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 forme de vie
by
Amélie Nothomb
Copyright ⓒ Editions Albin Michel - Paris 2010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Munhak Segye-sa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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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dition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Editions Albin Michel through Shin Won Agency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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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는 새로운 유형의 편지를 받았다.
친애하는 아멜리 노통브,
나는 미군 이등병입니다. 이름은 멜빈 매플, 그냥 멜이라고 불러주세요. 이 좆 같은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는 바그다드에 배치되어 6년이 넘게 주둔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내가 개같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약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신,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하리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게 답장을 해 주세요. 조만간 당신의 편지를 읽게 되길 기대합니다.
2008년 12월 18일 바그다드에서
멜빈 매플
처음에는 그냥 장난 편지라고 생각했다. 멜빈 매플이라는 사람이 진짜로 존재한다고 쳐도, 과연 그가 이런 편지를 써 보낼 수 있을까? 엄연히 군 검역관이 있어서 ‘전쟁’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좆 같은’이란 말을 통과시켰을 리가 없을 텐데?
나는 편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만약 이 편지가 가짜라면 소인에서 눈치챌 수 있으리라. 편지에는 미국 우표가 한 장 붙어 있었고 이라크의 소인이 찍혀 있었다. 무엇보다 진짜 같아 보이는 것은 글씨체였다. 수준 낮고 단순하며 상투적인, 내가 미국에서 살던 때에 참 많이도 보아왔던 미국식 글씨체. 그리고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당당한 이 직설적인 어투라니.
편지가 진짜라는 점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어지자, 이번에는 메시지의 터무니없는 측면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초반부터 이 전쟁 속에서 살아온 미군 병사 한 사람이 ‘개같이 비참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야 놀라울 게 없다고 치더라도, 그 군인이 내게 편지를 썼다는 사실은 굉장한 일이 아닌가.
나에 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내 소설들 중에서 몇 권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미국에서 5년쯤 전에 비교적 조용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물론 벨기에나 프랑스의 군인들로부터 한 무더기의 편지가 오곤 했다. 대부분 사인이 들어간 나의 사진을 보내달라는 편지들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이등병이라니, 이건 내 이해의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걸까? 봉투 위에 정확하게 적힌 내 편집자의 주소 외에는 그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약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신,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이해하리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그가 내 책들을 읽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내 글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의 가장 명백한 증거라는 소리인가? 나를 전쟁의 대모 자리에 앉히려 하다니, 멜빈 매플의 선택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나는 어떤가? 그의 속내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나?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든 자신들의 고통을 토로한 편지를 내게 보내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수용하는 나의 용량은 거의 한계에 달했다. 게다가 미군 병사의 고통이라니, 그건 꽤나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았다. 내게 그런 여유가 남아 있나? 대답은 아니오였다.
멜빈 매플에게는 분명 정신과 상담이 필요했다. 그건 나의 분야가 아니다. 내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아 보았자 그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6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해 필요하게 된 치료를 다 받았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졸렬한 행동인 것 같았다. 나는 중립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영어로 번역된 내 소설책들에 그의 앞으로 헌사를 써서 소포로 부쳐주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미국 군대의 말단병사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양심에 거리낄 만한 것도 없어지게 되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 편지가 군 검역관을 무사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최근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한 달이 지나야 오바마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겠지만, 그의 당선이라는 대혼란이 이미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오바마는 끊임없이 이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세웠고 민주당이 승리를 거둘 경우에는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곧 자기가 태어난 미국으로 돌아갈 멜빈 매플의 귀향을 상상했다. 나의 환상 속에서는 옥수수밭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농가에 도착한 그와 양팔을 벌린 그의 부모가 보였다. 이러한 생각을 하자 마침내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가 사인이 들어간 내 책을 잊지 않고 가지고 돌아갈 터이니, 나는 콘벨트(미국 중·서부에 걸쳐 형성된 세계 제1의 옥수수 재배지역. 그 중심은 일리노이·아이오와이다—옮긴이)의 독서 실천에 간접적으로나마 기여를 하게 될 것이었다.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이등병의 답장을 받았다.
아멜리 노통브에게,
당신이 보내준 소설책은 고맙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보고 이 책들을 어쩌라는 거죠?
해피 뉴이어
2009년 1월 1일 바그다드에서
멜빈 매플
이게 웬 당치않은 소린가. 약간 신경질이 난 채로 나는 곧 이렇게 답장을 썼다.
친애하는 멜빈 매플,
나도 모르겠네요. 그걸로 가구를 괴시든지, 아니면 의자 높이를 높이시든지. 아니면 막 글을 깨친 친구에게 줘버리시든지.
새해인사, 고마워요. 댁도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1월 6일 파리에서
아멜리 노통브
나는 나의 어리석음에 분통을 터뜨리며 이 편지를 부쳤다. 참내, 군인에게서 뭔가 다른 반응을 기대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그가 즉각 답장을 보내왔다.
아멜리 노통브에게,
미안합니다, 내가 표현을 잘못했나 봅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이미 당신의 책을 모두 다 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어요.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당신의 헌사가 들어간 것들까지 해서 책들이 두 권씩 되니 좋군요. 친구들에게 빌려줄 수 있겠어요. 혼란스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진심을 담아
2009년 1월 14일 바그다드에서
멜빈 매플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인간이 내 책을 모두 읽었다니, 그리고 그런 사실과 자기가 나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에 인과관계를 부여하다니. 이로 인해 나는 깊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 소설의 어떤 면이 이 군인으로 하여금 내게 편지를 쓰도록 만들었는지 이해하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희열에 가득 찬 인물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 그 독자가 미군 이등병이라는 점이 나의 만족감을 더욱더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전세계적인 작가가 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기괴한 오만방자함으로 거의 폭발할 지경에 다다라 있었다. 최고의 기분으로 나는 이런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멜빈 매플,
오해에 대해 사과드려요. 당신이 내 책들을 모두 읽었다니, 정말 감동받았어요. 핑곗김에 새로 나온 내 소설의 영어 번역본을 보내드립니다. 미국에서 막 출간된 『도쿄 피앙세』예요. 나로서는 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편집자 말이, 『아담도 이브도 없는』이라는 제목이 제대로 번역될 것 같지 않다더군요. 2월 1일부터 14일까지, 나는 책을 홍보하러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에 머물 예정이랍니다.
오늘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군요. 위대한 날이지요. 당신도 곧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겠네요, 그런 상상을 하니 참 기뻐요.
우정을 담아
2009년 1월 21일 파리에서
아멜리 노통브
미국 순회 기간 동안, 나는 누구를 만나건 바그다드에 주둔 중인 한 병사가 내 책을 모두 읽었으며 그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빼먹지 않았다. 기자들은 그 이야기를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필라델피아 데일리 리포트지에서 “미군 병사,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를 읽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그 기사로 인해 내게 무슨 영광이 돌아오는 것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으나 그 효과는 대단했던 것 같다.
파리로 돌아오니 편지가 산만큼 쌓여 있었는데 그 중에 이라크에서 온 편지가 두 통 섞여 있었다.
아멜리 노통브에게,
『도쿄 피앙세』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속상해하지 마세요, 제목이 괜찮은걸요. 나는 산드라 블록의 팬이에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답니다. 그게 말이죠, 우리가 곧바로 철수하지는 않을 거라서 아직 시간이 많거든요. 새 대통령의 말에 의하면 주둔군이 철수하기까지는 19개월이 걸릴 거라더군요. 그리고 나는 올 때에도 맨 먼저 왔으니까 떠날 때에도 맨 마지막으로 떠나게 될 거예요, 두고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내 인생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옳아요. 버락 오바마는 꼭 대통령이 되어야 했던 인물입니다. 나도 오바마에게 한 표를 던졌답니다.
진심을 담아
2009년 1월 26일 바그다드에서
멜빈 매플
아멜리 노통브에게,
『도쿄 피앙세』, 정말 좋았습니다. 산드라 블록이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네요, 정말 멋질 거예요.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마지막에 가서는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냐고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진실되니까요.
미국에서는 어땠는지요?
진심을 담아
2009년 2월 7일 바그다드에서
멜빈 매플
나는 곧 답장을 썼다.
친애하는 멜빈 매플,
내 책이 마음에 들었다니 정말 기쁘네요.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모든 일이 잘 진행되었답니다. 나는 어디에 가나 당신 이야기를 했어요. 필라델피아 데일리 리포트에 실린 기사를 읽어보세요. 안타까운 건, 당신이 어디 출신인지 기자에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에요. 나는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혹시 괜찮다면,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해 주세요.
우정을 담아
2009년 2월 16일 파리에서
아멜리 노통브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을 수도 있는 가상의 영화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저 농담 삼아 해 본 말이었고 진지하게 거론될 것으로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까. 영화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멜빈 매플이 얼마나 실망을 할까. 콘벨트를 실망시킬 수야.
아멜리 노통브에게,
필라델피아 데일리 리포트의 기사 덕분에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다들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미국 순회여행은 끝이 났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녀석들이 원하는 것이라고는 언론에 자기들 이야기가 실리는 게 전부니까요.
내 소개를 해 달라고 하셨지요. 내 나이는 서른아홉입니다. 우리 부대에서는 최고령에 들지요. 나는 서른 살이 되어 뒤늦게 입대를 했습니다. 미래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었거든요.
나의 부모님은 1967년, 저 유명한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1967년에 반문화 운동을 벌여온 히피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축제—옮긴이) 기간 동안에 만나셨습니다. 그분들에게 나의 군 입대는 하나의 치욕이었지요. 나는 미국에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되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엄마 아빠 집으로 오면 될 것 아니냐.”고 대답하시더군요. 내게는 말입니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러 가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어요. 우리 부모님은 볼티모어 근교에서 정비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살고 계십니다. 나는 그곳에서 자랐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습니다. 볼티모어는 로큰롤밖에는 볼 것이 없는 도시랍니다. 안타깝게도 난 록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고요.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는 나도 이상이며 꿈들을 품고 있었고 그 꿈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도 했습니다. 제2의 케루악(Jack Kerouac, 미국의 소설가 겸 시인.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닌 잭 케루악은 3주일 만에 『길 위에서(On the Road)』를 썼지만 시대를 너무 앞선 내용으로 출판되기까지 6년이 걸렸다—옮긴이)이 되고 싶어서 각성제에 취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녀 보았지만 그럴싸한 문장은 한 줄도 쓰지 못했어요. 제2의 부코우스키(Charles Bukowski,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 그는 글을 쓰면서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서 글을 썼다—옮긴이)가 되어보려고 술에 절어본 결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었죠. 그쯤에서 나는 작가가 될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도전해 보았어요. 거의 재난 수준이었죠. 붓을 쓰지 않고 물감을 뿌리는 드리핑 기법조차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더군요. 배우를 해 보려고 했지만, 그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노숙을 하게 되었지요. 길에서 잠을 자는 경험을 해 보았다는 것에는 만족하고 있답니다.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1999년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나는 부모님께 최근에 전쟁이 끝났으니 위험할 것 하나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1991년의 걸프전이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안정시켰다는 것이 내 이론이었죠. 평화시의 군대는 아주 괜찮아보였습니다. 그래요,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라크에는 여전히 사담 후세인이 버티고 있었어요. 하지만 당장 큰 문제가 닥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요컨대 내게는 정치적인 감각이 전혀 없었죠.
군 생활에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곧 알게 되었지요. 이 훈련들, 이 규율들, 이 아우성, 이 일과표, 이런 것들은 하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더 이상 나는 거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게 중요했지요. 나는 나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두려움에 떨며 자는 것, 그게 하나였고요, 배를 곯는 것이 또 다른 하나더라고요.
군대에서는 먹여줍니다. 음식이 좋고 푸짐한 데다가 공짜지요. 입대하던 날, 내 몸무게는 55킬로그램이었습니다. 키는 180센티미터였는데 말입니다. 나의 지극히 현실적인 입대 동기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군 입대를 자청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니까요.
진심을 담아
2009년 2월 21일 바그다드에서
멜빈 매플
내가 콘벨트를 착각했던 것이다. 볼티모어 교외, 거기는 훨씬 더 가혹한 곳이었다. 볼티모어라는 그 고장은 존 워터스 감독밖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나쁜 취향’의 대부 워터스는 모든 작품을 그곳에서 찍었다. 볼티모어는 그 자체가 추한 교외의 모양새를 한 도시이다. 그런데 그런 볼티모어에서도 더 떨어진 교외지역이라니, 나는 거기가 어떤 곳일지 겨우 상상을 해 보았다.
2001년 9월 11일, 가엾은 멜빈 매플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어야 했다. 그렇다, 그때 세상은 평화롭지 않았다. 그의 배고픔은 그로 하여금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었다.
친애하는 멜빈 매플,
정말 흥미로운 편지를 보내 주어서 고맙습니다. 편지가 정말 좋았어요. 이제 당신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네요. 주저 말고 다음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아니면 당신 인생의 다른 이야기라도요.
우정을 담아
2009년 2월 26일 파리에서
아멜리 노통브
아멜리 노통브에게,
군대에서 월급조로 돈이 좀 나오거든요. 나는 그 월급으로 책을 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영어로 번역된 당신의 초창기 소설을 읽게 되었죠. 『오후 네 시』라는 작품이었는데, 그 책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 이후로 당신의 책 전부를 손에 넣게 되었고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신의 책들은 나에게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어요.
당신이 나에 대해 더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내 건강상태가 많이 나쁩니다. 나는 아주 지쳐 있어요.
진심을 담아
2009년 3월 2일 바그다드에서
멜빈 매플
편지를 읽고 나자 걱정이 몰려왔다. 이라크에서 병에 걸릴 이유는 많고도 많을 것 같았다. 전투에서 입는 크고 작은 부상, 게다가 군에서 쓰는 독성물질, 스트레스. 그건 그렇고, 이미 그의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부탁해 놓았던지라, 더 이상은 그를 조를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더 잇지 못한 게 건강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어떤 다른 차원의 망설임이 느껴졌다.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라서 답장을 하지 않았다. 잘한 짓이었다. 새 편지가 도착했던 것이다.
아멜리 노통브에게,
이제 몸이 좀 나아졌고 당신에게 편지를 쓸 힘도 생겼습니다.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네요. 나는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부대에 하루가 다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병을 앓고 있어요. 2003년 3월, 처음으로 군 당국이 개입한 이래 환자의 수는 두 배가 되었고 멈출 줄을 모르고 늘어나고 있지요. 부시 행정부 때에는 우리의 병이 미국 군대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고 여겨 감추어두었습니다. 오바마 이후로 신문에서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지만, 그들 역시 아주 조심스러워했지요. 지금 당신은 일종의 성병을 상상하고 있겠지만, 아닙니다,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나는 비만증 환자입니다. 선천적으로 이런 건 아닙니다. 어렸을 적이나 청소년 시절에는 정상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는 하루가 다르게 비쩍 비쩍 말라갔죠, 돈이 없었으니까요. 1999년에 입대를 한 이후로는 아주 빠른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