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벽을 넘어서
정덕구(NEAR재단 이사장)
지난 50여 년간 우리 경제는 압축 성장과 압축 고도화, 압축 근대화, 압축 민주화 그리고 압축 고령화로 농축돼왔다. 그 과정에서 거의 10년 주기로 구조적이고 현실적인 벽에 직면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돌파구를 통하여 그 벽을 돌파해왔다. 단편적이지 않은 큰 틀의 시각 정리를 통하여 현실의 벽을 돌파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또 하나의 국면 돌파의 시기라 생각한다.
2014년 한국경제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대한민국 모든 경제주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대목이다. 큰 흐름을 전망해보자면 여러 측면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2014년이 될 것이다. IMF를 비롯한 여러 기관은 세계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예측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 흐름은 선진국 경제가 이끌 것이라 본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도 수출산업 중심으로 도약의 기지개를 켤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낙관은 섣부르다. 세계경제 기상도는 아직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채 2014년을 굽어보고 있다. 게다가 2014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추락하는 하방 위험downside risk까지 예고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막연한 희망과 불안, 모두 도움되지 않는다. 합리적 희망과 의심을 함께 품고 2014년 한국경제를 전망해야 할 것이다. 경제운용의 방향을 결정하는 정책 당국자들은 특히 더 2014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NEAR재단은 2014년이 한국경제에서 각별하게 중요한 해라고 여긴다. 그래서 여러 경제 분야에서 철저한 분석과 진단, 성찰과 대안 제시가 이루어져야 할 엄중한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런 맥락에서 각 경제 분야의 유력 전문가를 총망라하여 2014년 한국경제를 전망하고 정책과제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물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은 매우 의미가 깊은 일이다.
2013년의 회고: 확인된 현실의 벽
2013년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첫해였다. 새 정부는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발표된 많은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에 부닥쳤다. 거칠게 말해 현실의 높고 두꺼운 벽을 실감하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구조적 문제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첫째, 우리 사회는 급속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둘째, 가계부문이 위축되었고 이에 따라 내수가 구조적으로 침체되고 소득 양극화 문제가 깊어지고 있다.
셋째, 한국의 산업 역량industrial capacity이 포화 상태saturation point에 이르렀다.
넷째, 정치·정책 프로세스가 난맥상을 보이고, 경제정책 결정 메커니즘이 한계에 봉착했다.
다섯째, 국민복지 수요가 폭증하는 데 반해 이를 뒷받침할 국가재정 능력이 취약하다.
먼저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정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최저인 1.18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구구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인구구조 변동은 거시정책뿐만 아니라 미시정책, 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정책 과제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는 연금과 건강 관리 서비스 등 복지의 수혜를 입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연금복지체계는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국가재정 역량은 취약하기 그지없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게다가 한국경제의 중추인 산업 역량에 기댈 수도 없는 형편이다. 한국의 산업 역량은 이미 포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겉보기로는 한국 산업이 대외부문에서 높은 수출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안개에 가려 실체를 보지 못하게 된 착시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개는 중국 특수라는 상황과 삼성전자 등 몇몇 기업의 성공이다. 이런 착시에 빠져 동아시아의 부가가치사슬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산업기술 경쟁력이 뒤처지는 현실을 간파하지 못하게 되었다. 냉정한 진단을 방해하는 안개를 걷어내고 현실을 직시한다면 산업 노쇠화가 속으로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동북아시아 산업의 분업체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 선정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한·중 경제 협력이 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일본이 더는 유지하기 힘든 고도 기술산업을 한국이 어떻게 이전받을 것인가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해졌다. 정보는 이런 상황에 예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지혜롭게 정책을 운용할지를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가계부문의 회생이 관건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 경제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은 심각한 생채기를 드러내었다. 가장 아픈 부위는 가계부문이다. 한국 가계부문은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이다. 수출시장에서의 선전에도 아랑곳없이 가계부문의 추락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가계소득의 양극화는 골을 더 깊게 만들었다. 가계부채는 늘고 부동산시장의 자산 디플레 현상까지 겹쳤다. 이런 상황이 한국 내수부문의 침체를 장기화하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고 국가재정 능력은 허약해졌다. 정부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의 한계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벽이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는 우리 경제사회의 복합적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물론 가계부채를 급격하게 줄이는 일은 위험한 측면이 많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한국은 세계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하고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어나갔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 한국인의 소비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가계부채 문제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한국 가계부채의 규모와 증가세는 위험 신호를 보내는 수준을 넘어섰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뇌관과도 같이 도사린 채 내수 경기를 옥죄고 있다. 그런 점에서 2014년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문제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함께 다루어야 할 이슈가 바로 부동산이다. 가계부채의 상당한 부분을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고 한국인의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 비해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매우 높다. 2014년 3월 발표될 예정인 ‘2012년 기준 한국은행 국부조사(국가 대차대조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2012년 총 국부가 약 1경 정도 되는데, 그중 약 7,000조 정도가 부동산이다. 부동산 중에서도 약 4,000조 정도가 주택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시장 중심의 자산 디플레 현상이 장기적으로 깊어지면 자산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연쇄적으로 소비시장 위축으로 확장될 위험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주택 소유 행태, 전·월세 수요 증가 등 시장 수요의 변화 추세를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
일자리 창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정부의 정책 과제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2014년 정부 재정정책에 큰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부는 기존에 추진해온 임금구조 개선 방안, 시간제 일자리정책 등이 2014년에 결실을 거두도록 정책을 보완하며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
요컨대 한국경제의 현실은 거대한 벽 앞에 있다. 국민은 고령화되고 산업은 노쇠하고 있다.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은 현저히 약화된 상태다. 2013년은 한국경제의 이런 국가 역량의 한계를 절감한 한 해였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물려받은 부정적 유산으로 말미암았다.
2014년의 기대
2014년에는 2013년을 딛고 서서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2년차로 접어든 박근혜 정부의 추진력을 본격적으로 가늠할 시기가 2014년이다. 인구 노령화와 산업 노쇠화에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지 등 중단기 과제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이런 2014년의 변화에 대해 경기 사이클을 예민하게 주시하며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2014년 한국경제의 곳곳에는 불안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 물론 긍정적 요인도 있다. 세계경제 흐름의 변화와 2013년 재정투입의 효과가 반영됨에 따라 상반기에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률 반등이 예상된다. 그러나 가계부문의 침체가 계속 진행 중이고 부동산시장의 디플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하반기 세계경제의 하방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장기추세선을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014년에는 경기 재하강에 대비한 재정정책 역할의 중요성이 강하게 대두될 것이다. 그리고 하반기 하방 위험성에 대한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 이런 공유된 인식을 바탕으로 2014년 정부와 국회는 고도의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고복지, 고부담 이제는 국민이 수용해야
정부는 지난 10년간 국민의 저부담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조세를 통해 너무나 많은 과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우리는 2013년 동안 국가재정력이 위축된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와 이후 2008년 글로벌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국가재정력이 급격히 취약해졌다.
2014년에는 국가재정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조세부담체계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미 정부는 종래 저부담체계에서 고부담체계로의 과감한 전환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저성장 기조 속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한계에 봉착하기도 했다. 앞으로 재정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결단력과 과단성 있는 정책 추진은 중차대한 현실 과제가 될 것이다.
이제 국민 고부담체계로의 전환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인식의 공유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매진해야 한다. 정치권도 단기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근시안적 셈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1977년 7월 1일 박정희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도입함으로써 국가재정의 획기적 전환을 이루었다. 이런 결단력이 한국 정치권에 다시금 요구된다.
국가재정력의 확보뿐만 아니라 재정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 역시 중대한 과제다. 2014년은 경기 활성화에 대한 집중력과 통일된 정책이 필요한 해이다. 만약 2014년의 방향을 경기 활성화에 둔다면 이를 확실히 함으로써 정책이 엇갈린 신호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향의 정책들을 한꺼번에 내놓는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 정책의 신호체계를 통일시키도록 합의해야 정부정책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에는 일단 경기를 활성화한 후, 다른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은 경기 활성화에 몰두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동안 한국경제와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1차 시도에 나섰다. 하지만 많은 숙제를 2014년으로 넘기고 말았다. 이런 누적된 이연 과제가 한국경제의 장기추세선을 짓눌러 지속적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2014년 장기추세선의 하락을 경계하면서 현실의 벽을 넘고 산업 역량의 천장을 뚫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 흠뻑 젖은 장작에 불이 붙을까?
세계경제의 영향력이 큰 G7, 특히 미국, 유로존, 일본 등은 아직도 자신의 구조적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감지되었다. 장기 저성장과 경기침체의 배경이 되었던 여러 구조적 요인과 문제점을 해소해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여기저기서 엿보이고 있다.
2014년은 세계 각국이 기존 경제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어나갈지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는 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억눌려 있던 재정부문도 조금씩 활력을 찾으리라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정부의 재정정책도 여전히 엄청난 제약을 안고 있다. 지난 3년간 미국을 위시한 세계 선진국들의 중앙은행은 고독한 싸움을 벌여왔다.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통화공급을 늘리고 이로써 민간부문을 자극해 경기의 급격한 하강을 막는 것이 유일한 정책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2014년 세계 각국은 이런 상황을 정리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정책 갈등과 고민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선진국 경제체제는 중앙은행의 외로운 분투를 나눌 만큼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 이는 마치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우선 잘 타는 휘발유와 경유를 불쏘시개로 써서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화력을 얻기 위해서는 중유重油, 즉 벙커시유에 불을 붙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과연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더욱이 경기진작 효과가 큰 벙커시유의 공급에도 여러 제약으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휘발유와 경유가 금융정책과 중앙은행의 과감한 통화정책이었다면 중유重油는 정부 재정정책의 뒷받침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2014년 세계 각국 정부 당국과 중앙은행은 어떤 정책 변환을 선택할지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황의 진전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2013년을 돌이켜보면 세계경제의 혼돈기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정부정책과 시장체제를 이용하여 이 혼돈기를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 상태는 굉장히 악화된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 구조적 문제에 손을 대기에는 여건과 환경이 매우 나빴다.
2014년과 2015년에는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상황 인식과 국내적 이해관계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책 추진력과 경쟁력을 회복하는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014년은 세계경제의 미래를 가늠하는 분수령이라 표현할 수 있다.
혼돈 속의 동북아경제 안보 지형
동북아시아 3국은 급변하는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전환기적 구조개편기에 진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외교 안보 지형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기류를 단순히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미·중 관계의 경쟁·갈등·타협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는 동북아시아 각국의 내부 사정에서 찾아야 한다. 동북아시아 3국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경제·사회적 갈등이 상당히 깊어지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정책 당국자들에게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기 위한 끈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한·중·일 정부는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의 애국심nationalism을 유발하고 있다. 내부 갈등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밖으로 이목을 주목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국민의 시선을 하나로 만들고 새로운 정책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중국은 2013년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8기 3중전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제2단계 개혁개방안을 내놓기 위해 그동안 정책 추진의 속도와 순서를 놓고 고뇌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기득권층의 지위를 흔들거나 정치·사회적 불안정성의 뇌관을 건드리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2단계 개혁을 위해 개혁과 보수 간 그리고 지역 격차 등 국내의 갈등을 뛰어넘으려고 여러 고육책을 시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중에 국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영토분쟁 등 대외 확장정책을 펼치는 중국 정부의 시도가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미지수이다.
2013년 일본은 ‘아베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정책과 좌충우돌형 정치를 겪었다. 일본 국민은 ‘잃어버린 20년’으로 표현되는 침체기 동안 일본형 장기 디플레 현상에 뼛속까지 지쳤다. 이런 일본 국민에게 중국의 팽창주의는 강한 자극제가 되었다. 아베 정부는 이 상황에서 경제 회생이라는 슬로건을 내걺으로써 지쳐 고개 숙인 일본 국민을 주목시키는 데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베 정부의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특히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극히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달걀반숙medium-boiled egg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거시정책에서 일부 성공한다 하더라도 기업의 혁신과 개혁, 일본형 투입·산출 구조의 근본적 개혁은 장기 미제로 남겨질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 등 서방세계의 동의 또는 묵인이 아베 정부의 무모한 항해의 돛에 뒷바람을 불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중·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핵심적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내의 크고 작은 분쟁들을 방치했을 때, 이것이 장기적으로 미국에 어떤 이익으로 돌아올지는 불분명하다. 여러 가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한·미·일 공조를 깨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야 하는 미국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벽을 뛰어넘는 의지와 추진력을 기대하며
2014년은 한국경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2~3년 장기추세선 하락이 계속되었는데 이 현상의 완전한 본격화 여부가 2014년을 지나면서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비관론은 2013년 이후 계속된 경기 회복세가 2014년 상반기에 정점을 이룬 후 하반기부터 다시 조정기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낙관론은 정부정책의 집중력에 따라 기업투자와 민간소비의 증가가 이루어지면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한국경제가 2014년 완연한 회복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2013년에 확인된 현실의 벽들을 뛰어넘으려는 정책과 추진력이 요구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한국경제는 2013년의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이사회나 유럽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전환 위험을 경계하고 동북아시아의 경제 안보 지형의 격동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14년 한국 정부가 어떠한 경제정책을 내놓을지, 그리고 내부 정책체제를 어떻게 정비해나갈지가 매우 중요하다. 엄중한 상황 인식을 정부와 국회와 국민이 어떻게 공유할지 또한 중대한 과제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무리한 모험과 좌충우돌 행보를 보일 때 한국이 어떤 태도와 정책 역량을 발휘해 현실의 문제를 타개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리는 2013년을 돌아보며 몇 가지 중요한 정책들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표류한 데 대해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 지금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는 현실의 난제들은 오랫동안 축적된 구조적 문제들을 유산으로 받은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구조조정과 혁신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 바닥에 깔린 장애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제 2년차로 접어든 박근혜 정부에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의지와 추진력을 기대한다.
한국경제 장기추세선 하락을 우려하며
우리는 현재의 한국경제 장기추세선 하락 현상이 일본형 디플레이션과 장기 침체 과정으로 들어가는 초기 징후인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국내소비의 감퇴, 산업구조 내부의 생산성 저하, 기업투자의 퇴조, 소비자물가 동향, 고령화사회의 사회 현상 등 제반 요소들이 20여 년 전 일본경제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을 다소나마 가지고 있다. 2014년 이후 우리가 2013년에 확인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고 산업경쟁력의 천장을 뚫고 나갈 의지와 지혜를 모은다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으리라.
우리 모두는 한국경제가 침체의 벽을 넘어 도약을 이룰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가 혁신되어야 한다. 경제적 의사결정 메커니즘과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일신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관료사회도 변화되어야 한다. 정책 당국이 내과의사와 외과의사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최근 어느 전직 일본 고위관료가 자국의 지난 20여 년의 장기 침체를 회고하며 정책 실패에 대한 후회의 날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0년 이후 어느 날 우리는 2014년을 다시 회고하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일본과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2014년에 더욱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NEAR재단의 『한국경제, 벽을 넘어서』는 이러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출간되었다. 2013년 11월 20일에 열린 NEAR 경제 세미나에서는 국내 정책 전문가들 사이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대화가 진행되었다. 여러 국책 연구원장과 민간 경제연구원장 그리고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의 정부 당국자 등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학자들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장시간 토론했다.
더 솔직하고 개방된 담론이 필요한 시기다. NEAR재단의 2014년 경제 전망과 방향 제시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책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분에게 방향 감각과 현실 인식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
정덕구
한국경제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공헌한 경제 전문가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 Think Tank인 NEAR재단을 창립하여 이끌고 있는 동아시아 전문가이다. 고려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받았다. 재경원 대외경제국장, 기획관리실장, 제2차관보, IMF 협상 수석대표, 뉴욕 외채 협상 수석대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 NEAR재단 이사장과 중국사회과학원(CASS) 정책고문, IFRS(국제회계기준) 재단 이사직을 맡고 있다.
세계경제 변화에 대응할
우리의 전략은?
허경욱(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세계경제, 어떻게 될 것인가?
IMF는 2014년 세계경제가 3.6% 성장할 것이라 내다보았다. 이는 2013년의 2.9%보다 0.7% 높은 수치다. 유럽도 플러스 성장을 이룸으로써 2008년 위기 이후 5년 만에 추세적인 성장세를 회복할 듯 보인다. 무역부문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2012~2013년간 무역성장률이 3% 미만에서 밑돌았지만 2014년에는 5%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를 해석하며 미래를 전망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수치 배후의 현실을 관통하는 통찰력이 요구되며 리스크에 대한 고려도 필수적이다. 2014년 세계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Tapering이다. 미국이 통화공급을 축소하면 신흥시장국의 자본유출을 불러오고 세계경제시장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둘째는 중국의 저조한 경제성장 가능성이다. 앞으로 중국의 경제개방 기조 및 성장세 지속 여부는 세계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 ‘고위험 5개국Fragile 5’으로 표현되는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공, 브라질의 급변하는 환율 및 자금유출 동향은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특히 터키, 남아공, 브라질은 당면한 어려운 경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위기 이후 성장세를 보이던 신흥시장국이나 개도국이 주춤하고 선진국의 성장세가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개도국의 경기침체가 일시적인지, 아니면 구조적인지가 관건이다.
1990년대 이후 시작된 신흥시장국의 대추격은 선진국의 대안정기를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대침체가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신흥국의 두드러진 성장세 약화를 ‘대감속’이라 부르고 있다.
신흥국의 약세는 국가별로 차이는 있으나 경기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요인과 구조적인 요인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세계경제의 과제
2014년 세계경제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양적완화 종료에 따른 자본이동의 충격을 잘 헤쳐나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각국이 구조조정정책을 통하여 중진국 함정을 피해 가야 한다. 중국이 3중전회에서 밝힌 시장 중심 경제로의 이행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끌지도 중요하다.
선진국의 성장 전망은 일단 고무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하방 리스크가 내포되어 있다.
먼저 2.0%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미국을 보면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염려된다. 여기에 셧다운 사태에서 보인 정치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1.2%의 성장이 전망되는 일본 역시 리스크를 안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과연 성공할지가 큰 걱정거리다. 특히 GDP의 240%에 달하는 국가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성장을 재점화시킬 수 있는 구조조정의 강력한 추진이 가능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2012~2013년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1.0% 정도의 성장률을 보이며 어느 정도 회복할 것으로 예측되는 유럽에도 하방 리스크가 있다. 아직 금융시장이 분열되어 있는 데다 은행 자본 확충이 미비하다. 또한 은행연합의 진전도 느리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기간의 높은 실업률로 비롯된 노동 숙련도의 상실이 중장기적으로 계속 성장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계 리더십의 부재 그리고 한국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하방 리스크가 실현될 때 여기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이나 메커니즘이 너무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NSA 스파이 사건, 셧다운 사태 등으로 미국의 리더십이 손상되었다. 그러나 마땅한 대체 국가나 리더가 없는 데다 G20의 공조체제도 약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앞으로 1년간은 하방 리스크 실현 가능성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상황별 대응을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경제는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단기적으로 성장 회복세를 강화시켜나가고 있다. 또한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중장기적인 잠재성장률의 하락에 적극 대처해야 하는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 등 구조조정정책과 재정 건전성을 저해하지 않는 적정 수준의 복지정책 결정과 재원조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긴박감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이다. 앞으로 세계경제의 위험 요인을 살펴보고 신중한 대응을 할 필요성이 있다.
허경욱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세계은행 Young Professional로 선임되어 IFC, IBRD에서 근무했고 IBRD의 중국 담당 금융전문가로도 활동했다. 2008년에는 청와대 국정과제 비서관을 거쳐 2009년 기획재정부 차관, 2010년 한국 OECD 대표부 대사로 일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로 지내면서 후학 양성과 학술적 연구를 하는 데 힘쓰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경제의 흐름과
동북아 경제지형,
무엇이 2014년 한국경제를 위협할 것인가?
오정근(아시아금융학회장)
급변하는 세계경제의 흐름
미국의 경제 회복과 출구전략
2014년에도 한국경제를 둘러싼 여건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외부 환경도 녹록하지 않고 내부 사정도 어렵다. 이런 내외부 경제 상황이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보겠다.
한국경제의 대외적 상황부터 살펴보자. 가장 먼저 미국의 변화가 눈에 띈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2008년과 2009년 극심한 침체의 늪에 빠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0~2012년 동안 연평균 2.1%의 완만한 성장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다 2013년 들어 본격적인 회복 움직임을 나타냈다. 3분기 경제성장률은 4.1%로 높아졌고 실업률은 7%로 하락했다. 이러한 미국의 경제 회복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격적인 양적완화정책에 힘입었다. 말하자면 달러를 풀어 유동성을 높이고 경기를 견인해온 것이다.
미국경제의 정치적 위험 변수도 사라졌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건강보험 개혁안을 둘러싸고 극한 대치를 하다가 예산안 처리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2013년 10월 1일부터 연방정부 기능이 중지되는 셧다운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100만 명의 공무원이 강제 무급휴가를 떠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10월 16일 예산안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셧다운이 막을 내렸고 그 재발 우려 또한 없어졌다.
경제 회복의 탄력을 받은 미국은 2014년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이른바 출구전략에 돌입할 것이다. 2013년 12월 18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매월 850억이던 채권 매입액 규모를 2014년 1월부터 750억 달러로 조정, 100억 달러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막 시작된 회복세에 타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러운 출구전략을 펼치겠다는 의미다.
이제 미국은 2009년 이후 5년간 유동성의 힘으로 유지하던 경제 회복을 실물경제에 맡기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GDP의 100%를 넘는 국가부채를 안고 있고 그 금액이 계속 늘고 있다. 재정수지도 큰 폭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는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데 큰 제약이 된다. 게다가 2014년 초에는 국가부채 한도 재설정 문제가 떠오를 것이다.
[그림 1] 미국의 국가부채 재정수지와 성장률, 실업률 추이
결국 민간부문에서 소비와 투자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경제 재도약이 어렵다. 소비 측면을 보자면 좋아진 고용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출구전략이 시작되면 모기지 금리가 오를 터인데 이것이 경제 회복을 주도하던 주택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소비, 투자 활성화와 함께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 문제의 해결도 미국 경제 회복의 관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은 2014년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5,00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회복 흐름 속에서 신중한 출구전략을 시작한 미국경제는 여러 당면 과제를 해결하며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이런 미국의 변화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가 2014년 경제 전망의 키포인트이다.
한 가지 예상되는 변화는 미국의 환율정책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국을 대상으로 통화가치 절상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요한 교역 대상국이면서 대표적인 경상수지 흑자국인 우리나라는 이런 미국의 환율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즉 새로운 환율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유로존 위기
유로존의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유럽통계청은 유로존경제가 2012년에 -0.7% 성장한 데 이어 2013년에도 재정위기 극복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0.4% 성장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 보았다. 이 가운데 최근 프랑스 등 소폭 회복 조짐이 있던 국가들이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주저앉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 신용이 강등되는 등 재정 문제가 여전히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로존의 회복 부진은 직접적으로 한국의 대 유로존 수출 부진을 초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출의 1/4 정도를 유로존에 의존하는 중국경제의 성장 둔화를 초래한다. 이는 다시 수출의 1/4 정도를 중국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에 2차 파급효과를 미친다. 따라서 유로존경제는 한국경제에 매우 중요한 변수다.
안정 성장을 꾀하는 중국
1982~2011년에 이르는 30년간 연평균 10.2%의 고성장을 지속해온 중국경제도 구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중국경제는 소비율(소비/GDP 비율)이 보기 드문 30% 중반대를 유지해왔다. 저임금으로 민간소비가 억제되는 가운데 40% 후반대의 높은 투자율과 수출로 고성장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침체와 중국 내부의 분배 욕구 증가로 이런 체제를 지속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은 2013년 초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 등 일련의 주요 회의에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내수진작에 의한 안정 성장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2013년 11월 9일~12일에 개최되었던 18기 3중전회에서 토지 사유화, 국유기업 민영화, 금융 자율화 등 경제의 시장화를 위한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제시하는 등 7%대의 중성장기 안착을 위한 구조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4년도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가 7%로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몸살 겪는 일본과 고강도 아베노믹스, 그 효과는?
일본경제는 과도한 국채와 재정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의 GDP에 대한 국가부채 비율은 1997년에 100%를 넘어선 후 꾸준히 상승했다. 2009년에는 드디어 200%를 넘어섰고 2013년 말 현재 245%에 이르고 있다. 재정적자도 확대되어 9%대에 이른다. 이와 같은 재정 여건의 제약 등으로 일본경제는 1992~2011년의 20년간 연평균 0.75%의 초저성장을 지속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다. 이러한 20년 장기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강도 아베노믹스가 추진되었지만 2013년 3분기 성장률이 급락하고 있다. 이 가운데 추진된 고강도 엔저전략은 그 효과를 차치하고 한국을 비롯한 근린국가들에 큰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편 과도한 부채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소비세 인상은 2014년 일본경제의 성장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2014년 일본 경제성장률은 다시 1%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한풀 꺾인 신흥시장국 성장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던 브라질, 러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국 경제의 약세가 예상된다. 그동안 유입되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로 반전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금리상승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될 전망이다. 2014년을 계기로 성장의 축이 신흥시장국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으로 이동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수출의 70% 정도를 의존하고 있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시장국 경제의 성장 둔화는 수출 증가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환율전쟁 도래
2014년 들어서는 환율전쟁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미국·유럽·일본 등 교환성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선진국들은 양적완화 통화정책을 시행해왔다. 그 결과 급속도로 팽창된 글로벌 유동성이 신흥시장국으로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신흥시장국의 통화가치가 절상되고 자산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벌어졌다. 부진한 선진국 경제의 빈자리를 신흥시장국이 메워온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글로벌 금융위기가 6년이 지나면서 미국의 출구전략이 시작되었다. 출구전략이 시작됨에 따라 미국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화 가치가 오를 것이다. 지난 6년간 신흥시장국으로 유입되었던 글로벌 유동성이 미국으로의 유출로 반전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일로라는 점이다. 미국은 2014년 4,900억 달러, 2015년 5,20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경제는 GDP 대비 100%를 넘는 막대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때문에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양적완화 통화정책에 의존해왔다. 그런데 출구전략을 시행하면 이도 여의치 않다. 남은 정책이라고는 사실상 환율정책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출구전략으로 달러화 가치절상이 예상된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 경상수지 흑자국에 대한 통화가치 절상 압력이다. 가장 경상수지 흑자가 높은 국가가 독일, 중국, 한국, 일본이다. 이른바 경상수지 흑자 빅Big4 국가다. 2013년 독일과 중국은 약 2,000억 달러, 한국과 일본은 약 600억 달러 흑자가 예상된다. 최근 발간된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가 이들 4개국 경상수지 흑자를 거론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까지 환율전쟁은 선진국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신흥시장국으로 유입된 결과 빚어진 신흥시장국 통화가치 절상이 문제였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미국 출구전략 이후 달러 강세 속에서도 경상수지 흑자국 통화가치 절상이 요구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출구전략으로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때 원화는 당연히 약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환율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한 경상수지 흑자국에 대해 약세를 용인하지 않고 환율협상을 강요할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G20 회의를 통한 압박이 병행될 전망이다. 이른바 신환율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신환율전쟁 속 4대 경상수지 흑자국
그런데 이들 4대 경상수지 흑자국도 국가마다 처지가 제각각 다르다. 우선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달러화 위상 약화를 위안화 위상 제고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추진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위안화 통화 스왑 확대, 위안화 결제통화 확대 등 다각적인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정책의 일환으로 위안화 강세화도 도모하고 있다.
위안/달러 환율은 2008년 7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줄곧 6.83 ~6.84위안을 유지해오다 위안화 환율 유연화 조치를 시행한 2010년 6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2013년 11월에는 6.10위안을 밑돌기 시작했다. 2010년 6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3년 5개월 동안 12.2% 절상된 것이다. 수출업자의 입장에서는 강세 예상 통화로 결제하면 환차익이 발생한다. 따라서 위안화 강세화는 자연스럽게 위안화 결제비중을 높인다. 요컨대 위안화 강세는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므로 위안화가 상당히 큰 폭으로 절상되지 않는 한 미국과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림 2]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 환율 추이
두 번째로 경상수지 흑자를 많이 내고 있는 독일은 특수한 상황이다. 유로존 17개국이 공동으로 쓰는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남유럽 위기가 아직도 진행되는 형편에서 독일만 보고 유로화 절상 압력을 높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독일에 대해서는 내수진작 요구 등 환율이 아닌 다른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은 미국이 최근 들어 중시하고 있는 동아시아전략의 중요한 파트너이다. 미국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경제권이 형성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앞세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대 중국 안보전략에서도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