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집 밖은 어떨까? 더 어마어마해. 이름 모를 수많은 풀과 꽃,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벌레와 동물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들도 있지. 하지만 길가의 돌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는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생명체는 아니야. 이런 것을 무생물이라고 해.
생명 과학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어도 우리는 생명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쉽게 구별할 수 있어. 그건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 역사가 기록되기 전을 선사 시대라고 하는데 이때 사람들은 열매를 따 먹거나 동물을 사냥했고 늘 자연 속의 생명체들과 가까이 지냈어. 당시 사람들도 지금 사람들처럼 생명과 죽음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을거야. 그러면서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을 나누는 무엇인가가 있어서 죽는 순간에 그것이 떠난다고 믿었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선사 시대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각했어. 생명은 생기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생기가 있느냐 없는냐가 생물과 무생물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믿었지. 생기가 생물의 모양을 결정하고 키가 자라거나 아기를 낳는 등의 생명 활동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어. 병이 생기는 것도 생기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믿었단다.
로마 시대의 유명한 의학자인 갈레노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이어받았어. 그리고 이렇게 주장했지.
“호흡을 통해 들어온 생기가 피를 통해 운반되면서 우리 몸의 기능을 유지한다.”
중세 서양인들이 가장 신뢰했던 《성경》에는 신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생명을 얻었다는 내용이 있어.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갈레노스의 이론을 쉽게 받아들였지.
중세가 끝나고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생명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어.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정신 세계와 물질 세계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에 따라 동물의 몸을 기계로 보는 매우 독창적인 생명관을 주장했어.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도 영혼을 빼면 기계와 같아. 동물의 몸을 기계로 보는 데카르트의 생각이 널리 퍼지자 이 이론을 이어 연구한 학자도 많았어.
하지만 동물을 기계로만 보아서는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어. 당시는 세포나 분자를 연구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야. 데카르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기계와 동물이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
오히려 생명체에는 무생물에 없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주장했어. 생명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흐른다고 생각했지. 그러다 보니 생명체를 기계로 보려는 사람들과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어.
베르셀리우스는 유기물이 생명의 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실험실 안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믿었어. 모든 유기물은 오로지 생명체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지. 암소가 우유를 만들고 꽃이 꿀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1828년, 베르셀리우스의 제자인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는 놀라운 실험을 했어. 그는 시안산 암모늄이라는 물질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시안산 암모늄을 가열하자 다른 물질로 바뀌어 버린 것을 발견했어. 바뀐 물질은 오줌 속에 있는 ‘요소’였지. 무기물이었던 시안산 암모늄에서 생명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인 요소가 생기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 거야. 뵐러는 너무 놀라서 실험 결과를 스승인 베르셀리우스에게 보고했어.
“선생님, 제가 실험실에서 유기물을 만들었어요!”
“흠. 안타깝지만 자네 말을 믿을 수는 없네. 자네가 사용한 시안산 암모늄은 동물의 뿔이나 혈액에서 얻은 것이잖나.”
베르셀리우스는 제자의 실험 결과를 쉽게 믿지 않았어. 그러자 뵐러는 같은 실험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완전한 무기물을 가지고 요소를 만들어 냈어. 그제야 베르셀리우스는 뵐러의 실험 결과를 인정했어.
뵐러가 놀라운 실험 결과를 얻은 뒤, 유기물은 ‘생명이 만든 물질’이라는 지위를 내려놓아야만 했어. 요소라는 간단한 유기물 하나를 만들었을 뿐인데, 당시 과학계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무너져 버린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지. 그러면서 너도나도 실험실에서 유기물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어. 그러자 독일의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유기물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어. 유기물이란 ‘탄소가 포함된 물질’이라는 거야. 생명체와 관련된 물질은 대부분 탄소를 가졌어. 하지만 생명력이 없이 실험실에서도 만들 수 있지.
지금은 유기물을 ‘하나 이상의 탄소가 다른 원소와 결합을 이루고 있는 화합물’이라고 정의하고 있어.
이렇게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많은 유기물이 만들어지고 과학이 점점 발달하자 생물과 무생물은 완전히 다른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오래된 믿음이 점차 힘을 잃어 갔어. 그러면서 생명체에만 보이지 않는 특별한 힘이 흐른다는 주장도 줄어들었지.
그렇다고 생명체를 데카르트의 이론처럼 완전히 기계로만 본 것은 아니야. ‘분자’와 같은 아주 작은 입자 단위로 생명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겼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사람은 몸무게의 약 98%가 산소(O), 탄소(C), 수소(H), 질소(N), 칼륨(K), 인(P) 이렇게 여섯 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다른 생명체도 대부분 몸을 구성하는 원소는 비슷해.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여섯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생물이 어떻게 생명이라는 특이한 성질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자동차를 생각하면 돼.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부품들은 대부분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지. 마찬가지로 생명체는 수많은 기관과 조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기관과 조직은 모두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칼륨, 인 등 여섯 가지의 원소가 결합한 분자들로 만들어졌어. 말하자면 자동차의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생명체의 원소 여섯 가지가 결합한 분자로 보면 돼.
이번에는 자동차를 분해해서 부품을 나열해 볼까? 자동차를 분해하면 여러 가지 모양의 금속 조각, 플라스틱 조각과 볼트, 너트가 대부분이야. 분해된 부품만 놓고 보면 자동차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고, 부품 하나하나에서 자동차의 특성도 찾아볼 수는 없지. 이 부품들을 그저 한곳에 뭉쳐 놓는다고 해서 자동차처럼 달릴 수는 없어. 하지만 각 부품을 설계대로 정확하게 조립하면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고 움직일 수 있지.
마찬가지로 평범해 보이는 원소 여섯 가지가 결합한 분자들이 정확히 배열되고 결합해 생명체의 작은 부품이 되고, 이 부품들이 결합하면 생명체가 완성되지. 그리고 생명이라는 기능을 갖는 거야.
그런데 물은 어떤 성질이 있어서 생명이 탄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
물은 0℃에서 100℃까지는 액체로 있지만 0℃보다 더 차가워지면 얼고, 100℃보다 더 뜨거워지면 기체로 변하지. 그런데 물은 다른 물질에 비해 잘 데워지지도 않고 잘 식지도 않는 특성이 있어. 이 때문에 생명체 안의 온도는 바깥의 환경 변화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