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같은 여행을 여러 번 떠난다. 실제로 그곳에 갔을 때 한 번, 돌아와 손으로 여행 노트를 그릴 때 또 한 번, 그리고 내가 그린 여행 노트를 볼 때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직접 쓴 여행 노트는 시간을 보관하는 마법과도 같다.
이번 책은 전작인 ‘내 손으로 발리’ ‘내 손으로 교토’ ‘내 손으로 치앙마이’와는 결이 다르다. 원래 나는 이동을 많이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한 도시에 머무르며 여행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무려 9,288km를 이동하고, 거기서 다시 8시간 기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간다. 체류하는 도시만 7개, 총 29일의 대장정이다.
이렇게 빡빡한 여행을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매번 상황과 장소에 적응할 필요가 없었다. 연이은 퀘스트를 달성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기차 안에서 설령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끝이 났다. 경유하는 도시의 땅을 밟고 나면 다음에는 완전히 새로운 기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에 타면 침대 한 칸의 내 공간이 주어지고, 거기에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이 여행 노트를 손으로 그리고 쓰는 데 무려 1년이 넘는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면서 출간까지 몇 년이 더 걸렸다. 그대로 묻힐 수도 있었던 책이 다행스럽게도 세상에 나오게 되니 무척 기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다시 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이 책이 있으니 나는 몇 번이고 여행을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님들도 이 책으로 나와 같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