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돈 때문에 케인즈를 죽였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세상을 살고 있다. 며칠 전 TV에서 본 영국 젊은이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자리를 다시 찾고 있다며, 영국이 낳은 위대한 경제학자 존 케인즈(John M. Keynes)의 빗나간 예측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밤 꿈에 케인즈를 만나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총을 쏘고 말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꿈속에서 그는 케인즈에게 따지듯 퍼부었다고 한다.
“나는 돈 때문에 케인즈를 죽였어요. 높은 월세를 견디다 못해 배에서 살고 있어요. 한곳에 오래 머물면 벌금이 나와서 2주마다 머물 장소를 옮기는 나의 비애를 그가 알기나 할까요. 런던 중심부 운하에서 배 댈 곳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뭐, 우리가 일주일에 15시간 일한다고요? 우리는 비정규직인 데다,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는 날이 허다합니다. 높은 주거비와 식비에 쫓기며 힘들게 살고 있어요. 케인즈가 말한 100년 뒤에 올 거란 풍요는 온데간데없고, 내 주머니는 늘 텅 비어 있다고요! 도대체 세상의 돈은 다 어디로 간 겁니까?”
케인즈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여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위대한 경제학자다. 그는 1930년 자신의 에세이 「손자 세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에서 “2030년 인류는 ‘기술진보’와 ‘자본축적’으로 급속한 생산성 증가를 누릴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은 케인즈의 추측이 어느 정도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축을 하면 ‘복리(複利)의 마법’이 우리 손에 돈을 듬뿍 쥐여줄 것”이라며 인류가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본 대목은 오랜 저금리에 익숙한 현대인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예언이 되었다.
케인즈는 이 에세이에서 또 “인류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고 여가를 누리면서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도 했다. 젊은이가 꿈속에서 비판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케인즈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움, 진리, 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여전히 일 중독에 빠져 있고,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자본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넘어갔지만, 사람들은 케인즈가 꿈꾸던 여가의 시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돈이 없다고 투덜대고 시간이 없다고 암담해한다.
왜 이런 식으로 세상이 힘들게 변해가고 있을까? 누군가는 자본주의에 불경한 측면이 있어서 오늘날 사회의 결속은 사라지고, 공익을 추구하는 정신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현실의 시장이 인간의 뒤틀린 욕망으로 왜곡되었다는 주장이다. 케인즈는 에세이에서 인간의 욕망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는 기본 의식주를 충족하고자 하는 절대적 욕구와 남들보다 우월해 보이고 싶어 하는 상대적 욕구가 있다. 인간이 상대적 욕구를 지나치게 탐닉할 때 자본주의 체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공간이다. 인간에게는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고 남들과 비교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사회 체제가 공정하지 않으면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로 가득 찬다. 그런 사회로 가면 우리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케인즈가 이와 같이 예언한 지도 어느덧 90여 년이 흘렀다. 그는 사람들이 돈에 초연하길 바랐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의 축적이 최고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가장 아쉬워했을 대목이다. 물론 100세 시대를 사는 데 돈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제는 돈의 노예처럼 되는 것 아니겠나.
소득과 성장의 측면에서 케인즈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큰 전쟁이나 인구 증가가 없다면 세계경제가 4배에서 8배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적으로 지난 70년 동안 1인당 소득은 4배 이상 높아졌다. 1930년에 산업계 인력의 평균 노동시간은 일주일에 50시간이었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평균 일주일에 40시간 일한다. 일주일에 15시간 일할 것이라던 케인즈의 예견은 상식적인 추정에 따른 것이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조금씩 많아질수록 추가적인 만족도는 더 낮아진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유해질수록 소득이 주는 만족도가 줄어들고 여가의 상대적 가치는 증가한다. 그래서 그는 일보다는 여가를 더 많이 누리는 쪽을 사람들이 선호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인류의 생산성이 이만큼 발전했는데 도대체 우리는 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얼마나 더 소유해야 행복해질까?
엔데믹(Endemic)의 사전적 의미는 ‘주기적 유행’ 단계라는 뜻이다. 예상치 못할 만큼의 급격한 감염병의 증가는 종식되었다는 말이다. 팬데믹의 끝이 바이러스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속적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하면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엔데믹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엔데믹 시대를 풍요롭게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나고 싶었다. 욕망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찾는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가치가 있을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시각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오늘날 우리 경제와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각도로 살펴볼 계획이다. 세계의 석학들이 케인즈가 꿈꾸었던 세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줄 것이란 일말의 희망을 갖고, 각박해진 우리의 삶에 위로가 되는 경제적 혜안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우리네 삶과 밀접한 식탁에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초대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쉽고 재미있게 조망하려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26명의 경제학자는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향기를 갖고 있다. 그 향기를쫒쫓되,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노벨 경제학자들에게 숨겨진 은밀한 향기를 맛보며 식탁 위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글을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향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SCENT’의 각 글자를 따서 장별 주제를 정했다.
첫째, Soul of Life and Economy, 삶과 경제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정부와 시장이라는 두 공간에서 가슴 따뜻하며 이성적인 정책은 없을까. 시장 혹은 정부 만능주의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더 큰 번영을 이루기 위한 시장설계와 정부의 역할은 가능할까?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 경제학이 차가운 학문이 아니라 가슴 따뜻한 학문임을 말하고 싶었다.
둘째, Challenges Facing Us,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지속적인 경기침체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있다. 매년 늘어나는 성장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삶이 각박해져 간다고 아우성이다. 비혼, 만혼이 만연해지고 1인 가구가 늘어가는 한편 청년들은 높은 주거비로 힘들어한다. 양적 완화처럼 돈을 많이 푸는 정책이 빈번해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를 낳으라고 독신세를 내게 하는 것은 적절할까? 전통 경제학의 관점에서 도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셋째, Economy and Ethics, 경제와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경제를 이루는 각종 기본 원리를 통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경제는 심리에 영향을 많이 받고 때로는 전염성 강한 이야기로 거품이나 비관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경제 전반에 흐르는 지나친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우리가 왜 실수를 거듭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선순환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독자들과 논하고 싶었다.
넷째, Nation Building, 국가 만들기다. 시장 실패 못지않게 정부 실패는 우리네 삶을 경제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의도는 좋지만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이념 과잉 경제이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경제는 실용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국가경영이 기업경영과 다른 점을 우선 인식하고, 좋은 국가 제도의 구성요소, 선심성 경제 지양, 훌륭한 교육 투자와 같은 주제를 통해 부국강병의 길을 말하고 싶었다.
다섯째, Technology and Innovation, 기술과 혁신 이야기다. 디지털 변혁의 종이 울린 지도 오래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뿌리의 힘, 디지털 공간에서 연결된 힘,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의 힘, 창의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는 상상의 힘으로 작은 혁신을 매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게 국가번영의 열쇠이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의 저녁 식탁을 바꾸는 노벨 경제학자들의 지혜를 만나보자.
Paul Anthony Samuelson
폴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
행복은 어떻게 측정되는가
01|폴 새뮤얼슨(1915~2009)
제2회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며 고전학파의 미시적 시장균형 이론과 케인즈의 거시경제 정책론을 접목한 신고전파 종합의 대부이다. 미국 인디애나주 출생으로 1935년 시카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다. 경제학에 미·적분 등 수학을 도입해 동태분석과 정태분석을 체계화했다. 공공재는 비배타성과 비경합성이 있으므로 민간이 아닌 정부가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비배타성: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소비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소비를 못 하게 할 수 없는 것. 비경합성: 소비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한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양에는 변함이 없는 것). 효율적 시장 가설의 개발에 기여했고 후생경제학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보다는 합리적인 규제가 동반된 시장이 훨씬 이롭다고 주장하며 밀턴 프리드먼과 학문적 갈등을 보였다.
소득 3만 5000달러 달성보다 소중한 것
우리나라는 2006년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다. 2017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후(3만 1734달러) 2021년 3만 5168달러를 달성했다. 이러한 수치의 빛이 바래지 않기 위해서는 소득 수준에 걸맞게 삶의 질이 향상되어야 한다. 삶의 질 개선이 없는 성장은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국가들은 통상 1인당 국민소득과 삶의 질 간에 비례 관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여러 지표에서 소득 수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이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에 이르고 GDP(국내총생산) 규모가 커지면 성장률은 줄기 마련이다. 고성장하던 과거를 그리워하면 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부탄의 국민행복지수, UN(국제연합) 인간개발지수,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등은 양적 GDP 개념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 논의라는 공통점이 있다. GDP가 지난 세기 동안 누렸던 강력한 영향력은 이제 기로에 서 있다. 국제기구와 프랑스,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각국 정부는 경제적 성과를 넘어 삶의 질과 행복을 측정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한 대안적인 지표 개발에 노력해 왔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세계 행복 보고서(2022 World Happiness Report)를 통해 각국의 행복지수를 수치로 보여준다. 행복지수는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1부터 10까지 점수로 응답한 값들의 평균이다. 2022년 한국은 조사 대상 146개 국가 중 59위였다. 이 주관적 답은 객관적 요소인 6가지 지표로 보완된다.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 수명, 삶에서의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 인식이 6가지 지표에 해당한다. 그리고 ‘디스토피아’ 지수라는 특이한 지수가 하나 더 있다. 6가지 지표가 모두 세계 최악인 나라를 가정하고 이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라이베리아 같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나 국가 경제 붕괴 직전의 나라인 베네수엘라에 당신이 산다면 얼마나 행복감을 느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점수로 매긴 값이 디스토피아 지수다. 주관적 행복에 대한 숫자처럼 국민이 지닌 선천적 낙천성에 따라 그 순위가 다르다. 한국인은 디스토피아 지수가 2022년 101위로 주관적 행복지수보다 더 낮다. 행복지수 1위인 핀란드는 디스토피아 지수도 13위였다. 공포와 불안은 전염성이 높은 감정이다. 한국인은 진정 낙천적이지 못한 것일까? 성장은 어렵더라도 국민의 생활은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을까? 물질이 풍족하지 않아도 매일 웃으며 지내는 중남미 국가 사람들의 삶을 보면 소득과 행복 사이에 절대적인 비례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이 “응답하라 경제학자여!”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당신은 어떤 경제학자를 데려와 세계경제의 무기력증을 치유하고 위로받고 싶은가. 성숙한 조화와 절제의 향기가 느껴지는 폴 새뮤얼슨은 어떤가.
새뮤얼슨은 시장을 중시하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공부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의 개입을 중시하는 케인즈를 지지했다. 신고전학파 종합 이론을 집대성한 그는 어느 한쪽의 이념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에 늘 귀를 기울였다. 경제학자로서 국민의 후생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이랄까. 그는 지휘할 때 오른손(보수)의 역할과 왼손(진보)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한 경제학자였다.
시장과 국가의 온전한 역할을 강조한 새뮤얼슨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은 무엇일까? 그는 방정식을 풀듯 세상사를 단순화된 해법으로 해결하려는 경제학의 세계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에는 다양한 시각차가 있을 수 있음을 일깨우는 학자다. 그에게는 ‘여러 문제들을 현명하게 아우르는 향기’가 느껴진다. 세상의 여러 현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그걸 ‘명과 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뮤얼슨은 세계화의 ‘명’ 외에 ‘암’이 될 수 있는 양극화의 단면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는 자본가나 숙련된 전문가는 세계화의 승자로 이득을 취하는 반면, 비숙련 노동자나 블루칼라 공장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실질 임금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했다. 이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계화로 인해 이익과 손실이 공평하게 공유되지 않으면서 미국 사회도 점점 커지는 불평등을 경험할 거라고 경고했다. 세계화와 기술 진보가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일자리를 앗아가고 낮은 임금으로 부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어두운 면 또한 있음을 조명한 것이다.
행복은 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값이다
새뮤얼슨은 ‘행복은 욕망 분의 소유(행복=소유/욕망)’라고 단순하게 정의했다.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가 소유와 욕망인데, 소유한 것이 많더라도 욕망이 더 크면 행복하지 못하고,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욕망이 더 적다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경제학 교과서를 처음 접할 때 마주치는 구절이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이를 충족하는 재화는 유한해서 경제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면 새뮤얼슨이 말하는 행복은 수학적으로 0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폴 새뮤얼슨은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지 않다고 여긴 것 같다.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생리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지금의 물질적인 진보를 이루게 한 요인인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새뮤얼슨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바로 탐욕에 대한 경고다. 그는 아무리 개인의 소유가 늘어도 욕망이 도를 지나쳐 탐욕이 되면 불행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빵은 몇 개 이상 먹으면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지만 돈은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쇼펜하우어가 돈에 대한 욕망의 무한성을 설파했겠나. 그는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르게 된다”고 했다. 미국에 풍요와 독감의 합성어인 ‘어플루엔자(Affluenza, 부자병)’라는 말이 생긴 것만 봐도 그렇다. 부자병이란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탐내고 추구하는 과소비 중독을 말한다. 소비에 중독된 사람들, 너무 부자라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어찌 보면 삶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꼭 소득 수준만은 아니라는 것을 부자병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서로 비교하는 상대적 욕구에 지나치게 탐닉할 때 개인도 사회도 불행해진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누리는 부를 손가락질하는 것은 보상의 원리가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옳지 못하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시원하게 인정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다만 IMF(국제통화기금)나 OECD에서도 주장하듯 부의 양극화와 분배의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말하는 일각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리가 공정하지 못하고, 소수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유하는 것은 정당성을 떠나 그 옛날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동경하고 추구했던 건전한 세상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소유가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는 새뮤얼슨의 주장을 물신주의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기란 사실 어렵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소유하고,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소득을 얻고자 일을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돈에 울고 돈에 웃는다. 그래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구축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부의 양극화 못지않게 기대수명의 양극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런던, 시카고, 뉴욕 등에 사는 부자들의 기대수명은 같은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기대수명보다 월등히 높다. 영국 국가통계국의 자료에 따르면 부유한 계층의 남성과 빈민가에서 태어난 남성의 평균 건강수명이 20년이나 차이가 났다. 주목할 부분은 도시빈민가 남성의 평균 건강수명이 52.2세로 가난한 나라인 르완다의 55세보다 짧다는 사실이다. 정기적인 의료 검진에 소요되는 돈도 수명을 결정하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돈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무게가 소득이 낮은 사람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고 자존감마저 떨어뜨려 실제로 육체의 면역체계를 무너지게 만든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행복, 욕구, 소득 간의 관계를 논한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A. Easterlin)의 역설을 살펴보자. ‘소득이 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더 이상 소득이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스털린의 역설’의 핵심이다. 이 학설에 대한 논쟁은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스털린은 지금도 자신의 주장이 유효하며, 그 증거로 미국인들의 개인소득은 지난 수십 년간 늘어났지만 행복은 정체되거나 심지어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행복이 왜 정체된 걸까?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절대적 욕구에 의해 갖고 싶은 품목이 늘어났을 수도 있고, 남들보다 잘살고 싶어 하는 상대적 욕구 역시 늘어났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살게 되면 이제 남들 다 가진 차도 사야 하고 전자기기도 폼 나는 걸로 가져야 한다. 비교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이 좌절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적으로 대도시의 주거비용은 일반인이 살아가기에 매우 높은 수준이다. 서민들과 사회 초년생들이 평생 빚에 허덕이느라 지쳐 행복이 저 멀리 달아났다고 하는 이야기도 일리가 있다.
소유를 늘릴 것이냐, 욕망을 줄일 것이냐
행복은 소득과 같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되기보다, 낙천적인 성향처럼 유전적인 기질이나 행복해지려는 노력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반론도 있다. 누군가는 행복해지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거나, 자기만족에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괴테는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공감이 가는 말인가. 맹자 역시 “재산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에 쪼들리는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OECD의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이론이 각광을 받기도 했다. 포용적 성장이란 국가 중에는 개발도상국, 기업 차원에서는 중소기업, 성별로는 여성, 고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청년 같은 상대적 약자를 지원하고 동반 성장하자는 의미다. 성장을 중시하되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 해소, 계층 간 형평성 있는 분배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논의의 틀은 ‘소득, 일자리, 건강’이라는 세 가지 판단 기준과 부가적으로 ‘교육, 환경’을 포함한다. 행복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이러한 기준들을 포함해서 삶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새뮤얼슨이 말하는 행복 방정식을 조금 변형해 보자. ‘행복은 기대 분의 실현(행복=실현/기대)’이라고 하면 어떨까? 기대가 일정하다면 실현이 커질수록, 실현이 일정하다면 기대가 적을수록 행복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저성장 시대에 저축을 해봤자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푸념할 것이다. 대학을 나와 봤자 취직이 안 돼 손해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이제 세계는 높은 이자 수익률을 보장해줄 수도,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현명하게 행복 방정식을 푸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사고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예전과 같은 기대만을 키운다면 행복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때다. 경제적 수익률이 낮아졌는데 성장과 무관한 교육에 지나치게 투자하며 과다한 경쟁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 비싼 학비를 치르고 졸업했는데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못 찾는다면 당연히 본전 생각이 난다. 기대가 높은 사람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들 “내가 왜?”란 반응만 얻게 된다. 눈높이와 기대의 차이로 인해 한쪽에서는 구인난이, 한쪽에서는 취업난이 발생해 일자리 미스매치가 생긴다. 청년 자원의 낭비는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압축 고도성장 시대의 고용 시스템은 세계화, 기술 발전과 맞물려 이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과거의 고용 시스템에서 얻었던 기대수익률은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부모도 학생도 알아야 한다. 압축 고도 성장기에는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면 취직하는 데 유리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 시절처럼 대졸자라고 해서 좋은 직장을 골라 가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취직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갖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현실적 눈높이를 고려하며 취업, 창업, 해외 일자리까지 염두에 두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오로지 대학 진학에 목매기보다는 기업의 수요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일자리를 찾는 방향으로 개인, 기업,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기업은 고용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정부는 예산과 세제를 시장에 짐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고용 증대를 위해 운영해야 한다. 정부 돈을 투입하여 쉬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일자리의 보고이다. 사회적으로 고용이라는 보호의 울타리를 잃은 청년들을 위해 기성세대의 배려와 특별한 관심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 그러나 청소년 행복지수가 최하위인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손가락으로 꼽는 사실은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인 충족과 균형되게 좋은 감정으로 충만해야 이루어진다. 우리는 재미, 가치, 보람, 평온, 안정, 의욕, 존중, 희망이란 단어를 얼마나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풍요로운 삶은 물질 못지않게 행복이 아주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것에서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 온다. 영어로 현재와 선물 모두를 나타내는 단어가 프레전트(Present)인 이유를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이 말해주고 있다.
Esther Duflo
에스테르 뒤플로의 빈곤 극복 연구
분열된 사회를
다시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02|에스테르 뒤플로(1972~)
프랑스의 경제학자이다. 지구촌의 빈곤 문제를 경감하기 위한 실험적 접근과 연구를 한 공로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Abhijit Banerjee), 마이클 크레이머(Michael Kremer)와 함께 2019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29세에 MIT 종신 교수로 임명되었고 맥아더 재단의 천재 회원 자격을 비롯해 미국의 ‘예비 노벨상’으로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했다. 「이코노미스트」 선정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경제학자 8인’, 「포천」 선정 ‘주목해야 할 40세 이하 경제경영 리더 40인’,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개발도상국의 교육, 주거, 건강 문제 같은 미시경제 이슈의 해법을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2003년에 MIT 빈곤 퇴치 연구소를 공동 설립해 연구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현장에서 분석하고, 과학적 실험으로 어떤 접근이 가난한 사람들을 빈곤의 악순환에서 구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노벨상 시상식에서 말한 ‘우리들의 라듐’은?
여기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상자가 있다. 2019년, 남편과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에스테르 뒤플로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빈곤 퇴치 연구를 하며 일생을 보내기로 맹세했다. 그녀가 몰두한 개발도상국 극빈층에 적용됐던 실험적 기법이 부유한 국가에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빈곤 퇴치에 임하기로 했을까?
“우리 사회에서 덜 부유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더 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캐리커처로 희화화 대상이 되는 게 다반사고 그들을 도우려는 이들조차 빈곤층 문제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뒤플로 교수는 노벨상 수상금을 어디에 쓸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라듐 발견으로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가 상금으로 라듐을 샀다는 내용을 어릴 적 읽었다. 공동 수상자들과 얘기해 ‘우리의 라듐’이 무엇인지 고안해낼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라듐을 ‘엔데믹 시대의 좋은 경제학’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돈 쓰기’의 방법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한다. 돈 쓰기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내 주머니에서 내가 돈을 쓰는 방식으로, 가장 효율적이다. 번 돈을 직접 쓰니 가장 필요한 곳에 아껴서 쓰기 때문이다. 스스로 힘들여 번 돈을 허투루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허투루 쓴다 하더라도 자신이 번 돈이니 자신의 선택이다.
두 번째는 남의 돈을 내가 쓰는 경우로, 여기서부터 비효율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회삿돈은 내 돈보다 막 쓰는 경향이 있다.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내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경우다. 기부가 여기 해당한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 장학금도 허투루 쓰는 돈이 아니고, 어려운 사람에게 구호 물품을 준다면 사치스러운 물건보다는 꼭 필요한 물건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면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따져보게 될 것이다.
네 번째, 남의 돈을 남에게 쓰는 것은 가장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돈으로 선심성 지출을 하거나 불필요한 인프라에 투자를 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비효율이 극대화되고 과다 지출이 일어난다. 심지어 부정부패도 일어날 수 있다. 국민들에게 걷은 돈으로 정치인들이 온갖 생색은 다 내는데, 국민들은 돈을 받으며 심지어 고마워한다. 나아가 그런 정치인들에게 잘했다며 표를 몰아준다. 그런 정치인들이 많고 그런 정치인들에 표를 몰아주는 국민이 많을수록 나라는 산으로 간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에 적용된다. 물론 시장원리에만 전적으로 모든 상황을 맡겨둘 수는 없으니 국가의 개입은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뒤플로의 이론이다.
맥도날드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글로벌 1위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의 대표 햄버거 메뉴는 빅맥이다. 그리고 이 빅맥의 가격으로 특정 국가 화폐가치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빅맥지수이다. 이는 각 나라의 구매력 평가를 비교하는 경제지표로, 1986년 9월에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처음 사용했다.
빅맥을 가장 비싸게 판매하고 있는 나라는 레바논이다. 레바논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빅맥을 판매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각한 종파 갈등과 극심한 경제난 때문이다. 레바논에서는 수백 퍼센트에 달하는 물가 상승으로 통화가치가 90% 이상 폭락했다. 이러한 경제 상황이 맥도날드의 메뉴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저렴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라는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레바논에서 판매되고 있는 메뉴 ‘그랜드 치킨 스페셜’의 가격은 3만 원대이다. 2022년 2월에는 코로나19 창궐 이후 처음으로 한국과 레바논의 축구 경기가 레바논 사이다 시립경기장에서 열렸다. 관중이 있는 경기였으나 많은 관객이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레바논이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속에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가치가 폭락해 적은 단위의 지폐는 휴지 조각이 됐다.
한편 홍콩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집도 있고 직장도 있는 이들이 밤마다 맥도날드를 전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들을 ‘맥난민(McRefugee)’ 또는 ‘맥슬리퍼(McSleeper)’라고 부른다. 그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맥도날드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집값이 급등한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들은 홍콩의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밤마다 맥도날드로 향한다. 평당 1억 원을 넘나드는 비싼 집값 때문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는 너무 어렵다. 홍콩 주민들은 임차료가 낮은 공공 임대주택으로 몰리는데, 이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공 임대주택 입주 지원자가 입주하기까지 평균 대기기간은 5년이 넘는다.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는 패스트푸드의 효율성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효율성, 예측 가능성, 계산 가능성, 통제 가능성이라는 네 가지 합리성 원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대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만든 지도 오래다. 책의 저자인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막대한 이익을 제공하는 맥도날드화의 이면에는 합리성이 초래하는 불합리성이 존재하고, 인간 자체를 비인간화시키는 폐해가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첫 요소는 신뢰이다. 사회적 자본을 ‘신뢰’나 ‘네트워크’로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으나, 사회적 자본은 위 두 가지 이외에도 규범, 제도를 포괄하는 제반 사회관계적 자산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신뢰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타인의 미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일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의미한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은 신뢰란 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인 사회적 자본이라고 했다.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신뢰가 낮은 나라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OECD 사회 신뢰도에 따르면 한국은 저신뢰국에 속한다. ‘믿을 사람이 없다’(OECD 35개국 조사국 중 23위), ‘사법 시스템도 못 믿겠다’(34개국 중 33위), ‘정부도 못 믿겠다’(35개국 중 29위)라는 답을 보면 우울하다. ‘미래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국의 청년 응답자 약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경제성장, 구조개혁, 선순환 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 여기에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왜 정부당국에 신뢰의 기본인 예측 가능성, 지속 가능성, 공정성 등 모든 점에서 바닥에 가까운 점수를 매길까. 협력과 동업 대신 무한경쟁 속에서 각자 제 살길을 찾는 식의 ‘각자도생’이 팽배해서가 아닐까.
국제적 기준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는 중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인의 삶의 질과 행복감이 경제력이나 건강수명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낮은 신뢰도 때문일 것이다. 한국 대학생들은 다른 나라 대학생들에 비해 압도적인 비율로 고등학교의 이미지를 ‘사활을 건 전장’으로 생각한다. 학교가 좋은 대학을 목표로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사회에 나와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은 취업난과 집값 상승의 여파에 더해져 2030의 각자도생의 길과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사회가 공정과 상식에 입각해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신뢰의 증가가 가능할 것이다.
힘든 시대의 좋은 경제학
현시대의 최고 도전은 ‘경제의 생산성 증가’와 ‘보다 포용적인 사회 건설’이 아닐까? 풀기 어려운 정책 수수께끼를 잘 풀어나가면 성장의 새로운 궤도를 시작하는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효율성·경쟁력·생산성은 포용성·기회균등과 함께할 때 보다 강력해질 수 있다. 뒤플로는 좋은 경제학 이야기를 통해 돈 잘 쓰는 정부에 대한 교훈을 제시해 준다.
뒤플로는 정당성 있는 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계속 떨어지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장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시킨 계기가 되었다. 팬데믹 상황을 자발적인 시장원리에 맡겨뒀다면 해결 불가능한 많은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하느냐에 따라 각국은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지의 기로에 섰다.
정부는 성장의 복원 못지않게 인적·사회적 안전망 확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을 중심에 둔 정책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한 국가는 물론 빈곤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국제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뒤플로는 경제성장의 효과가 골고루 배분되지 못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조치들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경고한다. 현재 우리가 속한 사회체제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악화된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인본주의적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은 보편적 소득 지원이 아닌 선별적 패키지 지원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개발도상국, 빈곤국의 경우 기본적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안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그녀는 현금 지원 외에도 교육, 훈련, 주거 지원을 통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도움이 필요한 대상들이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지를 파악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종류의 제대로 된 지원을 낭비 없이 해줘야 국가 예산을 제대로 썼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뒤플로는 시장이 항상 최적의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정부가 정책을 집행할 때에는 제대로 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파급효과가 가장 큰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나설 수 없고, 외부효과가 있는 부분에 정부가 투자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 인프라, 영아·산모 사망률 개선, 아이들의 사회성 제고 같은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뒤플로는 코로나19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자는 돈을 더욱 쉽게 벌지만 빈곤층과 개발도상국은 장기적인 위기에 처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경제가 회복되어도 일어서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녀는 이렇게 힘든 시대일수록 사회 상류층의 역할인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경제성장을 통해 많은 소득과 혜택을 얻었으나 그 과실을 저소득층과 공유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지금의 국민들은 상류층에 대한 분노만 있을 뿐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경제학에 대한 편견을 일갈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은 금리나 금융에 관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 반기를 든다. 불평등이나 사회정책,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지만, 오히려 초반에 어려움을 잘 극복함으로써 더 큰 재앙을 막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경고를 기억하면서 지구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을 골똘히 생각하며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문제를 파헤쳐 본다. 정부는 어떤 원칙으로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미국은 기부가 하나의 일상적 삶이고 기업은 기부를 소비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인식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우리 또한 그동안의 반기업적 규제를 풀고 노사 화합을 통한 반기업 정서 탈피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미국에 노벨상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공익단체들의 기부금이 각종 연구를 지원하고, 봉사단체 후원금이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나라에서 기회의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기부와 배려가 일상화되는 사회적 기틀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부에 인색한 이유 중 하나인 ‘기부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기부자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미국은 소득금액의 50% 한도 내에서 기부금을 소득공제하고 있다. 영국은 기부액의 20~45%를 소득공제하고 있다. 일본도 2000엔을 초과할 경우 소득의 40% 내에서 소득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부금 세액공제 한도 내에서 기부금의 종류에 따라 공제금액이 달리 적용되는데, 정치에 관련된 기부와 이웃돕기에 사용된 기부금이 공제율이 높다.
신뢰정부를 위한 ABCDE
OECD는 오늘날 우리가 신뢰의 적자(赤子) 속에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평균 대비 높은 사회 갈등으로 사회통합과 신뢰를 저해하고 잠재성장률 하락에도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갈등 수준과 갈등관리 지수는 최하위권이다. 뒤플로 교수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한국 정부가 나아갈 방향인 ‘ABCDE’를 생각해 본다.
우선, Alignment(조준·정렬). 정책목표와 정책 수단의 정합성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무기로 과녁을 정확히 겨냥해 목표를 달성해야 할 것이다. 경제정책에서 ‘정부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책 목표 설정, 정책 개발, 정책 수단, 정책 집행에 있어 철저하게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경제 논리에 입각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등, 책임지지도 못하는 정치 과잉에 따른 국가만능주의는 지양해야 한다. 국가가 할 일과 민간이 할 일을 헷갈려서는 안 된다. 정책 수단을 선택할 때 국민 표심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목표에 맞는 정책 수단의 정합성이 갖춰지면 정책의 일관성, 지속 가능성, 예측 가능성이 어느 정도 담보될 수 있다. 수시로 바꾸는 정책은 국민 불신을 초래할 뿐이다.
둘째, Balance(균형). 균형감이 필요하다. ‘시장이냐 정부냐’라는 이분법적 논리보다는 시장과 정부 간의 균형을 잃지 않는 정책을 유연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책 목표와 수단을 균형 있게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기후변화를 위한 탄소중립은 전 지구적 목표이고 저탄소·고효율 에너지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도달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제시하여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환경정책과 산업정책 간의 균형을 상실하게 한다. 한쪽 말만 듣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다. 환경단체와 기업의 현실을 균형 있게 담은 에너지 정책 조합이 바람직하다.
셋째, Compliance(준수). 법과 정책을 준수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책 목표와 수단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번 만들었으면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정책은 지키지 말라는 정책이다. 기업 안전의 준수는 매우 중요하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이 많을수록 재해와 관련 처벌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주요국 중 산업안전과 관련한 처벌 수위가 가장 높다는 분석은 새겨볼 만하다. 지키기 힘든 정책을 만들어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 범법자만 양산할 수 있다.
넷째, Dedication(헌신). 정책 담당자들이 혼신을 다해 정책을 만들어서 청렴하게 집행하면 국민이 저절로 신뢰하고 감동할 것이다. 이념 과잉의 정치가 행정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이는 재앙이 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잠재 성장률 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고령화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생산성 감소를 일관된 구조개혁과 디지털 경제에 맞는 혁신, 투자 증대로 상쇄해 잠재성장률을 제고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중장기 시계를 갖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여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째, Efficiency & Equity(효율과 형평). 쓸데없는 일을 만들지 말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고, 약자에게 디딤돌이 되는 정책을 통해 삶의 의욕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대내외 여건하에서 성장, 고용, 분배 지표를 고루 생각하고, 임팩트 있는 다양한 정책 조합으로 높은 성장률을 회복해야 한다. 효율과 형평에 맞게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만들기 위한 다양한 혁신과 함께 노동, 산업구조, 교육 등에 있어 혁신과 구조개혁을 지속 추진해야 할 것이다.
풍성한 식탁 위에서 깔깔거리는 가족의 웃음을 생각한다. 뒤플로가 말한 좋은 경제학이란 결국 물질적 풍요 못지않게 정신적으로 서로 유대감을 갖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국가와 시민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Alvin Eliot Roth
앨빈 로스의 매칭 이론
시장은 설계될 수 있다
03|앨빈 로스(1951~)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교수로 게임 이론과 시장 설계, 실험경제학과 같은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오퍼레이션 리서치(OR)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안정적 배분과 시장 설계에 관한 실증 연구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LA) 로이드 섀플리(Lloyd S. Shapley)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어떤 시장이든 설계와 안정적인 배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자유 시장에 법칙이 없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뭔가 왜곡되거나 잘못되었다면 시정하고 새로운 규칙으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을 구하는 의사와 경제학자
매일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마친다.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는 많은 에피소드가 일어난다. 엄마에게 간을 이식하기 위해 두 달 만에 체중 15kg을 감량한 딸의 사연이 세상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두 자녀의 어머니 김 모 씨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는 이미 신장 위 부신까지 인접했고 신장까지 망가지고 있었다. 희망은 간이식뿐이었다. 아들은 선천적으로 간의 크기가 작아 이식이 불가능했고 딸이 간이식을 해주려 했지만 지방간이 있어 어려운 상황이었다. 딸은 엄마에게 간을 이식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하루 한 끼로 버텨가며 몸무게를 줄였다. 엄마는 딸의 마음에 보답하듯 수술 후 이를 악물고 재활에 나섰다. 모녀는 수술 성공 후 일주일만에 함께 퇴원했다.
유사한 이야기가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나온다. 상황은 반대이다. 딸에게 간이식을 해주기만 기다리던 아버지는 이식 불가 판정에 말한다.
“왜 수술을 안 해줍니까. 내 새끼한테 내 간 주겠다는데 당신들이 왜 상관입니까. 혈액형도 맞잖아요.”
의사는 환자 아버지의 나이가 많아 수술 자체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지방간 때문에 체중을 감량하면 간이식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연세에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뇌사자를 기다려보자고 한다. 이후 아버지는 한동안 딸의 병실을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찾아온 환자의 아버지는 몰라보게 체중이 감량된 상태여서 보는 이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그는 7kg을 감량했다. 하루에 12시간 운동하고 식단도 완벽하게 조절해서 앞으로 2~3kg 더 뺄 거라고 한다. 자신은 죽어도 괜찮다며 간이식 수술을 부탁한다. 의사는 수술을 포기했었는데 그런 아버지를 보고 한번 용기를 내보겠다며 수술을 결행했고 결국 성공한다.
드라마의 경우처럼 살을 빼고 건강을 회복해 장기 기증에 나서는 가족들이 많다. 간이식을 하려면 기증자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다른 병이 없어야 하고, 간을 자를 때 최소 30%는 남겨야 해서 간의 크기도 어느 정도 커야 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간이식, 경제학의 원리에 따라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명을 지키는 게 의사나 군인의 역할만은 아니다. 생명을 지키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프랑스 중농주의 경제학자 프랑수아 케네(François Quesnay)는 의사 출신이다. 그는 의사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혈관의 흐름을 본뜬 ‘경제표’를 만들어 경제 전반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부가가치의 흐름을 만드는 계급을 농민으로만 국한하고, 미래 산업의 동력을 농업으로 봄으로써 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치명적 오류를 범했다. 이를 ‘케네의 오류’라고 한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지금 경제학자로서 정말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인물이 탄생했다. 수학을 응용한 게임 이론으로 신장이식의 기회를 확대시킨 앨빈 로스이다. 그는 장기 거래처럼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혐오 시장(Repugnant Market)’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스가 말하는 혐오 시장은 신장 매매, 동성 결혼, 마약 거래처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있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신장 거래를 예로 들어보자. 전 세계에서 이란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신장을 이식해주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돈 주고 신장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로스는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거래를 어떻게 문제없이 성사시킬지 경제학자들이 절실히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걸고 환자들을 돌보는 드라마 속 의료진들의 의료 행위에 로스가 경제 분야에서 이룬 업적이 투영된다면 과장일까? ‘인간을 구하고자 하는 따뜻한 인류애의 향기’가 묻어나는 시장을 설계하고자 한 그의 이론적 근거를 먼저 살펴보자.
혐오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신장이식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남녀 간의 안정적 ‘매칭(Matching) 문제’를 간단한 수학으로 분석해 보자. 로스의 매칭 이야기는 협조적 게임 이론(Cooperative Game Theory)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협조적 게임 이론은 어떤 결과가 바람직한가를 공동 이익의 관점에서 살핀다. 각각 같은 수의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두 집단이 있을 때 어떤 경우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짝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풀어보자. 세상에는 여러 남녀 커플이 있고 누구든 현재의 파트너에 만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가끔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에 남녀 문제는 꼭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남녀 매칭 시장은 한눈팔기 쉬운 시장이 된다. 상대에 불만족하면 헤어지기 십상인 곳이다.
단순하게, 인기가 매우 좋은 남성 A와 여성 B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인기가 별로 없는 남성 a와 여성 b가 있다고 하자. 4명이 어떤 식으로 짝을 지어야 가장 안정적인 사회가 될까? 인기 있는 사람끼리(A-B), 인기 없는 사람끼리(a-b) 파트너가 될 수도 있고, 서로 섞일(A-b, a-B)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