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여행의 시작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공항의 공기 속에는 가슴을 뛰게 하는 화학 성분이 첨가된 게 틀림없다. 비행기 특유의 진동과 저울추처럼 묵직한 소음이 아드레날린이 되어 여행자의 모세혈관을 타고 온몸의 세포 속으로 파고든다.
로마 다빈치 공항. 늘 줄이 길고, 늘 수속이 오래 걸린다. 여권 검사는 몇 초 걸리지도 않는데, 항상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입국 수속을 밟을 때마다 수수께끼다. 마침내 수속을 통과하고 로마로 이동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는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야간열차를 탔다.
이탈리아 곳곳에 숨은 소도시 여행의 시작을 남부에서 할 요량이었다. 남부에서 시칠리아 섬을 거쳐 본토의 중부와 북부까지, 구석구석 보물처럼 숨어 있는 소도시를 찾아가는 설렘이란……. 소도시마다 제각기 신화와 역사, 사랑 이야기가 있고, 때로는 대자연의 웅장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그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사랑과 풍경의 아름다움에 빠질 생각에 잠을 설친다.
야간열차는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의 여러 도시들을 장돌뱅이처럼 떠돌며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리다 서고를 반복했다. 살짝 열어둔 창문 틈새로 차고 낯선 바람이 새어들었다. 비몽사몽 몇 시간을 뒤척이다 창밖을 바라보니 푸르스름한 새벽 여명이 어느새 기차 꽁무니를 쫓아온다. 창밖으로는 풀리아 주의 넓은 평원이 어슴푸레한 여명 속에서 마치 흑백영화처럼 스쳐간다. 고작 하루를 이동했을 뿐인데, 세상은 온통 낯선 풍경이다.
더 이상 제대로 잠을 자기는 이미 글렀다. 비좁은 야간열차의 객실 구석에 구겨진 종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기대어 앉았다. 채 날이 밝지 않은 새벽과 이른 아침의 경계에서 똑똑, 누군가 쿠셋 문을 노크한다. 야간열차의 차장이 아침식사로 간단히 커피와 크루아상을 쟁반에 담아왔다. 그의 경쾌한 아침 인사에 잠이 확 달아난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차장이 가져다준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이탈리아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커피의 쓴맛과 크루아상의 부드러움이 묘하게 어울린다.
밤을 새워 달리던 열차가 마침내 바리에 도착했다. 여행의 긴장과 기대가, 한껏 흥이 오른 상쇠의 북채처럼 심장을 두드린다. 재빨리 카메라를 챙겨 어깨에 걸었다. 열차의 저 문을 밀고 나서면 이탈리아는 어떤 풍경들과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줄까. 문을 밀던 손이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몸이 앞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열차 문이 열리자 눈부신 남부의 햇살이 눈을 파고들었다. 곧이어 활기찬 이탈리아 인들의 수다가 귓가로 쏟아져 들어왔다.
- 본조르노, 이탈리아Buon Giorno, Italia! 차오, 이탈리아Ciao, Italia!
낯선 공간, 설레는 시간.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Contents
01/
동화 속 풍경
소도시 여행
알베로벨로 ●풀리아의 동화 마을
갈리폴리 ●이오니아 해의 진주
마테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
레체 ●두 얼굴의 도시
포시타노 ●꿈의 도시
소렌토와 아말피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리는 곳
라벨로 ●우아한 선율이 흐르는 공중 정원
02/
시칠리아
소도시 여행
타오르미나 ●시칠리아의 파라다이스
카타니아 ●화산의 도시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
에리체 ●비너스의 키스
팔레르모 ●시칠리아 문명의 기억
03/
슬로푸드
소도시 여행
페루자 ●움브리아의 부엌
스펠로 ●세상의 중심
피렌체 ●화려하지 않은 행복
시에나 ●판포르테의 달콤함
볼로냐 ●이탈리아 미식의 수도
04/
숨은 자연
소도시 여행
베로나 ●로맨스가 피어나는 곳
코모 ●비단결 같은 호수 한 바퀴
베르가모 ●천상의 도시
볼차노 ●오스트리아의 향기
알페 디 시우시 ●돌로미테의 초록 심장
아오스타 ●이탈리아의 알프스
05/
꿈의 해안
소도시 여행
베네치아 ●물의 도시
부라노 ●마법 같은 행복
트리에스테 ●제임스 조이스의 피난처
트로페아 ●칼라브리아의 숨겨진 보물
친퀘 테레 ●사랑의 길
06/
세계 문화유산
소도시 여행
아시시 ●순례자의 도시
산 지미냐노 ●마천루의 도시
피사 ●기적의 들판
라벤나 ●비잔틴 모자이크의 도시
01
알베로벨로
갈리폴리
마테라
레체
포시타노
소렌토와 아말피
라벨로
풀리아의 동화 마을
Alberobello
파란 하늘과 원추형의 트룰로 그리고 또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곳, 알베로벨로.
이곳에 서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 그대로 동화 같은 세상을 믿고 싶어진다.
로마 테르미니Termini역에서 출발한 야간열차가 밤새 달려 도착한 곳은 풀리아Puglia 주의 수도이자 남부의 가장 부유한 도시 바리Bari였다. 이탈리아 지도 전체를 봤을 때 구두 뒷굽에 해당하는 풀리아 주의 여러 도시를 돌아보고 앞굽인 칼라브리아Calabria 주를 거쳐 시칠리아Sicilia 섬으로 넘어갈 요량이었다.
- 알베로벨로행 표 주세요!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역무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한다.
알베로벨로는 풀리아 주의 자랑이자 이탈리아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의 도시다. 마치 영화 속에서 주인공만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열차의 승강장을 운명적으로 찾게 되듯, 바리에서 알베로벨로로 향하는 열차의 승강장은 중앙역 모퉁이에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어 초행인 여행자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표를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칸 되지 않는 짧은 열차가 조용히 승강장으로 들어왔고, 몇 명 되지 않는 여행자들이 알베로벨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바리에서 얼마를 달렸을까. 열차 창밖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풍경이 무심히 흘러갔다. 황토빛 들판에는 올리브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독특한 원추형 모양의 돌집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트룰로Trullo라고 불리는 이 지역 특유의 주거지다. 남부에서 흔히 채취되는 돌을 이용해 지은 집이라 한다. 드물게 보이던 트룰로들이 알베로벨로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빈번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작 알베로벨로 역에 내려서 마치니 거리Via Mazzini, 가리발디 거리Via Garibaldi를 따라 알베로벨로의 중심인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상상했던 동화 마을 알베로벨로의 놀라운 풍경은 좀처럼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알베로벨로는 포폴로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 언덕의 신시가 지구와 서쪽 언덕의 트룰리Trulli, 트룰로의 복수형 지구로 나뉜다. 포폴로 광장의 서쪽으로 발걸음을 향하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몬티 지구Rione Monti와 아이아 피콜라 지구Rione Aia Piccola의 1천 4백여 채나 되는 트룰로가 벌집 모양의 군집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몬티 지구에는 1천여 채의 트룰로가 비탈진 언덕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풍경과는 달리 지금도 상당수의 트룰로가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실제 거주지로 이용되고 있다.
트룰로의 유래는 현실적이고 팍팍하다. 옛날에는 주택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이 너무나 과했기 때문에, 가난했던 이곳 주민들은 단속 관리가 나올 때면 얼른 집을 부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이용해 트룰로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화 같지만 사실은 서글픈 서민의 삶이 녹아 있다. 그 옛날 조상들의 눈물과 한숨이 이제는 남부 제일의 관광거리가 되고 세계 문화유산이 되었다니, 언제나 그렇듯 역사나 인간의 삶이나 참 아이러니하다. 오늘의 시련이 내일의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트룰로 숙소를 전문으로 소개해주는 트룰리데아Trullidea에 전화해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트룰로를 예약할 수 있었다. 예약한 트룰로를 찾아가니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가 널찍하고 아늑하다. 방마다 지붕이 하나씩이어서 독채에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룸형 트룰로는 가장 안쪽에 침실이 있고, 넓은 거실에는 옷장과 소파,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입구 쪽이 부엌이다. 천장에는 대들보가 다 드러나 있고, 욕실과 화장실도 공간이 넉넉하고 청결하다. 온통 하얗게 페인트가 칠해진 내부는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바깥은 한창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도, 트룰로 안에만 들어가면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도 시원해지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몬티 지구의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면, 특유의 원추형 지붕이 인상적인 트룰로 교회La Chiesa a Trullo가 우뚝 서 있다. 이 교회는 알베로벨로 지역 주민과 미국 이민자들의 도움 덕분에 건설될 수 있었다. 19.80미터에 이르는 트룰로 모양의 돔 앞에 서면 교회의 위엄보다는 먼저 여행객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묘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알베로벨로를 거닐다보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동화 같은 풍경이다. 원추형 지붕마다 제각기 그려져 있는 태양, 달, 별 등의 도형과 종교적인 문양들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한낮이 되면 조용하던 마을 골목길이 전 세계에서 찾아온 단체 관광객들로 다소 소란스러워진다. 과거 가난하고 고단했던 삶의 현장은 무수한 세월이 흐르며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 수많은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마을이 되었다.
트룰로는 원래 원추형 지붕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는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몬티 지구의 트룰로 중에서 유일하게 한 건물에 두 지붕을 가진 트룰로 시아메세Trullo Siamese가 시선을 끈다. 옛날에 아버지로부터 하나의 트룰로를 상속받은 두 형제 중 형과 정혼한 여인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자, 형제가 크게 다투고 서로 등을 돌렸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트룰로는 가운데 벽을 세워 둘로 쪼개졌고, 지붕도 둘로 나뉘게 되었다. 알베로벨로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지붕을 가진 트룰로 시아메세는 지금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동화 같은 풍경 이면의 현실적인 이야기다.
몬티 지구를 한눈에 내려다보기 가장 좋은 위치는 포폴로 광장 서쪽에 있는 성 루치아 교회Chiesa di S. Lucia 옆 작은 공터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 동화 속 풍경을 만들고 있는 몬티 지구가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새하얗게 칠해진 외벽으로 인해 알베로벨로는 온통 하얗다. 그 때문인지 마음이 저절로 맑게 정화되는 듯하다.
파란 하늘과 원추형의 트룰로 그리고 또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곳, 알베로벨로. 이곳에서는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여기에 서면 지금은 그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 그대로 동화 같은 세상을 믿고 싶어진다. 여행이 끝나면 돌아가야 할 치열한 삶의 전쟁터는 잠시 잊고, 그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트룰로 사이로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은 마치 만화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알베로벨로에서는 미니 트룰로를 파는 기념품 가게가 특히 인상적이다. 직접 정과 망치로 돌을 쪼개 미니 트룰로를 만드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하얀 먼지를 뒤집어쓴 주인장의 손길이 바빠 보였다.
- 당신이 한번 만들어 보겠소?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더니 그가 공구를 건네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인다. 서툰 망치질을 보며 그가 다시 한 번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기념품을 하나 더 팔려 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낯선 여행자에게 추억을 안겨주고픈 마음씀씀이가 참 고맙다.
몬티 지구 골목 곳곳에는 남부의 전통 칠리페퍼 절임과 다양한 특산물 절임, 와인, 치즈, 햄을 파는 가게들이 몇 군데 있다. 그 중에 들른 한 가게의 안주인 마리아는 칠리페퍼에 관한 학위를 세 개나 획득한 전문가였다.
- 조부 때부터 시작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어요.
그녀는 가게 한쪽에 걸린 조부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고는 과거에 전통 부엌과 우물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구석구석 구경시켜 주었다.
- 예전에는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저녁을 짓고 빨래도 했지요. 저 부엌 벽의 그을음을 보세요. 트룰로에서의 생활은 소박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할아버지 가게를 지키며 알베로벨로에서 살아가는 게 제겐 가장 큰 행복이에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칠리페퍼 절임을 하나 구입하고자 계산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느새 남부 풀리아의 전통 와인 한 병을 포장해 선물로 건네준다. 극구 사양하는데도 한사코 괜찮다며 문밖에까지 나와 미소를 지으며 작별인사를 하던 마리아. 이렇게 따스하고 고운 마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가게를 나와 트룰로 골목길을 다시 걷는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어제까지 머물렀던 공간과 시간, 서울에서의 일상은 어느덧 머나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다른 여행자들도 이렇듯 신비로운 풍경에 조금씩 흥분해 있었고 저마다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어느새 고요가 알베로벨로를 뒤덮었다. 소란스러운 여행자들도 모두 떠나고, 주민들도 모두 마법이 풀린 동화 속 주인공처럼 동그란 트룰로 속으로 사라졌다. 예쁜 조명이 밝혀진 길 위에 홀로 남아 서본다. 길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고요함 속에 잠든 새벽녘, 몬티 지구를 거니는 경험은 더욱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트룰로 문을 열고 나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골목길을 배회하다보면, 무쇠 솥뚜껑처럼 가슴을 짓누르던 현실의 무게는 홀연히 사라진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고요하고 동화 같은 알베로벨로의 새벽빛은 오묘하고 신비로운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조금만 지나면 태양 문양이 그려진 지붕 위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붉은 해가 떠오르며 알베로벨로의 아침을 물들인다. 또다시 여행자의 하루가 열리고, 아침 공기는 좀 더 분주하게 일상의 색채를 띠며 흐르기 시작한다. 어쩌면 현실이 아닌 동화 속 하루가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Travel Memo
가보기°
남부 풀리아 주의 주도 바리Bari로 간 뒤, 바리 중앙역에서 FSE 바리-타란토 노선으로 갈아타고 1시간 30분 정도 간다.
맛보기°
트룰로 도로 Trullo D’oro
미슐랭 가이드의 별 2개 평점을 연속적으로 받고 있는 전통 트룰로 리스토란테(이탈리아의 일반 식당을 일컬음). 에피타이저로 신선한 멜론과 함께 먹는 이탈리아의 전통 햄 요리 프로슈토와 멜론Prosciutto e Melone, 코스 요리로는 돼지고기나 양고기 그릴 구이Arrosto Misto를 추천한다.
address F. 카발로티 거리 27번지 Via F.Cavallotti, 27
telephone 080 4321820
트라토리아 아마툴리 Trattoria Amatulli
추천 메뉴는 티피코Tipico.
address 쥐세페 가리발디 거리 13번지 Via Garibaldi Giuseppe, 13
telephone 080 4322979
머물기°
트룰리데아 알베르고 디푸조 Trullidea Albergo Diffuso
알베로벨로 마을 속 트룰로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숙박 에이전시다.
address 몬테 사보티노 거리 24번지 Via Monte Sabotino, 24
telephone 080 4323860
url www.trullidea.it
들러보기°
마리아 콘체타 마르코 Maria Concetta Marco
전통 음식에 관한 학위를 딴 안주인이 직접 담근 다양한 저장 식품을 구경할 수 있다. 전통 트룰로 내부를 그대로 살려 3대째 운영 중인 가게다.
address 몬테 산 미케레 거리 37번지 Via Monte San Michele, 37
telephone 080 4321739
url www.trulloantichisapori.it
데알파 아르티지아나토 Dealfa Artigianato
다양한 전통 수공예 가죽 제품과 가면,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공방이다.
address 몬테 산 미케레 거리 40번지 Via Monte San Michele, 40
telephone 080 4321751
url www.dealfa.com
신시가지 산책
부유한 사제 집안에서 지은 유일한 2층 구조의 트룰로 소브라노Trullo Sovrano, 알베로벨로 출신의 유명 건축가 안토니오 쿠리Antonio Curi에 의해 건설된 산티 메디치 바실리카La Basilica dei Santi Medici, 카사 다모레Casa D’amore에 들러보자. 특히 카사 다모레는 트룰로를 변형하여 건축하거나 모르타르 사용 시 콘베르사노 백작이 주민들에게 부과했던 벌금에 대항해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이오니아 해의 진주
Gallipoli
밤이 되면 해변가 노천 카페에서 향기로운 와인을 마시거나,
넓적한 피자 한 판 두둑하게 먹으며 이오니아의 달빛을 누리는 곳.
이곳이 바로 갈리폴리다.
‘아름다운 도시’라는 뜻의 그리스 어 ‘칼리폴리스Callipolis’에서 유래한 갈리폴리는 육지 쪽의 신도시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에 둥지를 튼 구시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해, 로마 제국부터 반달 족과 고트 족, 비잔틴 제국, 노르만 족, 베네치아 공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16세기 이곳에 육지와 섬을 잇는 베키아Vecchia, ‘늙은’이라는 뜻 다리가 건설되었고, 18세기에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올리브 오일 시장이 형성됐다. 지금은 이탈리아 남부의 푸르른 이오니아 바닷가에 자리 잡은 한적한 어촌이자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관광지다.
이탈리아 남부의 바닷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큼직큼직한 야자수들이 기차역 앞 공원에 늘어서 있다. 마치 무뚝뚝한 사내를 보는 느낌이다. 야생동물의 귀소본능처럼 공원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뜨거운 남부의 태양을 머리에 이고 신시가지를 한참 걸어야 구시가지에 이르는 베키아 다리가 보인다. 다리 근처에 고대 그리스의 원형을 따라 16세기에 재건된 그리스 분수는 마치 여행자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줄 타임머신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사람들은 분수 앞에서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거나 흐르는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기도 한다.
푸른 이오니아 바다를 건너자 신시가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구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인도에 깔린 오래된 돌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반들반들 윤이 났고 햇살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바닷가 마을답게 좁은 골목 양쪽으로 온갖 해산물 관련 기념품은 물론 올리브 오일, 와인 가게와 식당들이 연달아 자리를 잡고 여행자들의 시선을 끈다.
한가운데 주술사의 집처럼 신비로운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갈리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란다.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약국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데 구석에 앉은 한 노인이 말을 건넨다.
- 이 약국은 수백 년이나 되었다오. 일본의 건축가가 펴낸 건축 관련 책에도 나온다지. 지붕을 한번 보시오.
그는 대대로 이 건물을 지키고 약국을 유지해온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로 하여금 이탈리아 인들이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파체 대로Via de Pace의 관광안내소에 들러 갈리폴리의 모든 숙소 정보가 들어 있는 책자를 하나 얻었다. 몇 군데 전화를 했지만 예약이 다 차거나 주인들이 여름휴가를 떠나거나 그도 아니면 아예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낙심해서 광장의 그늘 아래 주저앉았다. 그때 무심코 펼친 가이드북의 한 숙소가 눈에 띄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오랜 고생 끝에 찾아낸 숙소 인술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을 위한 대저택인 팔라초Palazzo를 그대로 활용한 B&BBed & Breakfast였다. 라틴 어 ‘팔라티움Palatium’에서 파생된 ‘팔라초’는 로마 시대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팔라티노 언덕에 주거용 건물을 건축한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관청이나 왕족과 귀족, 부유한 시민의 대저택을 가리키는 말이 되면서, 피렌체,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육중한 현관문과 높은 천장, 우아한 가구, 깨끗하고 넓은 침실에 수놓아진 하얀 린넨 시트, 앤틱 스타일의 쾌적한 파스텔톤 응접실과 넓은 발코니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잠시 머무는 여행자 처지이지만 옛 저택의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이 절로 든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고생이 인술라에 도착한 순간 사라졌다. 사실 인술라는 로마에서 최초로 지은 서민형 아파트를 일컫는 말이다. 중세 귀족의 팔라초에 인술라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갈리폴리를 찾아오는 길이 힘겨웠나보다. 잠시 침대에 누웠다가 눈을 뜨니 벌써 저녁 7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서둘러 마을 한 바퀴 산책길에 나선다. 동그랗게 형성된 구시가는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바닷가 해안도로를 따라 온갖 기념품 가게, 식당, 와인 바, 젤라토 가게들로 활기가 넘친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출렁거리는 바다가 보인다. 보트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은 한가롭고, 부드러운 모래의 아담한 해변은 평화롭다. 해안길은 바다보다 수십 미터 위에 있어서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 이오니아 바다가 발밑에서 출렁거린다. 바다에는 요트들이 석양을 받으며 조용히 떠다니고 있고, 와인통을 테이블 삼아 그 위에 와인잔을 올려놓은 노천카페는 세련되진 않아도 운치가 넘친다. 황금빛 일몰이 지고 사위에 어둠이 내리면 촛불이 켜진 노천카페 테이블마다 연인과 가족들, 친구들이 모여 한가로운 수다를 꽃피운다. 그때 이오니아 바다 위로 달이 빛나기 시작한다.
베키아 다리를 가운데 두고 성 반대편에서는 생선 가게들이 싱싱한 해산물을 늘어놓고 손님들과 한참 흥정을 벌인다. 다리를 따라 다양한 노점상들이 죽 늘어서서 밤늦은 시간까지 각종 기념품, 액세서리들을 팔고 있는 풍경은 활기차다. 노랑, 빨강, 파랑 물감으로 물들여 말린 불가사리, 별자리를 그려 넣은 조개껍질, 해마와 닻, 물고기 모양의 기념품, 주방 수세미를 대신할 수 있는 바다의 스폰지Spugne de Mare 등 아기자기하고 신기한 구경거리가 널려 있다. 손톱만 한 조개껍질로 만든 올빼미와 자라 모양의 기념품은 귀엽고 앙증맞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다가 바다를 향해 난 노천 레스토랑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상큼한 레몬 소다수 한 잔, 마르게리타 피자를 앞에 두고 갈리폴리의 밤을 즐긴다. 어느 재즈 바의 흐느적거리는 연주가 멀리서 들려온다. 바다는 잔잔했고 바람은 고요했다. 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올라 어두운 바다 위로 빛의 파편을 뿌렸다. 촛불이 켜진 테이블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바다 위로 흘러갔다.
새벽 5시. 저절로 잠에서 깼다. 발코니로 달려가 바깥을 내다보니 하늘이 코발트빛이다. 바다 위로 어스름이 장막처럼 덮여 있었다. 새벽의 적막함이 흐르는 공간과 시간. 갈리폴리의 고요한 매력이 가슴을 울렸다. 어느 주택가에선 걷어 들이지 않은 빨래들이 골목을 휑하니 지나는 새벽바람에 잠시 너풀거렸다. 파도는 여전히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도 없다.
동쪽 해변인 콜롬보Colombo 대로에 이르렀을 무렵 차가운 이오니아 바다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새벽 바다에서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가 힘차게 노를 저었다.
갈리폴리를 찾아가는 길은 비록 힘들고 고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갈리폴리에서 머무는 시간은 편안함과 여유로움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사실 갈리폴리에는 특별한 관광 명소가 없다. 그저 남부의 태양을 만끽하며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선탠을 하며 바다를 즐기면 된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며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작은 마을을 골목골목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해변의 노천카페에서 향기로운 와인을 즐기거나 상큼한 레몬 소다수와 함께 넓적한 피자 한 판 두둑하게 먹으며 이오니아의 달빛을 누리면 되는 곳이다. 남부 폴리아 사람들의 따스하고 넉넉한 미소와 함께.
Travel 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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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E 버스와 기차가 매일 1~2시간 간격으로 1대씩 레체에서 출발한다. 1시간 30분 내외로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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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지아르디노 세그레토 Il Giardino Segreto, 비밀의 정원
가족이 함께 운영해 순박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토마토 치즈 파스타, 갈리폴리의 전통 납작 파스타, 문어 튀김, 올리브 오일에 버무린 브로콜리 요리가 인상적이다.
address 안토니에타 데 파체 거리 114번지 Via Antonietta De Pace, 114
telephone 083 326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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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술라 Insula Bed & Breakfast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의 대저택을 개조한 곳으로, 잠시나마 귀족이 된 듯한 호사를 누려볼 수 있다.
address 안토니에타 데 파체 거리 56번지 Via Antonietta De Pace, 56
telephone 083 3201413
url www.bbinsulagallipol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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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 산책
베키아 다리 근처의 야시장에 들러보자. 바다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기념품들과 다양한 생활 소품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
Matera
폐허 같은 협곡을 따라 층층이 구멍이 뚫려 있는 수천 개의 동굴 거주지 사시.
그곳이 보여주는 엄숙한 전경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곳, 마테라.
이탈리아 남부 바실리카타Basilicata 주 아펜니노 산맥의 깊은 계곡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비로운 도시가 하나 숨어 있다. 이탈리아 소도시를 두루 여행해본 여행자들의 뇌리에도 일평생 지워지지 않을,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첫인상을 선사하는 곳은 단연코 이곳 마테라다. 마테라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매력적인 도시인 까닭은 다름 아닌 동굴 거주지, 사시Sassi 때문. 마테라가 둥지를 틀고 있는 그라비나 협곡 서쪽 기슭을 따라 신비로운 매력의 바위투성이 사시가 장관을 이루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폐허 같은 협곡을 따라 층층이 구멍이 뚫려 있는 수천 개의 사시가 보여주는 전경에 여행자는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하고 만다. 그래서 누구나 이 도시를 처음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다.
암벽 가장자리에 세워진 역사 깊은 도시 마테라의 동굴들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기거했던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골목길을 이따금씩 달리는 자동차만 없다면 마치 고대의 시간 속으로 갑자기 툭 떨어진 듯한 착각이 든다. 거친 협곡 사이 석회암 바위로 뒤덮인 지형은 도저히 인간의 삶을 위한 장소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바위 협곡을 따라 3천여 개나 되는 벌집 같은 석회암 동굴 속 삶을 선택했다. 그 옛날 마테라의 삶은 척박하고 힘겨웠음에 틀림없다.
마테라는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뛰어나고 완전한 선사시대 동굴 거주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 게다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성경의 고증을 통해 가장 사실적으로 조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마테라의 놀라운 장관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
옛날부터 ‘육지의 외로운 섬’이라고 불려온 마테라는, 도착하기까지의 여정도 그 명성만큼이나 어렵다. 바리까지 국철을 이용한 뒤, 바리 중앙역을 나와 광장의 왼쪽 건물에 있는 사철 ‘페로비에 아풀로 루카네Ferrovie Appulo Lucane’ 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특이하게 건물 2층에 승강장이 위치한 이 열차는 객실이 1~2칸뿐이어서 마치 놀이동산에서 타는 장난감 열차 같은 느낌을 준다. 마테라를 향하는 여행자들의 한껏 들뜬 공기가 조그마한 객실을 가득 채웠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남부의 햇살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으로 식혀가며 마테라에 대한 기대를 가슴에 품는다.
창밖은 온통 올리브밭 천지다. 유구한 세월 동안 남부의 모진 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버텨낸 올리브 나무들은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자라 있다. 분명 그 속에는 한 세기를 넘어선 시대의 변화를 목도한 나무들도 많을 것이다. 마테라에 가까워질수록 윤택한 땅은 울퉁불퉁한 암석들로 이루어진 협곡이 무작위로 늘어선 풍경으로 바뀌어간다.
마테라에서의 여정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하려면 신시가의 일반적인 숙소보다는 구시가의 사시에 머물러봐야 한다. 지도상으로는 마테라 중앙역에서 사시가 밀집해 있는 구시가까지 상당히 가까워보이지만 가파른 언덕길과 구불구불한 골목들로 인해 제대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마테라 중앙역에 도착한 후, 여행자들에게 사시를 숙소로 제공하고 있는 B&B 델 카살레Del Casale에 전화를 걸었다. 주인장 부부는 중앙역에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10분도 채 안 되어 차를 몰고 나타났다.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한 응대에 마치 고향집에 들른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시가의 복잡한 도로를 요령 좋게 달리던 차가 어느 순간 가파른 언덕 아래로 질주하며 모퉁이를 돌던 순간,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언덕 건너편 협곡을 따라 수천 개의 사시가 파노라마처럼 단일한 회색톤으로 펼쳐져 있었다. 주인장은 그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 바로 이 지점이에요. 모퉁이를 돌면 모두들 감탄사를 내뱉곤 하지요. 사실 이 풍경에 익숙한 나도 볼 때마다 감탄해요. 오늘밤 당신은 바로 저곳, 사시에서 머물게 될 거예요. 기대해도 좋아요.
주인장 내외는 언덕 아래 사시 중심가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우고, 얼핏 평범해 보이는 문을 열어 안으로 인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무척 넓었다. 거실, 침실, 욕실, 부엌과 침실 안쪽의 넓은 공간들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동굴 형태다. 하지만 전기 배선이나 상하수도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고, 갖가지 가전제품들도 적절히 배치되어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묵어 본 숙소 중 아마도 가장 넓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시로 통칭되는 구시가지는 크게 치비타Civita, 사소 카베오소Sasso Caveoso, 사소 바리사노Sasso Barisano, 세 지역으로 나뉜다. 치비타는 두 사소 지역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처음 이 도시의 기초가 형성된 곳이다. 동굴Cave이란 말에서 유래한 사소 카베오소는 마테라의 남쪽 암석 언덕에 위치한 마을이다. 또한 바리로 향하는 길에 놓여 있어 ‘바리’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사소 바리사노는 아직도 수많은 주민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다. 사소 바리사노의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치비타 지역의 중심 두오모 성당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성당 뒤 언덕으로 넘어가면, 사시 외곽도로가 나오고 그 아래로 그라비나Gravina 협곡이 길게 마테라를 감싸며 휘돌아나간다. 이 협곡 동굴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무려 기원전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스테르골라 오 피스톨라 광장Piazza Postergola o Pistola에 서면, 협곡 너머 비탈진 언덕을 따라 선사 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동굴 주거지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사소 카베오소의 전경이 펼쳐지고, 풍경의 하이라이트인 산 피에트로 카베오소 교회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산 피에트로 카베오소로 향한다. 교회 앞에서 바라보는 그라비나 협곡과 사시의 풍경은 여행자들의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장관이다.
산 피에트로 카베오소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올라가던 돌계단이 나온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는 그냥 걷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뜨거운 여름날 마테라의 동굴 교회나 돌계단을 걷다보면 마치 성경 속 예수가 살았던 2천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든다.
사소 바리사노에 비해 덜 개발되고 약간은 황폐한 느낌을 주는 사소 카베오소는 고달픈 삶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었을 이들의 맑은 영혼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사소 카베오소의 골목길을 걸어 오르면 국립 바실리카타 중세 현대 미술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박물관 옆 작은 광장인 피아체타 파스콜리Piazzetta Pascoli에 서면 사소 카베오소와 사소 바리사노, 그라비나 협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 서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옛사람들이 남긴 치열한 삶의 흔적에 존경 어린 경탄을 한다. 이곳에서 코르소 대로Via del Corso를 거쳐 비토리오 베네토 광장Piazza Vittorio Veneto에 이르면 구시가지가 끝나고 화려한 신시가지가 시작된다.
해 질 무렵, 베네토 광장의 파노라마 전망대에 가만히 서본다. 언덕을 따라 펼쳐진 무수한 사시 위로 어스름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를 엄숙함이 깃든다. 그것은 분명 고단한 환경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낸 마테라의 조상들에게 보내는 존경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캄캄한 어둠이 깃들다가 어느 순간 주황색 등불이 집집마다 켜지더니 거짓말처럼 두오모 성당 위로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문명의 이기보다는 허공에 환하게 빛나는 달빛이 마테라의 밤풍경에 더욱 제격이라는 걸 그 순간의 풍경 앞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사소 바리사노의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환한 보름달이 여전히 사시 위에 빛나고 있다. 그건 분명 고단한 삶 속에서도 결코 꺼트릴 수 없었던 마테라 사람들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마테라가 독수리 요새처럼 둥지를 틀고 있는 삭막한 무르지아 고원Murgia Plateau은 겉보기에는 인간이 살아가기에 너무나 척박한 땅이다. 하지만 이곳의 토질은 석회암이어서 쉽게 구멍을 뚫을 수 있었고, 공기가 접촉한 표면은 단단하게 굳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어떤 먹구름도 그 안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격언처럼 절망의 끝에는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