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승
문화일보 기자, 다음 대외협력실장, 카카오 커뮤니케이션·정책 부사장,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 디지털소통센터장, alookso 대표를 거쳤고,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라고 소개한다. 가방끈을 늘려 기술정책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나 써먹지는 못했다. 독서모임 트레바리 클럽장, 서점 북살롱텍스트북 목요일 매니저, 팟캐스트 ‘조용한생활’ 책 코너 패널, 북리뷰 브런치 작가 등 책을 쓰고, 읽고, 모임하고, 팔고, 떠들고 정리하는 걸 즐기고 있다.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힘의 역전1, 2》를 썼다.
들어가는 글
나는 왜 기록하는가
나는 서울 용산구 주민이다. 늦은 밤 재난 경보 메시지가 잇따라 떴다. 이태원 해밀턴 호텔 주변이 혼잡해 교통을 통제하고 있으니 그쪽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이태원에서 큰 교통사고라도 났나 싶었다. 더 궁금해하지 않았다.
자정 좀 넘어 친구들 카톡방에 속보 링크가 공유됐다. 인파 탓에 수십 명이 실신했다는 속보다. 대체 무슨 일이람. 속보에 강한 트위터 앱을 열어 검색했다. 이미 난리였다. 단순 실신 사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날 늦는다고 예고했던 둘째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연락 좀 하라고 카톡을 남겼다. 카톡에서 숫자 1이 없어지지 않았다. 별일 없을거라 생각하면서도 세 번째 전화까지 받지 않자 피가 마르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집에서 가까웠다. 둘째는 이태원 골목에도 가끔 놀러갔다.
일단 이태원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일찍 잠든 남편에게 말은 하고 가야겠다 싶어 깨웠다. “이태원에 사고가 생긴 모양이야. 그런데 애가 연락이 닿지 않아. 거기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나가봐야겠어.” 내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잠결에 몇 마디 듣더니 벌떡 일어났다.
남편과 함께 일단 집을 나섰다. 차를 해방촌 골목 초입에 세우고 이태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거리에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지친 표정으로 길바닥에 앉아 있는 이들도 보였다. 늦은 시각인데도 깊은 밤 같지 않았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온갖 불빛 속에 핼러윈 차림의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걸어갔다. 축제의 여운이 아니라 혼돈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영혼이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다. 혹시, 혹시, 혹시, 이 거리가 내일부터 다르게 보이면 어떡하지? 이 공기를 내일도 같은 기분으로 느낄 수 있을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겁에 질려 머리 속이 하얘졌다.
녹사평역 부근부터 경찰과 구급차들이 줄을 이었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거리를 빠져나가는 이들과 정신없이 할 일을 하는 이들로 현장의 분위기는 비현실적이었다. 둘째가 저 거리 어딘가에 실신해 있다면 어떡하지? 아닐 거라고,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해도 머리 속은 이미 지옥이었다. 경찰이 접근을 통제했다. 아이 찾으러 나왔다고 말하니 젊은 경찰도 당황한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 워낙 혼란스러워 얼결에 더 들어갈 수 있었다. 뭔가에 걸려 넘어져 발목이 살짝 꺾였다. 어느새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남편은 다짜고짜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들이었다. 그도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괜찮다니 그저 고마웠다. 동시에 내 아이만, 나만, 우리만 안녕하다는 사실이 끔찍한 공포로 다가왔다. 옆에서 구급차로 실려가는 이들의 모습은 최악의 상상을 불러냈다. 미칠 듯이 안도하는 내가 미안하고 미안했다. 나만 괜찮아서, 내 아이와 내 가족이 안전해서… 지옥에서 벗어난 기쁨보다 지옥을 경험하게 될 다른 이들 생각에 다시 겁에 질렸다.
새벽까지 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론인이었던 남편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일요일 아침에 사무실로 나갔다. 오랜만에 신났을 젊은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내가 고통받은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끝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다. 애도한다. 애도한다. 애도한다. 뉴스를 보면서 함께 울어드리는 것 말고 할 게 없었다. 어떤 이들은 아침에서야 가족 누군가 지난밤 귀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테고, 황망한 소식에 설마, 설마하며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또 다시 미안하고 미안했다. 다시는 이런 미안함을 겪고 싶지 않다고 날마다 눈물 흘린 게 8년 전 세월호 아이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일이다.
하루 이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뉴스를 꾸역꾸역 챙겨봤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라도 함께해야 했다. 비통한 마음이 분노로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막을 수 있었던 참사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29일, 그날 정부가 없었다.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도 아니었다”고, 행정과 안전을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장관, 정부의 안전 최고책임자는 말했다. 마치 ‘정부의 부재’를 확인해준 천둥소리 마냥 크게 울렸다. 이관후 님의 칼럼을 읽으며 이 무정부 상태를 어찌해야 하나 암담했다.*
* [이관후 시론] 이 ‘무정부 상태’를 어찌할 것인가, https://firenzedt.com/24581 (2022.11.3)
“150여 명의 희생자가 수도 한복판에서 축제를 즐기다가 사망했는데 국가는 할 일이 없었다고 답하는 정부라면, 그곳에는 이미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주최자가 없어서 매뉴얼이 없었다고? 단풍 든 산과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는 무슨 주최자가 있어서인가? 중앙정부의 관료든 지방정부의 단체장이든 그런 철면피 같은 발언을 하는 곳에는 이미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후 정부는 자못 유능했다. 책임은커녕 참사를 사고로 덮고, 제대로 된 사과도 추모도 없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몰아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기승전 수사’에 올인하면서, 하위직 희생양을 찾아냈고, 법적 공방으로 뭐가 뭔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대대적 수사와 국정조사에도 불구, 문제가 다 해결된 걸까? 피해자 보호에도, 재발방지를 위한 구조적 문제 해결에도 관심 없는 수사가 끝이라고? 앞으로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안심할 수 있을까?
결과에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세월호 참사와 비슷하다. 피해자 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다가 어느새 ‘불순한’ 시민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도 닮았다. 10·29 참사는 오래됐으나 답하지 않은, 여러 가지 질문을 다시 꺼내게 했다. 왜 정부가 움직이지 않았을까? 정부가 없다는 불안은 괜찮을까? 한때 일 잘하던 공무원이 지금 공무원과 다른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변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가? 우리는 정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정부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평범한 우리에게 정부의 존재 이유는 뭔가? 유능한 정부를 갖기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정부란 무엇인가?
정부가 대응을 잘못해 오히려 위기를 키우고, 그 과정이 정권의 트라우마로 남아 스텝이 더 꼬이는 악순환을 목격하고 있다. 보수 정부는 위기가 본질을 잡아먹고 정권 차원의 문제가 됐던 광우병 트라우마, 세월호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태원 참사도 정부에게 악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위기 관리에 실패한 탓에 국민도 함께 괴롭다. 우리는 세월호 이후 또다시 애꿎은 목숨들을 잃었다는 사실에,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 정부의 배신에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그새 우리는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권력을 심판한 초유의 경험을 가진 시민이었다. 달라진 줄 알았는데, 달라지지 않은 것인가?
참사를 막지 못한 구조적 문제들을 쫓아가는 이 기록은 일단 나의 고통을 달래기 위한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됐다. 다만,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일지도… 트라우마에서 회복되기 위해 우리는 뭐라도 해야 한다. 정상적 질서를 되찾고, 일하는 정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참사가 남긴 질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솔직히 정부에게만 맡겨놓기에 불안했다는 내심을 밝혀둔다. 수사를 통해 법대로 처벌하겠다는 의지 외에 어떤 책임도 보여주지 않는 정부를 경험하는 것도 우리의 교훈, 자산이 되어야 한다.
정부를 탓하는 건 간단하지만,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골치 아픈 정치에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갑자기 정치에 뒤통수 맞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철학이 빈곤하고, 당신과 나, 우리 모두 영혼을 찾지 않았던 탓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과거의 방식으로 더이상 안녕하지 않다면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 유능한 정부는 어떤 것인지 다르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10·29 이후 분노로 시작된 탐색이었으나, 2023년 여름까지 정부가 각 분야에서 보여준 행태는 엉망진창이다. 아르헨티나가 한때 세계 7대 강국이었던 것을 아느냐고 한 선배가 물었다. G7이든 G8이든 들어가긴 어려워도 밀려나는 건 한순간이다. 일본이 한때 세계 제2강국이었다. 국가주의에 빠져 부국강병만 따질 시대도 아니지만 뭔가 불안하지 않은가? 일을 그르치는 정부를 갖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2023년 8월 분향소가 있는 서울광장에서 국회까지 3일에 걸쳐 삼보일배, 세 걸음마다 큰절을 하며 움직였다. 희생자들을 기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폭우 속에 고통스러운 걸음을 이어갔다. 참사 365일이 다 되어가도록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못했다. 애통하고 미안하다.
이 기록은 그분들에 대한 위로와 사과다. 또 피해자들을 비롯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사과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를 만들어온 어른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이태원에서 희생됐다. 정말 미안하다. 윗 세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대신 묻고 파고 들고 답할 것밖에 없었다. ‘내 새끼’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다음 세대를 위한 어른의 마음을 고민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상식이, 아이들에게 당연한 상식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이 잘못한 것이고, 사회가 잘못한 것인데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
이 작업을 내가 해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꼭 내가 해야만 할 일도 아니고, 그런 당위도 책무도 없다. 다만 나는 기자 출신으로 비판적으로 질문하고 해법을 찾도록 훈련받았고, 기록하는 습성이 있다. 일반 회사로 옮겨 기업이 작동하는 방식, 인재의 역량을 키우고 성과를 내도록 하는 프로세스를 경험했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배웠다. ‘어쩌다 공무원,’ 어공으로 일하면서 정부가 일하는 방식에 의문점을 갖기도 했고, 이해를 넓히기도 했다. 민간과 공공이 일하는 방식과 평가하는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지, 장단점이 무엇인지 바라볼 기회가 있었다. 한때 고위직 공무원으로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귀한 인터뷰 등을 할 수 있었다는 점도 밝혀둔다. 32명의 인터뷰를 녹취하고 정리했다. 그들의 고민에 숟가락을 얹었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분노와 절망 대신 해답, 희망을 찾기 위한 일이다. 막을 수 있는 참사를 앞으로도 막기 위해 뭐든 해야지. 그뿐이다.
2023년 10월
정혜승
추천의 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태원 참사로 또래를 떠나보낸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정혜승 작가의 ‘정부가 없다’는 절규에 뼈아프게 공감했다. 재난관리체계를 비롯한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현실을 담담하게 기술한 것을 보고 있자니, 다시 가슴이 쓰라렸다.
《정부가 없다》는 저자의 공직사회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의 실패 원인을 찾는다. 절망에서 나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필요한 정부의 모습을 길어낸다. 저자는 “정부 조직의 말초신경까지 깨우는 것은 리더십”이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다정하고 유능한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끝까지 정치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손을 내민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시민 활동가부터, 국가행정의 밀알이 되는 공무원들, 정치의 한복판에서 국정운영의 철학을 고민해온 핵심 책임자들까지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절망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할 것을 권유한다. 참으로 다정한 용기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로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모든 분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을 통해, ‘유능하고 다정한 정부는 가능하다’는, ‘정부를 만드는 것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들’이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용혜인(21대 국회의원,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정혜승 작가는 기록광이다. TV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시에 폰으로 요약과 리뷰를 작성하는 신기神技를 목격한 적도 있다. 그만큼 현상을 빨리 파악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다. 《정부가 없다》는 그런 정혜승이 10·29 이태원 참사 이래 연쇄적으로 맞닥뜨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에 대해 기록을 넘어 원인과 해법까지 헤아리고자 ‘폭주’한 결과다. 어찌 보면 정혜승 작가 안의 정혜승 기자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긴 기획 기사로 보이기도 한다.
지루한 직업이라는 유서 깊은 평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무원을 존경해 왔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심지를 지닌 사람들의 직업임을 경험으로 실감했고, 유능하게 작동하는 행정 시스템에는 훌륭한 건축물이나 교향곡에 비할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 내게 지난 2년은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시간이었다.
저자는 국민 안전에 대한 대응을 포함해 최근 자주 목도되는 행정의 역기능이 어디에 기인하는지, 언론보도와 데이터를 해석하고 공직사회 내부자와 관찰자를 인터뷰해 설명한다. 그리고 최종 책임의 무게를 조직 상부에 싣는 일종의 ‘고중심 설계’를 개선책의 하나로 제안한다. 책의 문체는 저널리즘의 건조한 그것이지만 나는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내내 2022년 10월 29일 밤의 위협적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느낀다.
- 김혜리(〈씨네21〉 편집위원)
고민은 아랫사람 몫이 아니다
한밤중에 장관을 깨워야 하는 큰일이란 건 뭐지? 이게 그럴 만한 일인가? 괜한 일로 호들갑 떨었다고 찍히면 어떡하지? 이건 누구나 할 만한 고민이다. 그런데 이 고민은 아랫사람 몫이 아니다. 모든 경우의 수에 맞는 매뉴얼을 갖추는 게 시스템이고, 저런 고민할 시간에 신속 대응하도록 해주는 장관의 평소 태도가 중요하다.
“장관님, 고성에 산불이 났습니다.”
No. 이건, 맞지 않는 보고였다. 적어도 그에겐 그랬다. 산불이 났다? 그래서?
“장관님, 지금 고성으로 가셔야겠습니다.”
“아, 5분 내로 나갈게요.”
문재인 정부 초대 행안부 장관을 지냈던 김부겸 전 장관의 일화다. 행안부 장관으로서 2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킨 그는 휴대폰에 집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단다. 요즘 사람들 다 그렇겠지만 폰 배터리도 꼼꼼하게 챙겼고, 폰 자체를 멀리 두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5분 내 출동하는 대기 상태를 유지하는 데 애썼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떤 상황이길래 장관까지 호출하게 됐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일단 출동했다. 그런 보고는 이동하면서 들어도 충분했다. 사고 현장에 먼저 달려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장관이 이미 잠들었든, 뭘 하고 있든 보고는 불시에 이뤄졌다.
“신속한 초기대응 덕분에 큰 일을 막은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겠죠. 결국 별일 아닌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그에 상관없이 장관은 잠을 깨운 보고 라인의 실무자와 상급자를 칭찬했어요. 사건사고와 재난 대응에 장관의 촉이 날카롭게 곤두선 상태에서 우선순위는 ‘만약의 가능성’으로부터 안전을 챙기는 데 있었습니다. 무엇이 됐든, 일단 신속하게 보고한 사실을 장관이 높이 평가했어요. 알고 보니 별일 아닌 것으로 장관을 불러냈다는 염려는 전혀 할 필요가 없었어요. 일을 제대로 한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죠.”
행안부 장관 시절 김 전 장관을 모셨던 측근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국민 안전에 관련된 일이라면, 크든 작든, 대체 상황 파악도 잘 안 되더라도 일단 장관을 깨우는 것이 칭찬받는 매뉴얼이었다. 이건 장관이 그렇게 일하면 된다. 즉 리더가 작심하면 된다. 아랫사람들이 전전긍긍 눈치 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인사권자가 무엇을 바라보는가? 어떤 일을 무엇으로 평가하는가? 조직은 바보가 아니다. 조직은 모두 인사권자를 바라본다. 같은 시선을 유지하고, 같은 촉을 세울수록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장관의 태도가 조직을 사건사고에 예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그래야만 한다고 했다.
김부겸 장관이 유능했는지, 다른 일도 잘했는지 여부는 내가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는 조직의 공무원들을 유능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칭찬과 비판을 적절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가슴 깊이 담아두고 출범한 정부였다. 국민을 재난과 재해, 사건과 사고에서 보호하지 못하면 후폭풍이 올 게 뻔하지 않겠나? 그는 안전 최고책임자로서 감당해야 했다. 어쩌면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국민의 안전은 무시무시하게 무거운 과제다. 국민이 뽑아서 그 자리에 앉았든, 원래 그 일을 하든 그게 책무다.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
김 전 장관에게 안전 관련 보고를 혹여 놓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조직을 그렇게 운영했다.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조짐이 있다고? 지금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상황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가? 무엇이 필요한 상황인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정부 일이란 게 별일 없으면 조용히 지나간다. 일한 티도 안 난다. 사실 별일 없는 게 큰일을 해낸 거다. 보이지 않아 몰랐다. 김 전 장관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이는 잠시 시선을 돌렸고, 나는 듣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0·29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기업에 있는 지인 A는 한 외국계 화학기업의 안전 책임 기준을 전해줬다. 무조건 보고했는지 여부가 책임을 좌우한다. 40년간 안전 업무만 해온 이가 만든 원칙이라는데, 사고가 나거나 날 것 같을 때 보고하지 않은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이든 괜히 보고했다고 혼나거나 질책 받는 것이 아니라, 보고를 하지 않았을 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야 한다. 보고를 잘하면 칭찬과 격려를 받게 되고, 보고를 늦추거나 피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이 경우, 크든 작든 무슨 염려가 있다면 무조건 윗선에 보고하는 것이 개인의 안위에 도움된다. 일단 보고한 이는 책임에서 자유롭고, 결국 안전의 여러 가지 신호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책임지는 구조다. 신속한 판단과 대응이 필요한 재난 재해 현장에서는 이 같은 정리가 필수적이다. 직급이 낮은 실무자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 되지만, 촌각을 다퉈 다수의 생명을 구해야 할 때, 판단과 결정의 무게를 덜어주도록 책임자급 리더에게도 최고책임자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줘야 한다.
장관이 현장에 달려가는 것은 그가 엄청나게 유능해서 온갖 대응을 진두지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장관이 산불이든 재난 현장에 달려간다고 한들, 직접 현장 대응을 지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지역, 재난과 재해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관할 소방서장, 경찰서장, 지자체장 등이 분명히 있다. 한참 바쁘고 경황없는 시간에 굳이 장관이 의전 챙기면서 보고 받으러 달려갈 이유도 없다. 그건 오히려 민폐다. 그렇다면 왜 장관은 보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간 것일까?
평소에도 그렇지만 리더의 일은 의사결정이며 책임지는 역할이다. 재난 재해 현장에서는 특히 신속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예컨대 화재 현장에서 관할 소방 인력을 총동원하는 것으로 충분할지, 전국 단위에서 소방차를 총동원해야 할지 여부를 누가 결정할까? 현장의 컨트롤 타워다. 대신 부처 책임자인 장관이 확실하게 책임을 질 때 일이 더 빠르다. 현장 지휘관에게 그 모든 결정과 대응에 대해 책임지라고 하는 대신 “내가 책임질 테니 염려 말고 신속 대응하라”고 하는 게 서울에서 달려가 현장 책임자 옆에 앉아 있는, 잠시 방문한 장관의 역할이다.
김부겸 전 장관이 책임지고 내렸던 의사결정의 정점은 사실 2017년 수능시험 연기 판단이다. 포항 지진 직후 현장에 달려갔다가 수능시험을 연기하자고 곧바로 국무총리와 대통령에게 의견을 물었다. 안전을 앞세우면 그런 결단이 나온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태도가 전부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고위공직자의 인식과 태도는 공직사회를 움직인다. 10·29 참사 이후 행정안전부 수장인 이상민의 행적을 보면, 장관 자리가 뭐하는 것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장관으로서 자각, 인식이 있다면 그런 태도는 나올 수 없다. 그는 대체 뭐하던 사람이지?
그는 대학교 4학년이던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자타공인 수재였다. 충암고 4년 선배인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고시 9수를 했으니, 그는 선배를 앞질러 먼저 법률가가 됐다. 1992년 판사로 임용될 당시 스물여섯 살. 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종합해서 2등으로 임관했다. 법전 잘 외우는 능력으로 사회 지도층이 되는 사회에서 그는 초특급 에이스다. 판사 임용 후 법관으로 15년, 변호사로서 이후 커리어를 이어갔고, 사회에 나온 지 30년 만에 장관으로 임명됐으니 완벽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서울대 법대 등에 출강까지 했던 법률가로서는 이례적으로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까지 졸업했다. 대체 그는 어떤 열정과 욕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2012년 검사 출신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대법관 시절 눈여겨봤던 그를 정치쇄신특위 간사로 발탁했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 전문위원이었고, 민주평통 자문위원, 방송통신위원회 보도교양방송특위 위원도 역임했다. 전문성이 있나 싶지만, 역시 법률가는 온 동네에서 모셔간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냈으니 온갖 영예를 다 누린 셈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끈이 장관 자리로 이끌었다 해도 이력으로 볼 때 그를 낙하산이니 뭐니 할 수준은 아니다. 한국 사회 보통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2022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그의 언행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드러냈다. 그는 일단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자신의 조직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지 몰랐다. 취임 후 반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고 변명하기도 부끄럽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예년의 경우하고 그렇게, 물론 코로나라는 게 좀 풀리는 상황이 있었습니다마는 그전과 비교할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고…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얘기가 있는데 통상과 달리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
바로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 대응 방안 브리핑이었다. 다시 봐도 놀랍지 않은가? 팬데믹 이후 첫 노마스크 축제였다. 그런데 인파가 어느 정도 몰릴 것인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아무 대책이 없었다고 실토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말을 안전 최고책임자가 비극적 참사 다음 날 무심하게 해버렸다. 황망한 가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정부의 소통 책무 중 하나인데 저 발언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일단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한 정부로서 근원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태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장관의 거짓말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말과 달리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해마다 해오던 대응조차 빼먹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주무 장관이 일을 수습하기는커녕 잘못된 대응으로 일파만파 논란을 부추겼다.
이 장관은 입만 열면 사고가 이어졌다. 그는 11월 국회에서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행안부에서는 (유족들) 연락처는 물론 명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고 했으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진짜 거짓을 말했다. 알고 보니 행안부는 참사 이틀 뒤인 10월 31일 서울시로부터 유족 이름과 연락처 명단을 받았다. 행안부가 희생자 주민등록번호를 중대본에 제공했다. 부처 담당자가 보고를 누락했을까? 무엇을 챙겨야 하고, 어떤 일이 문제가 되는지 담당자가 빠뜨린 걸까?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난 장관은 업무 파악을 어디까지 하고 있어야 하나?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면 팩트 체크는 하고 국회에 출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초기 대응은 처참했다. 현장도 엉망이었지만, 재난 대응 주무장관인 그는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거의 20분 늦게 사건을 인지했다. 국정조사에서는 당시 정황이 좀 더 상세히 드러났다. 그는 보고를 받은 뒤 이태원 현장을 찾아가는 데 85분이 걸렸다. 압구정동 자택에서 일산 사는 수행비서의 관용차량을 기다렸다. 그동안 응급의료체계 가동을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의료기관에 연락하는 수고도 전혀 하지 않았다. 마땅히 해야 할 조율과 조정 역할이 자기 몫이라 생각을 못한 것일까? 당시 현장에서 구급활동에 나선 소방관들은 “너무나 외로웠다”고 국정조사에서 토로했다. 소방관들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고, 구조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조차 마련되지 않을 정도로 인파가 통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장관은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날 그의 발언에 문제의 실마리가 다 담겨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10만 명이 모여드는 좁은 거리 대신 경찰은 다른 곳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평시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 배치란 것도 사실과 달랐지만, 정부가 뭘 놓쳤는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상당수 (경찰)병력이 광화문 쪽에 배치됐고, 지방에 있는 병력까지 동원할 계획 등이 유사시를 대비해 짜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종전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였기 때문에 그쪽에는 평시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이 배치됐던 것으로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소방인력 배치 부족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원인이 아니었다는 그의 문제 발언 다음날 국민의힘 내부에서 “국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여기에 동참하는 것이 아닌 행태의 언행은 조심해야 한다”(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일반 국민이 듣기에 적절한 발언 아니었다”(김종혁 국민의힘 비대위원) 등의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사실상 ‘꼬리 자르기’ 수순으로 보였다. 이상민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구나, 그 바닥 생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식조차 기대할 수 있는 정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상민 장관은 그런 양식이 없었다는 것을 이제 모두 알고 있다. 아직도 버틴다고? 무책임에 대한 분노는 뜨거웠지만 정부측 메아리가 없었다. 그의 해임을 둘러싸고 야당과 시민사회의 목만 아팠고, 공방으로 시간을 소모했다. 탄핵까지 밀어붙였으나 무산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유족들의 애끓는 분노는 외면당했다.
공직자가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할 수 있는 절차가 탄핵이다. 이상민 장관은 국무위원이 탄핵 심판을 받는 최초의 사례가 됐다. 이태원 참사 이후 사임이나 경질은커녕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자 더불어민주당은 이 장관 해임건의안에 이어 탄핵을 추진했다. 정의당과 기본소득당도 함께했다. 이 장관이 참사 관련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를 명시한 헌법과 재난안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2023년 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그의 직무가 정지됐다.
그러나 국정책임자 윤석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나라 행정과 안전의 최고책임자 자리를 그리 비워놓아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날로부터 167일 후 7월에 헌법재판소는 그의 탄핵안을 기각했다. 9명 전원 일치 의견이었다. 헌재는 그가 최적의 판단과 대응을 하지 못했더라도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헌법상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별개 의견을 통해 늑장 대응과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은 근거가 없으며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이었다.
공감할 줄 모르는
꽃길만 걸어온 에이스
논란이 지나간 뒤, 이상민 장관은 여전히 안녕하다. 일 잘한다는 유능한 존재감도 없었고, 직무정지 상태 공백이 티가 나지도 않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을 듯하다. 2023년 8월 새만금 잼버리 공동 조직위원장으로 그의 이름이 또 등장했고, 역시 일하지 않는 것이 드러났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은 스스로 시대의 상징, 질문이 됐다. 그는 좋은 스펙이 유능한 인재를 만들지 못한다는 증거다. 스펙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 제기다. 장관이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 리더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질문도 남겼다.
초특급 에이스 이상민 장관은 기본적으로 업무 이해도가 너무 떨어졌다. 그는 행정안전부 수장으로서 부처 이름에 왜 ‘안전’이 들어가는지, 정부 행사, 주최측이 있는 행사가 아니라 해도 모든 사건사고 재난참사가 자신의 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안전 최고책임자가 안전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실무자들은 무엇을 목표로 일하게 될까? 그는 부처의 보고 프로세스도 제대로 몰랐다. 경찰이든 소방청이든 모두 자신의 관할인데 주무부처 장관도 모르게 어떻게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된 것인지, 그 경위도, 절차도 몰랐다. 국가 재난관리시스템은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참사 3일 만에야 국회에 불려가서 사과했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자신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는 ‘사과’ 대신 ‘유감’을 표명한 장관이었다.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적 없다”고 했다. 거취를 대통령실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했다.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장관으로서 대통령과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설마 사의 표명은 했겠지, 대통령이 잡았겠지, 아니 최소한 대통령실의 비서실장에게 상의라도 했겠지’, 이렇게 생각했던 나는 정말 순진했다. 기업에서 한때 위기 대응 업무를 했고, 청와대에서 정무적 경험도 더했던 내 이력이 부끄럽다.
이상민 장관의 행보는 정부 소통 차원에서 봐도 경이로울 지경이다. 차라리 정부의 안전 최고책임자로서 자세를 한껏 낮추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참사 원인 규명과 피해자와 유가족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모범답안에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답답한 답변이지만 그게 필요한 답일 때가 있다. 장관이 똑 부러진 답을 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은 질문자의 몫이고, 기자들이 할 일이지만 최소한 어리석은 답을 하지 않는 것은 답변자의 몫이다. 그는 조직의 수장이고, 부처 공보 인력과 정무 담당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참사 규모로 볼 때, 전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했다. ‘재난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라고 분명히 밝힌 전 정부와 입장이 달랐다고 해도 용산 대통령실에 ‘강 건너 불’일 수 없었다.
예전에는 청와대와 행안부 주도로 이른바 PGPress Guidance, 언론대응지침을 마련하고 정부 브리핑에 나서는 것이 상식, 아니 보통의 관행이었다. 어디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천편일률적인 답이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다. 상황을 파악하면서 팩트를 챙기는 게 먼저다. 그전에는 ‘확인 중’이라고 끊을 수도 있다. 그는 어쩌자고 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수준의 답을 내놓았을까? 아랫사람이든 누구에게든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놓은 것은 똑똑하지만 오만한 이들의 실수에 해당한다. 부처의 메시지 관리도 안 됐고, 대통령실과 조율도 안 됐고, 그 어떤 컨트롤 타워도 보이지 않는 깜깜이 답변, 대충 답변이었다. 실무자들이 장관을 바보 만들려고 한 것으로 봐야 할까? 혹은 실무자들의 진정성 담긴 조언을 듣지 않거나 무시하는 분위기일까?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는 발언도 오래 남을 망언이다. 결국 그는 근황을 묻는 개인적인 안부 문자라고 생각해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했다고 사과했지만, ‘폼나게’ 같은 단어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냈다니… 정무감각, 언론감각, 아니 그 어떠한 공인의 감각도 갖추지 못한 이가 장관이었다. 이쯤 되면 장관 청문회에 앞서 기본 상식과 교양, 공감력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다 갖춘 이를 장관으로 얻을 복이 없다면, 조직이 장관 트레이닝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를 비롯한 한국의 엘리트들은 혼자 잘났다.
“그는 정말 엘리트 법관의 길을 걸었습니다. 보통의 판사들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대법관까지 가는 길을 최고로 쳤지만 그는 그것보다 더 멀리 가고 싶어했어요. 다만 젊어서부터 꽃길만 걸은 이들은 대중과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데 그가 딱 그랬어요. 뭐가 문제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고, 지금 왜 국민들이 분노하는지 이해도 잘 못할 겁니다.”
한때 이 장관과 같은 법원에서 근무했던 판사 출신 변호사 B의 말이다. B는 이 장관과 마찬가지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윤 대통령 역시 이 장관을 비판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들을 부추기는 정치 세력에 맞서 이 장관을 보호하는 것이 대통령에게는 공정이란 얘기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어떤 공직자들은 선민의식을 굳이 감추지 않는 엘리트들이다. 다들 똑똑한 맛에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것과 ‘일머리’, ‘생활 머리’는 다른 얘기다. 정부와 협업하는 민간 연구자 C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모르는 엘리트의 한계를 지적했다.
“소위 엘리트들은 전문가 바보 같아요. 사람들이 다들 하고 사는 송금하고, 영수증 챙기고, 살림하고, 마트 가고, 그런 일상을 엘리트들이 얼마나 알까 싶습니다. 다들 1등만 해서 자기 손으로 일반적인 경제생활을 제대로 해봤는지 모르겠어요. 민원이나 서류 떼러 관공서에 갔을 때의 어려움과 당혹감 같은 것도 잘 모릅니다. 일반인들과 경험치가 너무 달라요. 사회는 그들을 1등으로 포장해왔지만 무슨 1등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되는 일도 해보고, 안 되는 것도 해봐야 좌절감과 효능감을 느끼는데, 실제 일을 해본 적 없는 엘리트들은 경험 근육이 하나도 없어요.”
마침 하버드 출신 한덕수 총리가 2023년 9월 국회에서 “택시 기본요금은 1,000원쯤, 시내버스 요금은 2,000원”이라고 틀리게 말해 망신을 산 것은 고위 공직자들의 드물지 않은 실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한 번도 직접 눌러본 적 없어서 오랜만에 혼자 탔을 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아 당황했다는 어느 정치인의 에피소드도 실화다. 국민의 삶을 모르니 어디가 가려운 곳인지 모르는 것은 물론, 누구나 느끼는 문제에 공감이 쉬울 리 없다. 엘리트란 것만 믿고 리더 역할을 맡기는 것이 이렇게 위험하다.
정부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왜 10·29 참사에 이토록 분노하는가? 정부의 후속 대응도 문제지만, 처음부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아예 기사 제목을 ‘확실히 막을 수 있었다Absolutely Avoidable’고 뽑았다.*
* Halloween Crowd Crush in Seoul Was ‘Absolutely Avoidable,’ Experts Say 〈뉴욕 타임스〉(2022. 10.31)
차례로 드러나는 진실은 막연한 짐작보다 훨씬 끔찍했다. 상식 있는 시민들이 다 그랬겠지만, 경찰에 급히 도움을 구하는 112에 압사 위험 신고 11건이 참사 4시간 전부터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 견딜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분노가 터져버렸고, 정부의 행태를 쫓아 기록을 시작한 이유가 됐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당일 경찰에 접수된 112 신고 가운데 일부가 허위로 처리된 사실도 드러났다.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이 10만 명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의 안전관리를 사전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참사 며칠 전 인파 관리가 필요하다는 경찰 내부 보고는 묵살된 정황이 드러났다.
우리가 어떤 나라인가? 〈뉴욕 타임스〉는 “한국은 군중 진압에 대해 전문 훈련을 받은 경찰 대대를 운영한다”고 했다.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은 81개 기동대 약 4,800명 인력을 배치하면서 대부분 집회 및 시위에 대응하도록 했다. 용산 대통령실 주변 촛불시위를 비롯해 총 21개 집회를 ‘주요 상황’으로 보고 경찰 기동대를 배치했으나 이태원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태원에서 도로를 통제하던 경찰에게도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경찰은 차도를 사수했다. 인도의 안전 대신 차도의 원활한 통행이 중요했다. “‘대형사고’ 무전에도… 경찰은 참사 당일 차로 확보만 집중했다”, 〈한국일보〉 11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차도로 사람들이 밀려나오지 않도록 그들을 인도로 다시 올려 보내느라 애썼다. 이태원 파출소 건너편에 순찰차를 고정 배치해 인파가 차도로 못 내려오도록 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하던 112상황실장이 한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울시의 역할 부재에도 유감을 표했다.
“진짜 잘못한 건 서울시죠. 여의도 불꽃축제나 퀴어퍼레이드처럼 일정 규모 이상 인파가 모일 것이 예상되면 박원순 시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어요. 회의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인파 얼마나 예상하냐, 지하철 무정차는 몇 군데 할 거냐. 서울시가 경찰에 협조도 요청해 경찰 배치하고, 예산 지원도 하고 그랬죠. 민간 행사라 해도 그만한 행사인지 인지 못했다면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의 책임은 분명합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나비효과
모든 건 우선순위의 문제다. 경찰에게는 무엇이 중요했나?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해 용산경찰서 업무 비중이 확 바뀐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청와대 관할 종로경찰서는 청와대 경호인력과 협력해 대통령 관련 경호를 늘 해오던 곳이다. 하지만 용산경찰서에게는 예전에 없던, 생각 못했던 새로운 업무다. 종로경찰서장은 정무와 경비, 행정을 두루 거친 이가 가는 자리였고, 용산경찰서는 아니었다. 8월에 다른 적임자로 경찰서장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밀렸다고 한다.
안 하던 일, 안 해본 일을 하는 것, 이게 그렇게 위험한 일인가 싶지만 모든 변수는 연결된다. 사고 이전 용산경찰서의 주파수는 대통령실 경비에 예민하게 맞춰져 있었다. 윤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실 경비에 동원된 서초경찰서와 용산경찰서에서는 기존 업무에 더해 추가 근무가 크게 늘어나면서 ‘살려달라’는 호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경찰이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대통령만 지킨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대통령이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서 나와 용산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집무하고 거주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관련 기관들이 혼란스럽고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빌미를 잡혀 시범 케이스로 당하면 안 된다,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찍히지 말자는 마음으로 경찰병력을 대통령에게 과하게 투입했다고 봐야죠. 모든 주파수가 오로지 대통령에게 향해 있으니 국민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고요. 축제에 투입할 병력은 없다고 판단했잖아요. 관련 매뉴얼이 없으니까 우왕좌왕 허둥지둥했고, 용산경찰서에게는 용산 대통령실이 시위대에 뚫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단호했다. 결국은 대통령 눈치보기, 대통령실 이전의 나비효과 라는 얘기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은 ‘대통령실 이전의 나비 효과’(2022.11.16)라는 칼럼을 통해 “용산서에 임무가 늘어난 만큼 인력 보강이나 조직 강화가 이뤄졌는지, 용산서장의 유임이 용산서가 맡게 된 막중한 임무를 고려한 인사인지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검사가 다루는 형법적 인과관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과관계다. 대통령이라면 그런 인과관계까지 보고 정무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이전을 신중하게 결정했는지, 다양한 영향을 충분히 고려했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진행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는 부질없다.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긴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은 1년 넘게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결과,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유로,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이유로 좌초했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차라리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지는 게 낫다고 했다. 반면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은 대선 직후 다른 이슈를 다 뭉개버린 블랙홀 같은 사안이었다. 공약에도 없었고, 어떤 준비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관저에 대한, 집무실에 대한 호불호를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정치적 명분으로 포장해서 밀어붙인 사안이다.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태풍을 일으킨 나비의 날갯짓이 아니었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재난과 참사에 대응하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용산 대통령실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여부도 언젠가 밝혀지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안보실에서 근무했던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위기관리센터 재난재해 실무진들이 이전 정부와 일했다는 이유로 싹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들은 사실 박근혜 정부부터 일하던 이들이었다. 센터의 각종 장비를 운영하는 기술직들이라 그대로 업무를 이어갔으나 이 정부에서는 교체됐다. 또 다른 예전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위기관리센터 시스템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세팅과 운영에 익숙해지는 데 몇 달이 걸렸다”며 “용산 이전 후 세팅은 시간이 훨씬 더 걸릴 수밖에 없어 10·29 무렵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하기야 이태원 참사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