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번듯한 조직과 제도를 갖춘 공식종교에 비해, 보잘것없는 주변부의 잔존물로 취급받아온 민속종교를 다룬다. 특별히 ‘민속종교’라는 체를 통해 전근대 조선 왕실의 문화를 걸러보는 체질[篩別]을 시도한다. 민간신앙은 엘리트의 고매한 형이상학 체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늘 일상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종교문화의 변동과 생성을 낳기도 하였다. 그간 민속종교를 통해 문화의 역동성과 총체성을 충분히 읽어낼 만도 했지만, 그것을 탐색 도구로 애써 삼으려 하지 않는 지적 옹졸함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밋밋한 것은 민속종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날렵하지 못한 연구자의 시선이었다. 이 책은 왕실을 하나의 민속 그룹으로 설정하고, 왕실 민속의 주요 경험군이라 할 만한 산천신앙, 무속신앙, 점복신앙 등에 주목하였다. 물론 왕실 친화적인 민속신앙뿐만 아니라 왕실의 권위를 거스르는 반왕조의 민속 담론 및 실천에도 주목하면서 균형 잡힌 왕실문화를 구성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왕실신앙은 일상을 초월하는 비범한 향상(向上)보다는 그저 손(損) 없고 탈(頉) 없는 일상질서의 항상(恒常)에 주력하고자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왕실의 산천, 무속, 점복에 주목하면서 그간 가려졌던 왕실문화를 재발견하고, 왕실의 종교문화를 재평가하면서 민속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키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