 정보기관의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들의 아픔에는 눈믈을 흘리지만 내 길을 지키는 것도 통일의 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한 픽션이 아니면 그들의 노정이 드러나 또다른 비극이 될지 모른다며 모든 취재를 거부했다. 내가 주인공을 찾지 않고 픽션의 여정을 택한 것도 바로 그의 이야기를 수긍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모두들 간절한 민족사랑과 통일의 열망을 가슴에 담고서도 서로 그 길이 달라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보들의 놀음이다. 이 소설이 가슴을 터놓고 더 큰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나는 진정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