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섰다. 14년 지나 돌아보니 가출인지 출가인지 모를 일을 저질렀다. ‘그때’, 오로지 시(詩) 하나 선택했다는 자기 최면이 피[血]를 먼저 버린 것이고, 정과 일과 삶과 꿈과 밥을 함께 버렸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문예지 『POSITION』을 발간하여 무료 배포해 온 11년째, 아니다[未]와 아니다[不]의 겹치는 안쪽과 홑겹인 바깥쪽을 생각한다. 모든 게 미완성(未完成)이고 불완성(不完成)인 ‘지금’ 피[血]에서 점 하나 지운 접시[皿]가 보인다. 환희에 겨워했던 모티프 하나가 빈 접시 옆에서 잠든 일가족의 엉킨 자세였다니! 그 상형문자에서 지워진 나는 여생을 걸어도 빈 접시에 피 한 방울 바칠 수 없을 것이지만, 『출장보고서』를 등짐으로 지고 미불미불(未不未不) 걸어야 한다. 나의 탁발 수행이 가족의 마음에 도착하는 풍문이 될 때까지 걸어야만 한다. ‘지금부터’는 종착 없는 도착이니 또다시 출발인 형벌엔 도착은 없을 것이다. 다만, 실패를 확인하려고 일생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