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어. 놀다가 배고프면 삘기나 싱아 같은 풀을 많이 뜯어 먹었어. 집에 논밭이 없어서 논일, 밭일 거들 일이 별로 없으니까 만날 서리하고, 참새 잡으면서 놀았지 .집 마당에 쭈그려 앉아 녹슨 쇠못으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함박눈이 내린 날은 하얀 눈밭 위에 발자국으로 큰 그림을 그리면서 노는 것도 좋아했어. 날마다 날마다 놀기만 했어도 공부하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큰형이 만화가라 집에 만화책이 많았어. 형이 책상에 앉아 만화 그리는 것을 보면 언제나 부러웠어. 그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
어렸을 때 아껴 가면서 보던 만화 잡지 <보물섬>에 실린 만화처럼 재미있는 명랑 모험 만화를 그리고 싶어. '두근두근 탐험대'에는 내 어릴 적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어. 처음에는 나랑 동동이랑 닮은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수우랑 더 닮았대. 내가 어릴 적에 한 달 동안 두근거리면서 <보물섬>을 기다렸듯이 아이들이 내가 그린 만화를 좋아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손가락에 침 묻혀 가며 신나게 보면 좋겠어. 내가 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두근거림을 너희들에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이 만화를 작업하면서 지금의 나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어찌 살고 있나……. 선배, 동료들의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허이구, 생각하기도 무섭다. 내가 그때 왜 그런 다짐을 했는지, 부끄러운 것 투성이다. 그래도 그때 뜨겁게 살았던 기억이, 내 이익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모든 걸 걸고 살았던 그 순간들이 지금의 삶을 지탱해 준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