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STRATEGY BAD STRATEGY
Copyright ⓒ 2011 by Richard Rum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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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모든 전략을 의심하라
1805년, 영국은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 대륙을 상당 부분 정복한 나폴레옹이 영국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영불 해협을 건너려면 바다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스페인 남서부 해안에서 33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가 27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영국 함대와 마주쳤다. 당시 일반적인 전술은 양측의 배가 나란히 서서 일제히 함포사격을 퍼붓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의 넬슨 제독은 전략적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함대를 두 줄로 세운 다음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선두에 선 함정들은 커다란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넬슨은 훈련이 덜 된 프랑스-스페인 연합 해군의 함포 포수들이 높은 파고 때문에 정확한 포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 해군은 전체 전력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2척의 함정을 잃었다. 반면 영국 해군은 한 척의 함정도 잃지 않았다. 전투 중 치명상을 입은 넬슨은 사후에 국가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 덕분에 영국은 1세기 반 동안 제해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넬슨이 직면한 문제는 수적 열세였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전략은 정면 돌파를 통해 적 함대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일단 난전이 벌어지면 경험 많은 영국 해군의 함장들이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 수 있었다.
좋은 전략은 대개 이처럼 단순하고 명확해서 수십 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한 복잡한 도표나 차트 혹은 ‘전략 경영’방법론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유능한 리더는 어떠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노력에 따른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한두 개의 핵심 사안을 파악한 다음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자원을 집중한다.
전략을 야심, 리더십, 비전, 기획, 경제적 경쟁 논리와 동일시하는 관점들이 있다. 그러나 전략은 이러한 것들과 다르다. 전략적 작업의 핵심은 주어진 상황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대응하는 행동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일관된 접근법을 세우는 것이다. 전략은 기업 경영에서 국가 안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전략을 단순한 구호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다음은 그러한 사례들이다.
• 어느 기업의 CEO가 ‘전략 대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200여 명의 고위 임원들 앞에서 최고 경영진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선포했다. 그 비전은 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공적인 기업이 된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알리는 홍보 영상이 상영되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CEO는 극적인 음악 효과를 곁들여서 글로벌 리더십과 성장 그리고 높은 수익률이라는 ‘전략적’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였다. 행사의 대미는 하늘로 날아간 수많은 오색 풍선들이 장식했다. 모든 구색을 갖춘 이 거창한 행사에서 유일하게 빠진 것은 진정한 ‘전략’이었다. 당시 손님으로 참가했던 나는 실망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 채권 거래에 강점을 지닌 리먼브라더스는 2002년부터 06년까지 주택저당증권 시장을 앞장서서 개척했다. 그러나 2006년에 위험 신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5년 중순에 주택 거래량이 정점을 찍은 이후 집값 상승세가 꺾이고 있었다. 연준이 금리를 소폭 인상하자 압류 건수가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먼 브라더스의 CEO인 리처드 펄드Richard Fuld는 빠른 성장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이 말은 회사가 감수하는 리스크를 늘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리먼브라더스는 경쟁자들이 거부한 채권까지 떠안았다. 자기자본비율이 3퍼센트에 불과하고 부채의 상당수가 단기 부채라는 점을 감안하면 늘어난 리스크를 완화하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었다.
좋은 전략은 문제의 성격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저 야심을 드러내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결국 리먼브라더스는 2008년에 158년의 역사를 접고 파산함으로써 전 세계 금융시장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나쁜 전략이 한 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피해를 입힌 것이다.
• 부시 대통령은 2003년에 이라크 침공을 재가했다. 침공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미국 정부는 정규전이 끝나면 바로 민주 정부로 권력 이양을 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반군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미군은 소부대 단위로 수색섬멸전을 벌여야 했다. 문제는 이 전략이 베트남에서 이미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에게 자유, 민주주의, 재건, 안보라는 고상한 목표는 있었지만 게릴라전에 대비한 일관된 전략은 없었다.
변화는 2007년에 일어났다. 『육군/해병 반군 대응 야전 교범Army/Marine Corps Counterinsurgency Field Manual』을 쓴 데이빗 페트레이어스David Petraeus 장군이 5개 여단으로 구성된 추가 병력과 함께 이라크로 파견되었다. 그에게는 구체적인 전략이 있었다. 그는 반군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합법 정부에 대한 대다수 시민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수색 정찰보다 시민을 보호하는 일에 역점을 두었다. 보복당할 위험이 사라지면 시민들이 반군을 물리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었다. 추상적인 목표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전환된 이 변화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왔다.
• 나는 2006년 11월에 웹2.0 비즈니스를 논의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웹2.0’이라는 개념은 웹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가리켰다. 그러나 관련 기술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웹2.0은 사실상 구글,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페이스북 등 빠르게 성장한 웹 기반 기업들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7명의 다른 참석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참석자가 나의 직업을 물었다. 나는 UCLA에서 전략을 가르치고 외부 컨설팅을 한다고 대답했다. 웹 서비스 기업의 CEO인 그는 “이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전략이에요”라고 말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논쟁을 벌이거나 강의를 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게 낫죠”라고 말하고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 책에 담긴 핵심적인 통찰은 내가 컨설턴트, 교수, 연구자로서 평생 전략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얻은 교훈에서 나온 것이다. 좋은 전략은 목표나 비전을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일 이상의 것을 한다. 또한 좋은 전략은 직면한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그리고 좋은 전략은 어려운 문제일수록 강력한 효과를 얻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불행하게도 좋은 전략은 접하기 어렵다.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략을 가졌다고 말하는 리더들이 늘어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들은 나쁜 전략을 따르고 있다. 나쁜 전략은 성가신 세부사항을 생략한다. 또한 나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의 힘을 무시하고 상충하는 필요와 이해관계를 동시에 수용하려 든다. 그리고 나쁜 전략은 선수들에게 “이기자”라는 말만 하는 감독처럼 뻔한 목표나 비전 혹은 가치를 제시할 뿐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지 않는다. 물론 목표, 비전, 가치도 중요한 삶의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전략을 대체할 수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좋은 전략과 사람들이 ‘전략’이라고 부르는 쓸데없는 것들 사이의 간극이 더욱 커졌다. 내가 비즈니스 전략을 연구하기 시작한 1966년에는 관련 도서가 세 권뿐이었으며, 관련 논문은 아예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략서들이 나의 책장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또한 전략 전문 컨설팅 기업과 박사들 그리고 수많은 논문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물량이 발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상적인 비전에서 옷 입는 법까지 온갖 분야에 전략이라는 개념을 갖다 붙이면서 깊이만 한없이 얕아졌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전략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기업계에서 마케팅은 ‘마케팅 전략’으로, 데이터 프로세싱은 ‘IT 전략’으로, 인수합병은 ‘성장 전략’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단순한 가격 인하도 ‘저가 전략’으로 탈바꿈했다.
전략을 성공이나 야심과 동일시함으로써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 “이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전략이에요”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처럼 의미 없는 구호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구호는 진정한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성공의 동의어로 취급되는 전략은 유용한 개념이 아니며, 야심이나 의지, 혁신 혹은 영감의 리더십과 혼동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없다. 야심은 목표이고, 의지는 힘이며, 혁신은 발견이다. 또한 영감의 리더십inspirational leadership은 구성원이 공동선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전략은 야심과 혁신에 따라 의지와 리더십을 어디에, 어떻게 발휘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영감의 리더십은 동기부여 및 가치 공유와 관련된 리더십의 한 측면을 가리킨다. 또한 리더십은 기획과 전략을 비롯하여 리더가 하는 모든 역할을 포함한다.
의미가 너무 광범위한 개념은 힘을 잃는다. 개념을 정립하려면 뜻하는 것과 뜻하지 않는 것 사이에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고위 인사들의 결정을 무조건 전략과 연계시키는 것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가령 기업계에서는 대부분의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중요한 협상, 조직 설계를 ‘전략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전략은 의사결정자의 지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전략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일관된 대응을 뜻한다. 개별적인 결정이나 목표와 달리 전략은 큰 대가가 걸린 문제에 대응하는 일련의 일관된 분석, 방침, 행동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은 전략이 구체적인 행동과 거리가 먼 전반적인 방향 제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이 ‘전략’과 ‘실행’ 사이에 넓은 간극을 만든다. 이 간극을 인정하면 대부분의 전략적 작업은 실질적인 의미를 잃는다. 실제로 전략과 관련된 대부분의 불만은 이 점 때문이다.
한 기업인은 내게 “우리 회사는 정교한 절차를 거쳐 전략을 세우지만 실행 과정에 큰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이 불평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전략은 일련의 일관된 행동을 포함한다. 구체적인 행동 계획은 전략의 세부사항이 아니라 핵심이다. 즉각적으로 취할 수 있는 타당한 행동들을 정의하지 않는 전략은 중요한 요소를 빠트린 것이다.
실행 문제를 불평하는 기업인들은 대개 전략을 목표 설정과 혼동한다. 전략 수립 절차가 단지 성과 목표를 정하는 것이라면 야심과 행동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발생한다. 전략은 조직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말해야 한다. 전략을 세우는 일은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물론 리더는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달성 방법을 찾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략 수립이 아니라 목표 설정이다.
이 책의 목적은 좋은 전략과 나쁜 전략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좋은 전략을 세우도록 돕는 것이다.
좋은 전략은 내가 ‘중핵kernel’이라고 부르는 논리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 전략의 중핵은 진단, 추진 방침, 일관된 행동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지닌다. 추진 방침은 진단을 통해 밝혀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추진 방침은 교통 표지판처럼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지만 세부적인 여정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 일은 타당한 방법론과 자원 할당을 결정하는 일관된 행동이 맡는다.
좋은 전략의 구조와 요점을 알면 나쁜 전략을 가려낼 수 있다. 감독이 아니어도 나쁜 영화를 가려낼 수 있듯이 경제나 금융 혹은 다른 분야에 대한 난해한 지식이 없어도 나쁜 전략을 가려낼 수 있다. 가령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 전략을 보면 핵심적인 요소가 빠졌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잠복한 질병에 대한 공식적인 진단이 없었다. 그래서 치료에 필요한 행동의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단지 금융계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자원의 이동이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판단은 거시경제학 박사가 아니어도 좋은 전략의 속성을 이해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쁜 전략은 단지 좋은 전략의 부재가 아니다. 나쁜 전략은 고유한 논리에 따라 잘못된 토대 위에 세워진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까 봐 문제에 대한 분석을 의도적으로 피할 때 나쁜 전략이 나온다. 전략을 문제 해결이 아닌 목표 설정으로 오해할 때도 나쁜 전략이 나온다. 또한 자원과 행동을 집중하지 않고 모든 면을 두루 만족시키려고 어려운 선택을 피할 때도 나쁜 전략이 나온다.
나쁜 전략이 확산되면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정부는 목표와 구호만 내세우고, 기업계는 희망사항에 불과한 계획을 수립하며, 교육계는 기준만 높이 잡을 뿐 효율을 개선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리더들에게 카리스마와 비전이 아닌 좋은 전략을 요구하는 것이다.
contents
머리말 모든 전략을 의심하라
1부 | 좋은 전략과 나쁜 전략 |
제1장 | 썩은 사과를 버려라 썩은 사과를 버려라 100시간 만에 완료한 사막 폭풍 작전 |
제2장 | 다윗의 돌팔매 다윗의 돌팔매 월마트의 숨겨진 힘 경쟁우위에 대한 관점의 전환 |
제3장 | 나쁜 전략 나쁜 전략의 기원 미사여구의 함정 문제는 무조건 피한다 목표와 전략의 혼동 잘못된 전략적 목표 |
제4장 | 나쁜 전략이 만연하는 이유 어려운 선택을 피하는 리더 빈칸만 채우는 형식적 전략 터무니없는 믿음 |
제5장 | 좋은 전략의 중핵 냉정한 진단 짜임새 있는 추진 방침 일관된 행동 |
2부 | 전략을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
제6장 | 지렛대 활용하기 상상하지 말고 예측하라 받침점은 효과를 배가한다 집중은 더 큰 성과를 안겨준다 |
제7장 | 근접 목표를 설정하라 모호성을 제거하라 더 현실적인 근접 목표를 세워라 목표의 위계를 파악하라 |
제8장 | 사슬형 시스템의 강점과 약점 리더십과 기획이 사슬형 시스템의 핵심이다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번 확보한 우월성은 쉽게 모방하기 힘들다 |
제9장 |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 전략의 아버지, 한니발 구성요소의 유기적 결합 전략적 자원을 확보하라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
제10장 | 초점 맞추기 피상적인 분석과 심층 분석의 차이 통념을 넘어서야 한다 |
제11장 | 전략적 성장이란 무엇인가 필요하면 전략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성장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버려라 |
제12장 | 고릴라와 레슬링 고릴라와 레슬링 경쟁우위의 본질 경쟁력을 확보하는 법 가치를 창출하는 변화 |
제13장 | 변화의 흐름이 아닌 내용을 읽어라 변화는 깨달음을 필요로 한다 근본적인 역량의 발견 컴퓨터 산업의 구조 변화 변화의 파도에 올라탄 시스코 변화의 단서 |
제14장 | 관성과 엔트로피 관성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엔트로피는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가 |
제15장 | 엔비디아 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3D 그래픽, 유타, SGI 컴퓨터 게임의 필수품, 그래픽 카드 엔비디아는 어떤 전략이었는가 경쟁자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 엔비디아 전략의 교훈 |
3부 | 전략가처럼 생각하기 |
제16장 | 전략, 과학을 만나다 전략은 가설이다 계몽과 과학 이례적인 것은 기회를 준다 통념을 넘어선 에스프레소 바 커피의 색다른 반란과 혁명 일 지오날레를 통한 가설 검증 수직으로 통합하라 |
제17장 |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검증하라 중요한 일 10개를 정하라 태도와 방법론 어떤 기술적 도구를 쥐어야 할까 판단력은 연습에서 나온다 |
제18장 | 냉정을 잃지 말라 판단력 상실이 만든 헛된 꿈 금융위기를 부른 군집행동과 내부 관점 |
전략의 기본은 우리가 가진 최대 강점을 상대의 가장 약한 부분에 부딪히는 것이다. 즉, 가장 효과가 높을 것 같은 곳에 최강의 무기를 던지는 것이다.
오늘날의 전략 이론은 이 기본을 잠재적인 이점Advantage, 즉 우위성까지 확대하였다. 예를 들면, 시장 선발주자의 이점First Mover Advantage이다. 선두주자는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 효과, 평판, 특허,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우위에 서는 것이 많다.
이러한 장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최대 강점이 아니라 중간 단계의 강점으로 전략을 논의하면, 좋은 전략이 본래 가지고 있는 탁월한 이점을 얻기는 어렵다.
좋은 전략은 첫째가 ‘일관된 전략’이다. 좋은 전략은 기존 강점을 그냥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일관성을 통해 새로운 강점을 창출한다.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조직은 이 일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연관성이 없거나 심지어 서로 부딪치는 복수의 목표를 추구한다.
좋은 전략은 둘째가 ‘관점의 전환’이다. 통찰력 있는 분석을 통해 경쟁 구도를 재설정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전략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통찰에서 나온다.
1장과 2장에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다루고자 한다. 리더가 전략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해서 좋은 전략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좋은 전략의 부재는 나쁜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잡초가 목초를 밀어내듯이 나쁜 전략은 좋은 전략을 밀어낸다. 전략의 속성과 작동 방식에 대하여 잘못된 관점을 가진 리더는 나쁜 전략을 따르게 된다. 3장에서는 나쁜 전략의 사례와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4장에서는 “왜 나쁜 전략이 이렇게 많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5장에서는 좋은 전략의 논리적 구조를 분석할 것이다.
좋은 전략이 주는 첫 번째 이점은 다른 조직들이 갖지 않았고, 예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좋은 전략은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 방침, 자원을 조율하는 일관성을 지닌다. 많은 조직은 이러한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들은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는 피상적인 방법론에 의존하여 복수의 목표를 추구한다.
썩은 사과를 버려라
마이크로소프트가 1995년에 윈도우95를 발표한 후 애플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비즈니스 위크>는 1996년 2월 5일자 표지에 애플의 사과 로고타입을 싣고 “아이콘의 몰락”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윈도우와 인텔 기반의 PC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가는 가운데 애플을 살리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는 정리해고를 단행한 데 이어 제품군을 매킨토시, 정보 기기, 프린터 및 부속기기, 대안 플랫폼으로 나누었다. 운영체제 그룹과 첨단기술 그룹에는 인터넷 서비스 그룹이 추가되었다.
<와이어드Wired>는 “애플을 살리는 101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거기에는 “IBM이나 모토롤라에 인수를 요청할 것”, “뉴턴Newton 기술에 대규모로 투자할 것”, “교육 시장에서 이점을 활용할 것” 같은 제안들이 포함되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소니나 HP와 손을 잡으라고 촉구했다.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1997년 9월에 부도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급기야 회사를 떠났던 스티브 잡스가 임시 CEO로 복귀했다. 매킨토시의 열혈 팬들은 그의 복귀를 반겼지만 기업계의 반응은 대체로 미지근했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첨단 제품의 개발을 촉진하고 선Sun과 손잡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잡스가 선택한 전략은 명백하면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경쟁이 치열한 PC 시장의 틈새 상품 제조사라는 현실에 맞게 사업 규모와 범위를 축소했다. 사업 구조 재편 이후 남은 것은 생존력을 가진 핵심 부문뿐이었다.
잡스는 애플이 망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독과점 문제에 시달릴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우려를 잘 알았다. 그래서 애플에 1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모든 데스크톱 모델과 휴대용 모델을 각각 하나로 줄이고, 프린터와 부속기기 라인업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러한 제품 라인업 정리와 함께 개발 인력 및 유통망에 대한 정리도 이루어졌다. 모든 생산은 외주로 전환되었다. 단순화된 제품 라인업을 외주로 생산한 결과 재고를 80퍼센트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새로 만든 인터넷 매장은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제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잡스의 애플 살리기 전략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성격을 지녔다.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 조직을 축소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했다. 잡스는 애플 컴퓨터에서 최신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돌아가게 만들었고, 아시아 지역으로의 외주를 통해 효율적으로 공급사슬을 운용하는 델의 모델을 차용했으며, 새로운 운영체제의 개발을 중단하고 넥스트NeXT가 개발한 업계 최고의 운영체제를 가져다 썼다.
이러한 전략의 힘은 일련의 일관된 행동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에 직접 대응한 데서 나왔다. 잡스는 야심 찬 수익 목표도,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시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맹목적인 구조조정에 몰두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순화된 제품 라인업을 중심으로 전반전인 사업 논리를 재구성했다.
나는 1998년 5월에 애플과 텔레콤 이탈리아Telecom Italia 사이의 계약을 중재했다. 덕분에 잡스와 회생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전략적 결정을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제품 라인업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제게 물어볼 정도였어요. 수많은 제품들의 차이를 알 수가 없었던 거죠. 저 역시 명확하게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제품의 가격이 2천 달러 이상이라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데스크톱 제품을 파워맥 G3로 통일했습니다. 또한 거래하던 6개 유통업체도 하나로 줄였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일일이 맞춰주다 보니 모델이 계속 늘어나고 가격이 비싸졌던 것입니다.”
당시 잡스가 추진한 일련의 집중적 조치는 업계에서 보기 드문 것이었다. 나는 그보다 18개월 전에 앤더슨 컨설팅Anderson Consulting의 후원을 받아 세계 전자업계에 대한 대규모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나는 유럽의 전자업계에서 일하는 26명의 경영인과 인터뷰를 가졌다. 질문 내용은 단순했다. 나는 선두업체가 성공한 비결과 그에 맞서는 개별 기업의 전략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대체로 선두업체가 취한 전략을 어려움 없이 설명했다. 일반적인 내용은 기회의 문이 열렸을 때 가장 먼저 시장을 선점했다는 것이었다. 요점은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올바른 길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경영하는 기업의 전략에 대한 질문에는 다른 대답들이 나왔다. 그들은 다음에 열릴 기회의 문을 언급하는 대신 장황한 자기 홍보에 열중했다. 그들은 펌웨어를 인터넷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게 만들고, 연합을 맺고, 360도 피드백을 얻고, 해외시장을 탐색하고, 어려운 전략적 목표를 세우는 등의 일을 했다.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을 때 신속하게 좋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성공 비결을 알면서도 전략의 토대로 삼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잡스가 애플의 미래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가졌을지 대단히 궁금했다. 회생 전략은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기는 했지만 애플을 미래로 전진시킬 수는 없었다. 당시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4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사실상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은 윈도우-인텔 체제로 굳어지고 있었다. 애플로서는 틈새시장에 매달리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1998년 여름에 나는 다시 잡스와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스티브, 애플의 회생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PC 산업의 현실을 보면 애플이 틈새시장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윈도우-인텔 표준을 바꾸기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너무 강력해요. 이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책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나의 주장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의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웃음을 지으며 “다음에 올 대박을 기다릴 겁니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단순한 성장률이나 시장점유율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고, 다각도로 노력하면 언젠가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성공의 원천인 새로운 기회의 문을 파악하고, 능숙한 포식자처럼 신속하고 영리하게 덤벼들 준비를 하는 데 집중했다. 새로운 기회의 문은 해마다 열리는 것도 아니었고, 경영 수완을 통해 억지로 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과거 그는 애플 Ⅱ와 매킨토시 그리고 픽사를 통해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넥스트를 통해 억지로 열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실제로 애플이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재도약하기까지 2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다음에 올 대박을 기다린다는 잡스의 대답은 일반적인 성공의 공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양한 신기술의 출현을 앞둔 당시 애플과 업계의 상황을 감안하면 현명한 접근법이었다.
100시간 만에 완료한 사막의 폭풍 작전
뜻밖의 전략에 대한 또 다른 사례는 1차 걸프전이 발발한 1991년에 등장했다. 미군 지휘관들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물리치기 위해 뜻밖의 전략을 수립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1990년 8월 2일이었다. 특수부대와 공화국 수비대의 4개 사단으로 구성된 15만 이라크군은 공수작전과 수륙양용작전을 통해 빠르게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주된 이유는 어려운 경제 사정이었다. 이라크는 1980년부터 8년 동안 이란과 전쟁을 치르면서 쿠웨이트를 비롯한 걸프 국가에 상당한 부채를 졌다. 쿠웨이트를 강제로 합병하면 부채를 없앨 뿐만 아니라 원유에서 나온 수익으로 다른 국가에 대한 부채를 갚을 수 있었다.
5개월 후 부시 대통령의 주도 아래 33개국이 모여 결성한 연합군은 이라크군에 대한 공습을 전개하는 한편 지상군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라크는 거기에 맞서서 점령군을 50만 명 이상으로 늘렸다. 공습만으로 점령군을 물리칠 수 없다면 지상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연합군이 이라크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느냐가 관건이었다. 1990년 10월에 프랑스의 주간지인 <렉스프레스L’Express>는 쿠웨이트 수복에 약 2만 명의 전사자와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증원된 이라크군이 방어진을 구축하자 의회와 언론은 1차대전 때의 참호전을 떠올렸다. 플로리다 주 상원의원인 밥 그레이엄Bob Graham은 “이라크가 이미 5개월 동안 쿠웨이트에서 대규모 요새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보병 제16연대가 M16과 M60으로 쿠웨이트의 참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는 임무를 맡았다”라고 보도했다. <타임>은 이라크군의 방어 태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 크기의 지역에 54만 명의 병력과 4천 대의 탱크 그리고 수천 대의 장갑차와 곡사포가 집결해 있다 (…) 이라크군은 모래주머니를 쌓아 전통적인 삼각형 진지를 구축하고 각 모퉁이에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중대를 배치했다. 보병과 탱크는 이동식 콘크리트 대피호나 참호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삼각형 진지의 꼭지점에 배치된 곡사포는 지뢰밭이 설치된 ‘죽음의 지역’을 겨냥하고 있다.”
<LA 타임즈>는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이렇게 썼다.
전방의 이라크군은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했다. 이처럼 요새화된 지역을 공격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다. 콜드 하버Cold Harbor, 솜Somme, 갈리폴리Gallipoli의 기억은 실패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상기시킨다. 타라와Tarawa, 오키나와, 함부르크처럼 성공한 전투도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다.”
언론이 미처 몰랐던 사실은 중부군 총사령관인 노먼 슈와츠코프Norman Schwarzkopf 장군이 10월 초에 지상전에 대비한 전략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참모들이 기획했던 정면 공격 작전에 따르면 2천 명의 전사자와 8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슈와츠코프 장군은 이 계획을 반려하고 양동 작전을 채택했다. 이 작전의 내용은 먼저 공습으로 이라크군의 전력을 50퍼센트로 약화시킨 다음 좌우 양측에서 공격을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해병대는 상륙하지 않고 적의 주의를 돌리는 역할만 했고, 본격적인 공격은 왼쪽으로 돌아 들어간 부대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전략은 100시간 만에 지상전을 끝낼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한 달 동안 지속된 공습은 이라크군이 탱크와 곡사포를 숨기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이후 공격 헬리콥터와 폭격기를 동반한 지상군의 진격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이루어졌다. 이라크군은 용감하게 맞섰지만 지원군을 기다릴 시간을 벌지 못했다.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쓰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만약 이라크군이 화학무기를 썼다면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해병대 사령부는 화학무기에 병력의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를 잃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사막 폭풍 작전이 전개되는 동안 미군은 탈릴Tallil에 있던 화학무기 저장고를 파괴했다. 또한 1998년에 유엔특별위원회UNSCOM는 8천 개가 넘는 화학탄두와 수 톤에 이르는 화학물질을 폐기했다. 다행히 후세인은 핵무기로 보복 당할까봐 화학무기를 동원하지 않았다.
결국 이라크군은 대부분의 병력을 잃은 채 퇴각했다. 공화국 수비대 2개 사단이 바스라Basra로 탈출한 이후 전쟁을 너무 일찍 끝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비판은 이라크가 77만 명으로 구성된 20개 사단 이상의 병력을 본토에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연합군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다. 작전 첫날 사망자는 8명, 부상자는 27명에 그쳤다. 압도적인 승리로 전쟁이 끝나자 참호전을 우려하던 사람들은 연합군이 필요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이미 예정된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슈와츠코프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지상전 전략을 공개했다. 이 브리핑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뉴스 진행자들은 이 작전이 명석했다고 평가했다. 양동 작전을 통한 포위공격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육군은 기본적인 전투 수칙과 방법론을 담은 야전 교을 펴낸다. 1986년에 『작전Operations』이라는 표제로 출간된 FM 100-5는 육군의 핵심 전투 교범이다. 공격 작전을 다루는 이 교범의 2부는 가장 중요한 공격 형태로 ‘포위’를 설명하고 있다.
“포위는 지원부대를 통해 적의 주의를 돌린 다음 적 전력이 집중된 전방을 피하고 우회하여 측면이나 후면을 타격하는 것이다.”
포위 공격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
그렇다면 슈와츠코프 장군이 미 육군의 핵심 공격 작전을 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드물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부분적인 이유는 성공적인 속임수에 있었다. 슈와츠코프 장군은 핵심 병력이 바다에서 상륙하여 이라크군을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속임수를 썼다. 이 속임수는 이라크 해군에 대한 공격과 쿠웨이트 해안에서 전개한 소규모 수륙양용작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언론도 수륙양용작전을 위한 훈련 모습과 쿠웨이트 남부 국경지대에 집결된 병력 현황 그리고 참호전에 대한 우려를 보도함으로써 뜻하지 않게 적을 속이는 데 기여했다.
포위 작전의 핵심은 적에게 전면 공격에 대한 착각을 심어주는 동시에 대규모 우회 기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전 내용은 25달러만 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야전 교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현재 버전은 FM 3-0이다)
그렇다면 왜 이라크군과 미국의 전문가들 그리고 의회는 연합군이 대표적인 공격 작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까?
이 수수께끼에 대한 최선의 해답은 단순하고 집중적인 전략을 실제로 실행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외성이 나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복잡한 조직은 내외부의 이해관계를 두루 만족시키기 위해 자원을 집중하기보다 분산하는 경향을 지닌다. 따라서 애플이나 미 육군 같은 조직이 실제로 행동을 집중하면 놀랍게 느껴진다. 좋은 전략은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이 아니라 예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다.
사막 폭풍 작전에서 초점을 맞추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다. 슈와츠코프 장군은 공군, 해병대, 육군, 연합군, 정치인들의 야심과 욕망을 억눌러야 했다. 미 육군의 정예병력인 82 공수부대는 부대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아야 했다. 또한 8천 명의 해병대는 쿠웨이트 시 인근 해안에서 적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상륙 대기만 해야 했다. 그리고 공군 사령부는 전략 폭격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했지만 지상군을 지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게다가 딕 체니 국방부 장관은 보다 적은 병력을 투입하는 구체적인 대안 공격 계획까지 수립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우디군을 지휘하는 칼리드Khalid 왕자는 파흐드Fahd 왕이 작전 수립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슈와츠코프 장군은 미 중부군이 통제권을 보장받도록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다.
서로 부딪치는 목표를 추구하고, 연관성이 없는 사업에 자원을 분할하며, 양립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수용하는 일은 결국 나쁜 전략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조직은 집중화된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자원을 통합하고 집중하는 진정한 역량에 대한 필요성을 무시하고 잡다한 목표를 늘어놓는다. 좋은 전략을 세우려면 사소한 이해관계에 따른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전략 수립에 있어서 조직이 하는 일만큼 하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좋은 전략이 주는 두 번째 이점은 강점과 약점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다.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약점과 위기뿐만 아니라 강점과 기회의 새로운 장을 발견할 수 있다.
다윗의 돌팔매
기원전 약 1030년 경, 목동인 다윗이 전사 골리앗을 물리쳤다. 골리앗이 블레셋 진영에서 앞으로 나와 도발했을 때 사울Saul 왕의 군대는 공포로 움츠러들었다. 골리앗은 2미터 7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베틀 채만한 창을 들었고, 투구와 갑옷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다윗은 군인이 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그래도 골리앗에 맞서고 싶었다. 사울은 아무리 설득해도 다윗이 물러서지 않자 갑옷을 내주었다. 다윗은 무거운 갑옷을 버리고 목동의 옷을 입은 채 싸움에 나섰다. 그는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면서 돌팔매를 날렸다. 이마에 돌을 맞은 골리앗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다윗은 죽은 골리앗의 머리를 잘랐고, 블레셋군은 도망쳤다.
전략은 상대적 약점에 상대적 강점을 적용하는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강점과 약점을 표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사울은 이러한 구도에 따라 다윗이 골리앗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돌팔매 실력과 날쌘 몸놀림이라는 다윗의 다른 강점을 보지 못했다. 다윗은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사울이 준 갑옷을 버렸다. 어차피 골리앗과 근접전을 치르게 되면 갑옷은 크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또한 골리앗은 투구가 이마라는 급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다윗이 가진 원거리 무기는 체구와 힘이라는 골리앗의 이점을 무력화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강점과 약점에 대한 인식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약자처럼 보이는 다윗이 강자처럼 보이는 골리앗을 이겼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명백한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진정한 역량의 발견에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역량을 인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뜻 파악하기 어려운 핵심적인 목표를 발견하고 이점을 창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통찰은 좋은 성과와 대단히 좋은 성과의 차이를 만드는 추가적인 역량을 제공한다.
월마트의 숨겨진 힘
내가 MBA 강의와 기업 컨설팅을 통해 하는 일은 대개 숨겨진 역량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나는 종종 샘 월튼Sam Walton을 미국 최고의 부자로 만든 월마트의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도시와 해외로 진출하여 매출액에서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된 후기 월마트의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롭다. 그러나 유통업계의 거인이 아니라 어린 도전자 입장이던 초기 월마트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롭다. 지금은 믿기 어렵지만 월마트도 한때는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이었다.
지금부터 월마트를 다룬 강의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나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칠판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었다.
통념: 종합 할인점을 운영하려면 최소 10만 명의 인구 기반이 필요하다.
내가 설명해야 할 것은 월마트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유였다. 나는 영업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빌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마치 정해진 공식인 것처럼 설립자인 샘 월튼의 리더십을 언급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도 반박도 하지 않은 채 칠판에 ‘샘 월튼’이라고 적은 다음 “월튼이 구체적으로 기여한 일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빌은 칠판에 적힌 문구를 보고 “월튼은 통념을 깨트렸습니다. 그는 소도시에 대형 매장을 세웠고, 연중 할인을 실시했으며, 전자화된 물류 시스템을 운영했습니다. 또한 월마트에는 노조가 없었고, 관리비도 적게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대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들이 떠오르는 대로 성공 이유를 제시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대신 매장의 규모, 도시의 크기, 물류 시스템의 운영 방식, 관리비 절감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이 제시한 대답은 세 개의 도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도표는 인구 1만 명의 소도시를 나타내는 원과 월마트 매장을 나타내는 사각형으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도표는 물류 시스템을 표현한 것이었다. 나는 지역 물류센터를 나타내는 사각형을 그리고 월마트 매장까지 이어지는 선을 그렸다. 지역 물류센터에서 출발한 트럭은 150개의 매장을 거친 다음 돌아오는 길에 공급업체에 들러 상품을 실었다. 그리고 지역 물류센터로 돌아와 출고 차량에 상품을 옮겨 실었다. 입고 차량과 출고 차량이 만나는 지점은 X자로 표시되었다. 또한 매장에서 중앙 컴퓨터를 거쳐 공급업체와 물류센터를 잇는 선은 각각 다른 데이터 흐름을 나타내는 별도의 색으로 표시되었다. 끝으로 경영 시스템을 설명할 때는 지역 책임자의 주간 이동경로를 따라 표를 그렸다. 가령 월요일에 아칸소에서 출발하여 매장을 방문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배포하고, 목요일에 아칸소로 돌아와 금요일에 회의를 하는 식이었다. 물류 시스템과 경영 시스템을 그린 두 도표는 허브를 중심으로 효율적인 배분이 이루어지는 비슷한 구조를 드러냈다.
이제 학생들이 제시한 사항들은 모두 정리되었다. 나는 강의실을 둘러보며 “여러분이 말한 내용들이 월마트가 성공한 이유이고, 이 내용들이 1986년에 이미 사례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면 왜 케이마트Kmart는 그 후 10년 동안 계속 경쟁에서 밀렸을까요?”라고 물었다.
강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 질문은 사례연구에 나타난 내용들을 편하게 주고받는 즐거움을 깨트렸다. 월마트에 대한 사례연구는 할인 유통업계를 폭넓게 다루기만 할 뿐 경쟁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은 강의 준비를 하면서 이 점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깊게 고민하는 학생은 없었다. 사례연구도, 학생들도 경쟁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나는 지난 경험에 비추어 어떤 학생도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전략 강의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점은 언제나 경쟁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공한 기업의 행동만 살피면 그림의 일부밖에 보지 못했다. 성공한 기업이 있으면 반드시 실패한 기업도 있기 마련이었다. 때로 특허를 비롯하여 일시적 독점을 누릴 수 있는 법적 권리 때문에 경쟁이 좌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의 전략을 모방하기 어렵게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 월마트가 누리는 우위는 경쟁자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월마트의 주요 경쟁자는 케이마트였다. 한때 저가 유통업계의 리더였던 케이마트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해외 진출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월마트가 일으킨 물류 시스템의 혁신과 소도시 시장에서의 지배력 확산을 무시하다가 결국 2002년에 파산하고 말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월마트와 케이마트는 모두 1980년대 초반부터 바코드 스캐너를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월마트가 케이마트보다 더 많은 혜택을 본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유통업체는 바코드 스캐너를 가격표 교체 비용을 줄이는 방편으로 보았다. 그러나 월마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위성 기반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물류 관리 및 공급업체와의 협상에 활용했다.
이때 인사 책임자인 수전이 손을 들었다.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한 것이 생각에 도움을 준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가 앞서 설명한 보완 정책과 이 문제 사이의 연관성을 보았다. 그녀는 “판매 데이터 자체만으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케이마트는 판매 데이터를 물류센터, 공급업체와 연계하여 통합된 물류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나는 월마트의 정책이 바코드 스캐너, 적시 조달 체제, 재고 관리 등 물류 시스템의 여러 가지 요소를 상호보완적으로 통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류 시스템과 관련된 월마트의 구조, 정책, 행동은 일관성을 이루고 있었다. 각 요소는 다른 요소에 맞게 특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개별 요소만 따로 모방할 수 없었다. 많은 경쟁자들은 월마트처럼 각 요소를 최선의 형태로 조합하기 위한 전반적인 설계를 하지 못했다. 일부 경쟁자들은 나름대로 일관된 설계를 했지만 추구하는 목적이 달랐다. 어느 쪽이든 경쟁자들은 월마트를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략의 요소만 부분적으로 모방하는 것은 별다른 혜택을 안겨주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전반적인 설계였다.
이밖에도 선점 효과, 비용 우위의 정량화, 학습에 따른 역량 강화, 리더십의 기능, 시장 확대 등 다루어야 할 사안들이 많았다. 나는 강의 종료 15분을 남기고 논의를 정리했다. 학생들은 월마트의 비지니스 모델을 훌륭하게 분석했다. 다만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중요해 보이는 한 가지 사안이 남아있었다. 이 사안은 강의 전에 칠판에 쓴 문구와 관련이 있었다. 나는 빌에게 “아까 월튼이 통념을 깨트렸다고 말했죠? 하지만 이 통념은 고정비와 변동비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에 토대를 두고 있어요. 비용과 가격을 낮게 유지하려면 충분한 고객이 필요합니다. 월튼은 어떻게 이 비용 논리를 깨트렸습니까?”라고 물었다. 빌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빌의 생각을 돕기 위해 가정을 제시했다. “당신이 월마트 지점장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때는 1985년입니다. 당신은 회사의 정책에 불만이 많습니다. 지역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당신은 자산가인 아버지에게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예 매장을 직접 인수해서 운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연달아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빌은 두 눈만 깜박거리더니 잠시 후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일 매장으로는 성공하기 힘듭니다. 월마트 매장은 네트워크의 일부로 운영되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칠판에 적힌 문구 옆에 서서 “월마트 매장은 네트워크의 일부로 운영되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