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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역사

이름:황원갑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5년,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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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나당전쟁의 승리>

나당전쟁의 승리

나당전쟁은 어찌하여 일어났는가. 당나라의 야욕 때문에 일어났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에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의 지배를 노리는 음흉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망국 백제에는 웅진도독부를, 망국 고구려에는 안동도호부를, 그리고 멀쩡한 독립국인 신라에는 계림도독부라는 허울 좋은 통치기구를 만들어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키려 들었던 것이다. 이에 참지 못한 신라가 당군을 향해 선제공격을 가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669년부터 676년까지 8년간에 걸친 나당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라가 국가 존립을 걸고 전면전을 각오한 비장한 생존투쟁이었다. 따라서 나당전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과 광복전쟁부터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이 소설 <나당전쟁의 승리>를 쓰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이었다. 사료를 확인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찾아보다가 ‘신라본기’ 문무왕 16년(676년)조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았다. ‘겨울 11월에 사찬(沙湌) 시득(施得)이 수군을 거느리고 설인귀(薛仁貴)와 소부리주 기벌포(伎伐浦)에서 싸우다가 패했으나 다시 진군하여 크고 작은 스물두 번의 싸움에서 이기고 4000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사찬은 신라 17관등 가운데 제8위 벼슬이다. 시득이란 인물은 <삼국사기> 전체를 통해 이 문무왕조에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문무왕 16년이면 나당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해이다. 기벌포는 오늘의 금강 하구, 군산과 장항 앞바다이다. 나당전쟁에 관해서 사료를 찾아보고 취재를 시작했다. 시득이란 인물은 <삼국사기> 문무왕조에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으므로 그를 주인공으로 삼아 나당전쟁을 소설화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처음에는 <기벌포의 승리>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써서 2019년 1월호 <한국소설>에 발표했다. <한국소설>은 한국소설가협회가 펴내는 소설 전문지이다. 그러나 나당전쟁이란 주제가 단편이나 중편소설로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8년간에 걸친 나당전쟁은 그 규모도 크거니와 우리 역사에 미친 의미도 매우 크고 무거운 것이었다. 만일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가 패망했다면 우리나라는 그때부터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패망했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그때부터 당나라의 영토가 되어 그 뒤의 남북국시대니, 후삼국이니, 고려니, 조선왕조는 있지도 않았고, 지금은 중국 변방의 한 성(省)이나 자치주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규모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여 나당전쟁의 전말을 장편소설로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규모도 자연히 커져 나당전쟁의 원인이 된 신라의 통일전쟁까지 범위가 늘어났고, 주인공 김시득에 관한 내용도 크게 늘릴 수밖에 없었다. 김시득을 화랑 출신으로 설정하고, 나당전쟁 전 과정과 마지막 승리인 기벌포해전까지 그의 활약상을 묘사했다. 사실 김시득의 공로는 그 역사적 의미가 우리 역사를 빛낸 그 어떤 영웅호걸에 못지않게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기록이 너무나 없는 까닭에 지금까지 역사에서 무시당해온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마도 같은 시대의 김유신의 명성에 가려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신라의 이른바 ‘삼한통일’로 천손족(天孫族) 한민족이 고조선 붕괴 이후 700년간 분열된 열국시대에서 같은 언어, 같은 관습, 같은 종교의 같은 민족이라는 역사적 통일을 이루었다면, 나당전쟁은 그 민족적 합일성의 통일을 마무리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나당전쟁의 승리 이후 신라는 230년의 발해와 남북국시대를 거쳐 천년 사직을 이어갔으며, 그 뒤 고려왕조 500년, 조선왕조 500년, 대한민국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당전쟁은 그렇게 매소성전투와 기벌포해전을 끝으로 신라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끝은 아니었다. 중국이 지금도 고구려와 발해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삼는 역사 왜곡과 날조와 탈취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거기에 더해서 이제는 고조선의 역사까지 중국사의 일부로 둔갑시키는 황당무계한 작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단군왕검의 고조선까지 빼앗기면 한국사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사를 당나라 변방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던 나라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거란족의 요나라도, 여진족의 금나라도, 몽골족의 원나라도, 여진족의 청나라의 역사도 모두 중국사가 되고, 징기즈칸과 누르하치칸도 모두 중국인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칭기즈칸을 몽골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고 해서 온 세상이 비웃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낯 두꺼운 민족이 한족(漢族)이다. 또 중국의 탐원공정·단대공정이란 것도 중국사의 상한선을 더 올려 잡기 위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그동안 동이족 오랑캐의 역사라고 멸시하던 동이족의 유적, 고조선의 유적이 중국보다 훨씬 오래 전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중국사의 기원을 이제는 황하문명(黃河文明)이라고 하지 않고 요하문명을 중국사의 시원으로 날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이족도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이제는 단군왕검(檀君王儉)과 웅녀(熊女)도 저희 중국의 조상이라고 우기고 나서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무계하다. 단군 할아버지까지 중국인의 조상으로 빼앗기면 한국사는 무엇이 남는가.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5년간의 진통 끝에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20대부터 80대까지 누구나 재미있고 읽기 쉽게 쓰려고 애썼지만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부디 많은 독자가 읽고 우리 역사에 더욱 크고 많은 관심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러 가지로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출판을 맡아주신 행복에너지 권선복 대표와 훌륭하게 편집을 해주신 권보송, 서보미 님 등 편집진의 노고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4년 11월

나를 여왕이라 부르라

나는 소설을 재미있게 꾸미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내세워 없었던 사실을 있었던 듯, 있었던 사실을 없었던 양 왜곡하거나 날조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내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왜냐하면 이건 보통 연애소설이나 사소설이 아니라 역사소설이기 때문이다. 창작소설이지만 어디까지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뼈대로 삼아 피와 살과 가죽을 입힌 작업이다. 따라서 이 소설을 쓰는 데는 한 해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 소설에 담은 내용은 내가 지난 수십 년 세월을 두고 수많은 사료를 찾아 공부해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손으로만 쓰지 않기 위해 발품도 많이 팔았다.

부활하는 이순신

덧붙여 말하건대 이 책은 이순신 장군을 신격화하고자 쓴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오랫 동안 사료를 찾아보고 현장을 답사하며 공부해 왔다. 따라서 이순신이 신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만고의 영웅이었지만, 참으로 인간적인 인간이었다. 그에게도 약점과 결점은 있었다. 때로는 술도 마시고, 때로는 피리소리를 들으며 고통을 잊으려고도 했다. 또 때로는 남몰래 울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약점과 결점을 극복하고 위대한 인간승리를 이룩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근래 일부 몰지각한 세력에 의해 이순신정신이 왜곡되고 폄하되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다. 용렬한 장수 원균을 용장으로 만들기 위해 상대적으로 이순신의 인격과 전공을 깎아내리는 어리석은 짓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순신의 잠을 깨우고 그를 두 번 죽이는 모독이다.

연수영

우리에게 연수영이란 이름이 알려진 것은 겨우 10여 년 전이었다.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기지였던 요동반도 남해안의 건안성 청석관과 비사성, 석성과 오고성 등지에서 연수영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비석들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비록 글자가 대부분 닳아 없어지고, 남은 부분도 많이 훼손된 상태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들 비문을 통해 고구려 말기에 연수영이란 여장군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2003년 6월에 청석관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면서 해설문에 연개소문과 연수영 남매의 이야기를 포함시켰기에 연수영이란 이름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감추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이른바 주류 사학계는 연수영의 이름이 어떤 사서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편협하고 융통성 없는 이유로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공공연히 언급하기도 꺼리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연수영 관련 유적 일부는 현재 중국의 해군기지에 속하고, 발굴된 비석과 비문 등도 모두 중국정부에서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접근할 수 없는 실정이다. ………… 작가는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고 재주가 모자라지만 한국 고대사의 여걸이며, 우리 민족사 최초의 여장군인 연수영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기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열정을 기울여 이 소설을 썼다. 집필에는 비록 한 해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 책에는 나의 수십 년 역사공부와 세상공부가 녹아들어 있다. 이제 세상에 내보내니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은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한 가지라도 얻는 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긍지를 느끼고, 허망했던 고구려 망국사에서는 통렬한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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