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음악을 재생시켰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음악이 꺼져 있을 때가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음악이 사라졌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소설 속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악이 꺼진 걸 알고 난 후에도 나와 소설 속 주인공 모두 더 이상은 음악이 필요하지 않았다. 음악이 꺼진 채로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음악 틀까? 아니 그냥 둬. 그냥 이렇게 좀더 이야기를 하자. 나는 자신의 뺨을 때리는 사람과 배 속으로 이상한 물질을 삼킨 사람과 플라스틱 섬에 갇힌 사람과 자동차에 갇힌 사람과 오랫동안 악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이 멈추고 이야기가 지속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기 위해, 나는 음악을 듣고 소설을 쓴다.
이 사람들에게 고맙다.
차양준/ <기술남녀> 감독/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 중년 남/ 이정식/ 오형수/ 송미/ <기술남녀> 촬영팀, 조명팀, 스크립터/ 배우들/ 김선민/ 청소 아주머니/ 인터넷 포르노 방송 유저들/ 송미 외할머니/ 슈퍼마켓 주인/ 오형수 촬영 스태프/ 송미 친구/ <복종의 카푸치노> 남배우/ <복종의 카푸치노> 감독 대행/ <복종의 카푸치노> 스태프(이상 「상황과 비율」)
이호준/ 장우영/ 기민지/ 기자/ 송진구/ 바닷가의 사람들/ 청소 아주머니/ 조용한 동네 주민들/ 조남일/ 소매치기/ 유모차 할머니/ 할머니 유모차 속의 개/ 중학생 아이/ 기민지 오빠/ 진숙이/ 송진구의 룸메이트들/ 호텔에서 일하는 송진구 후배/ 조남일의 여자친구/ 남자배우 K/ K의 여자친구/ 아홉 살 아이(이상 「픽포켓」)
규호/ 정윤/ 술집 종업원/ 알코올 중독자 모임 동료들/ 피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남자/ 자동차 절도범/ 택시 기사/ 트럭 운전사/ 터미널 매표소 직원/ 편의점 직원/ 피존을 거절했던 여자/ 뉴스 아나운서/ 살려달라는 소리를 질렀던 여자/ 경비원/ 술집 남자들/ 파출소 경찰(이상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지진 피해자들/ 정민철/ 정민철 아버지/ 정민철 동네 친구들/ 김우재/ 지진 전문가/ 과학전문기자/ 정민철 할머니/ 류영선/ 오규호/ 게임 속 할머니/ 정민철의 대학시절 교수/ 할머니의 동네 사람들/ 지진 생존자들/ 지진 피해자 가족들/ 정민철과 데이트했던 여자 1, 2(이상 「뱀들이 있어」)
용철/ 민희/ 준철/ 미요/ 방송국 취재기자, 카메라기자/ 미요 친구/ 전시회 입장 관객들/ 뒤풀이에 함께 간 사람들/ 이자카야 주인/ 용철의 후배 화가/ 박물관 모의 전시 관객들/ 두 명의 여자가 손을 꼭 붙들고 화면 밖을 응시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이상 「종이 위의 욕조」)
나/ 나의 형/ 나의 어머니/ 비명 소리를 지른 사람들/ 비행물체를 조종하는 누군가/ 피난 가는 사람들/ 윤정화/ 윤정화 여동생/ 구멍에 빠져 죽은 사람들/ 물 속에 뛰어든 사람들/ 섬으로 간 사람들/ 남은 사람들(이상 「보트가 가는 곳」)
현수/ 허파/ 대장/ 창배/ 미영/ BMW 운전자/ 교통경찰/ 백화점 정문 옆의 커피숍 직원/ 대장에게 걸려들었던 운전자/ 선글라스를 낀 운전석의 여자(이상 「힘과 가속도의 법칙」)
차선재/ 아버지/ 어머니/ 차선재의 여섯 친구들/ 차선재의 외삼촌/ 시계제조공학과 친구들/ 이청현/ 장수영/ ‘노는청년없는사회만들기 운동본부’ 상임고문/ 차선재와 함께 경계근무를 섰던 군인들/ 시계 회사 팀장/ 시계 회사 직원들/ 외국의 시계 바이어들/ 차선재의 시계를 높이 평가한 시계 평론가/ 아버지의 경비실 동료/ 시계 전시에 찾아온 사람들(이상 「요요」)
송우영이 농담 속에서 살아간다면, 저는 소설 속에서 살아갈 겁니다. 문자와 문장과 문단 사이에서 죽치고 있을 작정이고, 절대 나가지 않을 겁니다. 물음표의 곡선에 기댄 채 잠들 때도 있고, 느낌표에 척 달라붙은 채 서서 잠들 때도 있을 겁니다. 마침표는 제가 들어가기에는 좀 작을 거 같지만, 문단과 문단 사이에서는 충분히 쉴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살 수 있어 즐겁습니다. 다음 소설에서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겠습니다.
2016년 여름
주인공이 소설가라서 자전적 이야기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건물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성격도 많이 다르고, 말하는 방식도 다르고, 표지에 나오는 인물의 생김새와도 몹시 다르다. 다만 소설에 묘사된 것 같은 딜리팅 기술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여러 레이어 사이를 넘나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도 다른 레이어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안녕!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음악을 재생시켰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음악이 꺼져 있을 때가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음악이 사라졌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소설 속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악이 꺼진 걸 알고 난 후에도 나와 소설 속 주인공 모두 더 이상은 음악이 필요하지 않았다. 음악이 꺼진 채로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음악 틀까? 아니 그냥 둬. 그냥 이렇게 좀더 이야기를 하자. 나는 자신의 뺨을 때리는 사람과 배 속으로 이상한 물질을 삼킨 사람과 플라스틱 섬에 갇힌 사람과 자동차에 갇힌 사람과 오랫동안 악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이 멈추고 이야기가 지속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기 위해, 나는 음악을 듣고 소설을 쓴다.
이 소설집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녹음테이프입니다. 테이프 속에는 모두 여덟 곡의 노래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저에겐 특별한 노래들입니다. 오래 전 친구의 생일선물로 만들던 녹음테이프가 기억납니다. 나만의 특별한 노래들을 모아 만들었던 녹음테이프도 생각납니다. LP나 CD를 재생시킨 후 카세트 데크의 빨간색 녹음버튼을 누르면 ‘실시간’으로 소리를 이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소리를 붙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소리란, 그리고 음악이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요? 사라진 소리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이 녹음테이프 속에는 제가 이 년 동안 세상 여러 곳에서 붙잡아둔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의 취향과 마음과 선택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카세트 데크에 있는 파란색 플레이버튼을 눌러 제가 녹음한 소리를 들어봐주십시오.
<요요>를 쓰는 동안 시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인지, 시계 속 시침과 분침과 초침처럼 계속 반복되는 것인지, 자주 생각했다. 소설 <요요> 속 시간을 때로는 빨리 흐르게 했고, 때로는 한없이 느리게 흐르도록 했다. 시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게 없다. 아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더욱 모르게 됐다. 시간에 대해 알 수 없어서 좋다. 오리무중이라서 좋다. 소설가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모르는 사람이다. 시간 속에 살지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계속 더 멀리 모를 생각이고, 백리무중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거릴 생각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때때로 시간을 어지럽히는 일이다. 이효석 선생도 시간을 어지럽혔으므로 먼 시간 밖에 있는 나에게 이르렀다. 내 글 역시 시간을 교란하는 역할을 떠안길 바란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나갔던 소설 쓰기의 순차적인 시간이 누군가의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안개 속에 있을 때 이효석 선생이 불빛을 반짝여 주었다. 잘 가고 있다고, 잘 헤매고 있다고, 불빛이 반짝였다. 불빛은 곧 스러질 것이다. 나도 곧 불빛을 잊고 방향을 잃을 것이다. 삶의 방향 같은 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면 둘 중에 하나부터 고르게 된다. 시간, 아니면 공간. 가끔은 두 개를 한꺼번에 정할 때도 있다.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 언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글을 쓰려고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잊고 환상 속으로 진입한다.
글쓰기는 내게 타임머신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동네를 떠올리고, 골목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면 글은 나를 거기로 데리고 간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고, 이루고 싶은 꿈들을 상상할 때면, 글은 나를 미래로 데리고 간다. 나는 현실에서 글을 쓰면서 음악을 듣고 인터넷으로 내일 먹을 밥의 재료를 주문하면서, 동시에 과거나 미래나 미지의 공간에 머물고 있다. 타임머신을 발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이미 타임머신 보유자다.
책의 시작은 ‘북커버러버’였다.
북 커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북 커버 러버’의 어감이 좋았고, 책표지 이야기를 연재했다. 오래전부터 책표지를 좋아했다. 책표지는 늘 비밀의 문 같았고, 다른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가는 토끼굴 같았다. 책표지를 열었을 때 뜻밖의 풍경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처럼, 책표지 이야기 뒤에다 다양한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생활 에세이 같은 글도 있고, 짧은 소설도 있고, 조금 긴 소설도 있다. 읽는 순간 새로운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글도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레고 블럭이다. 나라는 것은 무수히 많은 조각들로 이뤄진 덩어리일 뿐이다.
(이하 절대 무순) 더 킹크스, 톰 웨이츠, 엘비스 코스텔로, 보스턴 레드삭스, 글렌 굴드, 알렉스 칠튼, 줄리안 반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무라카미 류, 줌파 라히리, 레이먼드 카버, 윌리엄 깁슨, 빅터 파파넥, 다카하시 겐이치로, 더 비틀즈, 기타노 다케시, 팀 버튼, 밥 말리, 제프 버클리, 스티븐 킹, 브루크너, 자클린드 쥐 프레,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자신문, 벤 하퍼, 다이언 아버스, 비스티 보이스, 아이팟, 위저, 케니 버렐, 휴렛패커드 레이저젯, 아이비엠 X40, 트레이 파커 - 오, 케니 -, 롤러코스터, 셀레스천 100, 도스토예프스키, DJ 섀도우, 벤 크웰러, 폴 오스터, 치보 마토, 커트 보네거트, 알도 1967, 이글루, 케빈 마토닉, 와콤 타블렛,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티렉스, 소닉 유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세계단편문학전집 ..., 등등.
조립되고 해체되고, 또다시 조립되면서 이 블럭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블럭은, 지금 어디에선가 하얀 종이나 텅 빈 모니터를 앞에 두고 뭔가를 쓰려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그게 일기든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편지든 뭐든 간에, 뭔가를 쓰기 위해 허공 앞에 앉은 모든 동지(同志)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영감 받았고 영향 받았으며, 그들의 문장과 생각과 철학을 디제이처럼 리믹스해 왔다. 그래되 된다면, 나의 가장 중요한 레고 블럭들에게 이 소설을 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