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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신서 1300
숙대를혁신으로 이끈 이경숙의 섬김리더십
1판 1쇄인쇄 2008년 4월 13일
1판 1쇄발행 2008년 4월 10일
지은이양병무 펴낸이 김영곤 펴낸곳 (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기획엄영희 편집 배소라 디자인 박선향 김진희 마케팅 주명석 영업 최창규
출판등록 2000년 5월 6일 제10-1965호
주소 (우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단지 518-3
대표전화 031-955-2100 팩스 031-955-2151 이메일 book21@book21.co.kr
홈페이지 Book21.com 커뮤니티 cafe.naver.com/21cbook
ISBN 978-89-509-1359-5 0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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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주)한국이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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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_ 양병무
고려대학교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KDI 주임연구원, 미국 이스트웨스트센터 연구위원, 경총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 대통령 자문 일자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인간개발연구원 원장, 숙명여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베스트셀러인 『감자탕교회 이야기』 『주식회사 장성군』을 포함, 총 30권의 책을 썼다.
bmyang@khdi.or.kr
“학교 가는 게 너무 행복해요.”
“총장님, 존경하고 사랑해요.”
저자는1년 동안 숙명여대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학생들의 이런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학생이 행복한 학교’가 있다는 데도 놀랐지만 이경숙 총장이 네 번이나 직선으로 숙대 총장에 선출됐다는 것 또한 우리나라 대학 역사에 남을 기록이었다. 대학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이기에 숙대의 혁신은 회자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책을 통해 ‘섬김리더십’으로 대표되는 이경숙 총장의 리더십이 14년 동안 어떻게 발휘됐는지, 숙대가 순간순간 고비마다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를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 교육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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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시작하며
교육의희망을 보여준 ‘주식회사 숙명여대’
숙명여대는 14년 전만 해도 평범한 여자대학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디지털대학의 선두주자, 학생들의 고객만족도 1위 대학, 대학행정혁신의 메카로 불리고 있다. 다른 대학들은 교육 혁신의 교과서로 숙대를 벤치마킹하고 있고 기업들조차 성공요인을 알아내고자 견학을 신청하고 있다. 도대체 숙대는 이런 놀라운 변화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먼저 주목할 것은 이경숙 총장의 섬김리더십이다. 이 총장은 ‘부드러운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로 네 번 연속 직선총장으로 선출됐다. 개성이 강한 대학교수 사회에서 네 번씩이나 총장으로 추대되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 풍토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대학교 총장 평균임기가 2.5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오너 총장이 아닌 4선 직선총장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한다. 4선 직선총장이라는 타이틀은 총장의 비전력, 실행력, 추진력을 가늠하게 한다. 또한 숙명여대가 보여주는 탁월한 성과는 그 타이틀의 정당성을 재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최장수 직선 총장, CEO 총장, 혁신 총장, 섬기는 총장, 부드러운 총장, 춤추는 총장, 디지털 총장, 공부하는 총장.
이경숙 총장을 지칭하는 이 말들의 원천은 섬김리더십이다. 이 총장은 학생과 교수, 직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냈다. 숙대혁신은 이렇게 총장, 학생, 교수, 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든 걸작품이다. 이 총장의 목표는 분명하다.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학생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 학교란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생각으로, 학생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열정을 쏟았다.
두 번째로는 ‘주식회사 숙명여대’라는 마인드다. 숙대는 ‘대학은 주식회사, 총장은 CEO, 교수와 직원은 임직원, 학생은 고객’이라는 마인드로 무장했다. 또한 경영마인드를 대학행정에 도입해 리더십개발원, 취업경력개발원, TESOL대학원, 음악치료대학원,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 등 국내 최초 또는 세계 최초를 만들며 캠퍼스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숙대가 계획하고 실행한 시설투자, 행정개혁, 교육서비스 등은 이런 마인드 혁신에서 비롯됐다.
숙대는 혁신의 구체적인 첫 단계로 1995년 제2창학을 선언, 2006년까지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가 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또 여기에 필요한 1,000억 원의 발전기금을 모금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1,000억 원 모금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학교 부지를 두 배로 늘렸고 21동이나 되는 건물을 신축했으며, 4동을 리모델링해 상당 수준의 시설 인프라를 구축했다. 나아가 세계 최고의 리더십대학을 목표로 정하고 2020년까지 대한민국 리더의 10%를 책임진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주식회사 숙명여대’라는 경영마인드가 없었다면 지금의 숙명여대는 존재할 수도 없다. 숙대의 이런 혁신은 혁신 무풍지대로 불렸던 대학사회에 개혁의 폭풍을 몰고 왔다. 또한 교육을 ‘서비스’ 개념으로 재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을 경쟁력으로 평가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대변혁을 가져온 것이다.
• 국가 고객만족도 1위 대학
• 6년간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개혁 추진 최우수대학 선정
• 국내 최초 유네스코 선정, 여성정보화를 위한 아태지역 국제프로그램 운영기관
• 세계 최초 모바일캠퍼스 구축
• ISO 9001, ISO 14001 대학 최초 인증 획득
• 국내 대학 최초 외자유치 성공
• 국내 최초 원격대학원 설립
• 행정혁신아카데미 개최
• 대학 최초 신문광고부문 은상 수상
위 업적은 1994년 이경숙 총장이 취임한 후, 14년 동안 숙명여대가 ‘최초’로 이룬 일들의 일부다. 이런 기적 같은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전국의 대학은 물론 기업의 관계자들까지 숙대로 몰려오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고위층이 우리나라 대학 중 유일하게 매년 숙대를 찾아오는 등 해외에서의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은 인재배출의 요람이기에 대학에서 솟아나는 희망은 곧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이어진다. 즉 대학이 변하면 대한민국이 변한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숙대가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와 세계 최고의 리더십대학을 목표로 이룩한 성과는 변화의 방향과 그 방법에 대한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취임 당시 엄청난 금액의 세금고지서를 받아들고 빚더미 위에서 허덕이던 숙대를 일으킨 이 총장의 눈물겨운 노력과 숙대인의 저력이 녹아 있다. 또한 ‘부드러운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섬김리더십을 바탕으로 숙대라는 이름의 배를 재출항시키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또 사람과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고 리더의 참된 조건은 무엇인지 알게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님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교수님, 직원선생님들, 학생들, 그리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신 외부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8년 3월 양병무
차례
글을 시작하며
1부 교육혁신의 대표브랜드, 숙명여대
1장 이경숙 총장, 숙대에 비전을 품다
7억 8,000만 원짜리 세금고지서
걸림돌을디딤돌로
드림캠퍼스를꿈꾸며
최고의리더십대학, 숙명여대
비전을이룰 재정을 확보하라
미래학에관심이 많은 문학소녀
2장 숙대를 혁신으로 이끈 섬김리더십
12년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를 가동하라
Vision: 꿈과 비전을 판다
Intelligence: 전문가를 인정한다
Communication: 총장이 알면 말단 직원도 안다
Time Management: 질적인 시간 관리를 한다
Open-mind: 섬김은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Responsibility: 모든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
Yes: 긍정은 찾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인생의등불을 만나다
2부 혁신의 깃발을 올리다
3장 마인드 프레임을 바꿔라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방법’을 찾자
‘할 수 있을까’에서 ‘할 수 있다’로
대학은주식회사, 총장은 CEO, 학생은 고객
대한민국리더 10%, 비전이 용트림한다
리더가먼저 리더십을 공부하다
가르치는것도 배워야 한다
소통의가장 아름다운 모습, 혼연일체
총장실카펫과 도서관 카펫
4장 새 술은 새 부대에, 행정 개혁을 단행하다
매듭을푸는 방식을 보여주다
행정혁신의청사진, SOC 21
대학도시스템이다
ERP시스템을 도입하다
시스템이리더를 만든다
의사소통센터, 창조적 모방으로 태어나다
행정혁신의메카로 등극하다
중국고위층을 감동시킨 책갈피 사연
5장 블루오션을 찾아라
꼬르동블루한국 분교를 세우다
국내최초, 음악으로 영혼을 치료하다
미국에서도인정받는 TESOL
숨은금맥 ‘여성’을 발굴하라
I세대를 위한 디지털캠퍼스로 거듭나다
위미노믹스의신세계 창조
모든길은 섬김리더십으로 통한다
민족과여성 빼고 모두 바꿔라
6장 캠퍼스에 미래와 문화를 담아라
드림캠퍼스실현되다
대자보를걷고 얼굴을 마주하다
숙대서비스에는유통기한이 없다
멘토를만나 인생의 길을 묻다
문화예술의랜드마크, 숙명여대
울타리를벗어나 세상과 소통하다
최초에도전한 숙명인
3부 세계를 향해 비상하다, 숙명여대
7장 숙명은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춤추는언니 총장님, 사랑해요
고객만족도1위 대학
리더라면숙명앰버서더처럼
연예인없는 축제를 열다
현명한그녀들을 위한 X파일
3억 원짜리 숙대 교문
8장 대한민국 교육에도 희망은 있다
전국최우수대학에 오른 약학대학
대학종합평가에서최우수대학으로 떠올라
여성질환은여성이 해결한다
우수한학생들이 몰려오다
세계로향하는 S리더십
내가본 숙명여대, 내가 만난 이경숙 총장
저는 심부름꾼입니다
글을 맺으며
감사의 글
7억 8,000만 원짜리 세금고지서
1994년 3월 31일 눈부신 봄날, 이경숙 총장의 취임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각계의 귀빈들이 보내온 축하 메시지로 취임식장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고, 이 날의 주인공인 이경숙 총장은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교의 총장이 된다는 것, 그것은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영광된 일이기도 했다.
축하 리셉션이 끝난 적막한 교정에는 총장의 대학 동창생들이 남아 있었다. 돌아가기를 못내 아쉬워하는 그들과 함께 총장실로 자리를 옮겨 환담을 나누었다.
“정말 축하해! 너무 자랑스럽다.”
“취임사에서 했던 말대로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를 만들 거라고 믿어. 우리가 응원할게!”
“그래, 고맙다. 너희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열심히 도와주고 기도해줘.”
동창들을 배웅하고 다시 돌아온 집무실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의자에 앉았다. 언젠가 모교 총장이 되면 정말이지 멋지게 한번 일해보리라던 꿈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총장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책상 위에 놓인 흰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누가 보낸 축하 메시지일까 궁금한 마음에 급히 봉투를 열었다.
‘7억 8,000만 원짜리 세금고지서’
봉투 속에는 상상도 못했던, 참으로 서글프기 그지없는 내용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며칠 뒤, 문제는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2억 3,000만 원의 연체료, 1억 2,000만 원의 벌금과 범칙금 등의 고지서가 빚쟁이 달려들듯 연이어 날아들었다. 게다가 학교 건물은 오래되고 낡아서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감돌았고 심지어 어떤 건물은 붕괴의 위험마저 안고 있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발목을 잡고 있는 세금폭탄과 낡은 건물들은 숙대의 쇠락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숙대는 1906년 조선왕조 순헌황귀비가 구국애족의 신념으로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여성사학이다. 황귀비는 고종의 후궁으로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를 당한 후 국모가 되었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생모로서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숙명여대의 전신인 명신여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명신고등여학교, 숙명고등여학교를 거쳐 숙명여자전문학교, 숙명여자대학에 이어 1955년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발전해오면서 이화여대와 함께 쌍벽을 이루며 한국 여성 사학의 양대 명문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남북분단 이후 학교재단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고 1960년대 중반부터는 문교부를 비롯한 국가 기관과 분쟁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교재정은 부실해졌고 운영은 어려워졌다. 누적된 재정 압박에 시달려 투자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다른 대학들의 상대적인 약진은 숙대를 과거의 영화에만 매달려 사는 볼품없는 뒷방노인네로 전락시켰다. 과거에 얽매인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구성원들의 불만도 점점 높아졌다.
허울뿐인 학교 모습에 학생들의 자존감과 자부심은 무너졌고 교수들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했고 대학 최고의 강성노조로 활동하고 있었다. 매년 임금인상을 놓고 파업이 계속되어 노사갈등은 깊어만 갔다. 학생들 역시 등록금 인상 반대로 학교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대학의 3대 주체인 교수와 학생, 직원들의 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동문들 역시 점점 초라해지는 모교의 모습에 실망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숙명과의 만남을 ‘숙명’이라고 자랑스러워하던 숙명인들은 점차 깊은 회의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숙명과의 만남은 피하고 싶은 ‘운명’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쩌다가 우리 학교가 이렇게까지 무너졌단 말인가?’
숙명이라는 이름의 배가 침몰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거센 풍랑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경숙 총장은 어떻게든 이 배의 운명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침몰의 위기에 놓인 숙명의 선장이 된 이상 이대로 가라앉을 수는 없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멎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고 있을 거라고 이 총장은 굳게 믿었다.
걸림돌을디딤돌로
취임의 기쁨도 잠시, 헤쳐나가야 할 난관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다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놓아둔 채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처한 환경과 문제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거릴수록 답은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진다. 총장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교수, 직원, 학생, 동문회의 현주소를 좀더 구체적으로 진단하기로 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당시 교수들은 열악한 학교재정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절망했다. 교수들의 허탈과 실망감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것이었다. 거기에는 미흡한 교육 여건, 비전의 결여, 타대학들의 약진에 따른 상대적인 위기의식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어떤 교수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학교에 가면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동료교수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들이 주조를 이루었다. 학교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연구실에 나갈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교수들에게 무엇보다 자신감과 의욕을 북돋워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체념, 무기력, 부정적인 분위기를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노력이 절실했다.
학생회도 학교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듯 학교에 대해 부정적이고 냉소적이었다. 캠퍼스 여기저기에는 대자보가 붙어 있어 더더욱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학교에 대한 자부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생들은 스스로를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지방 국립대학에 있다가 숙대에 온 한 교수는 “학생들이 참 불쌍해 보였다. 캠퍼스는 좁은 데다 학교에 돈도 없다 보니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등록금에 비해 학생들이 얻는 혜택은 부족했다”고 그때의 상황을 전한다.
동문회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문들은 언론을 통해 학교 소식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보도되는 학교 얘기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우연히 학교 소식을 듣더라도 희망적인 내용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 보니 동문들의 자긍심은 점점 추락하고 있었다. 더구나 졸업 후 가정주부로 사는 사람이 많아 언론의 보도가 아니고서는 학교 이름을 들을 기회도 많지 않았다.
동문들의 그런 분위기는 발전기금 모금 활동을 벌이면서 소재를 확인하는 단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아니 20년 동안 감감 무소식이더니, 첫 소식이 그래 겨우 돈 내라는 거에요?”
“우리 학교 요즘 뭐하는 거에요. 숙대가 있긴 있는 건가요?”
“다른 학교는 점점 커지고 발전하던데, 우리 학교는 오히려 퇴보하는 거 같던데요.”
학교를 움직이는 주체의 마음 상태가 이러했으니 학교 분위기는 마치 먹구름이 뒤덮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 같은 체념의 분위기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장기간 이어져 무기력과 짜증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학내에 자잘한 스트레스를 야기하기도 했다.
당시 숙대학보에는 거의 매호마다 학교 당국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하는 학생, 교수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숙대 중흥에 대한 안타까운 의견들이 지면을 덮었다.
여기에는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세계화와 개혁을 강도있게 추진했기 때문에 그 물결이 대학 캠퍼스에 몰아쳐 숙대의 구성원들에게도 혁신의 욕구를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숙명의 전통인 정직과 순수가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직과 순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산이 아니겠는가. 먹장 같은 구름만 걷어내면 그 값진 자산이 용트림을 하며 하늘 높이 솟아오를 것이라 기대하며 이 총장은 바탕이 순수하고 정직한 숙명의 전통이 살아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전 김옥렬 총장님과 정규선 총장님께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지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옥렬 총장님은 10개년 장기발전계획을 세우신 것은 물론 중앙도서관을 건립하셨고 용인에 12만 2,000평의 연수원 부지를 마련하셨다. 정규선 총장님은 연수원을 준공하고 새로운 교사를 증축하셨다. 두 분 총장님께서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를 정직, 투명하게 운영하시면서 숙명의 전통을 지켜주셨기에 숙대 혁신이 가능했다. 전임 총장님들의 경험과 고뇌를 이어받아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가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각 주체들이 토로하는 불만과 문제의식도 따지고 보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후에 이 총장은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답이 보였다. 걸림돌로 생각했던 문제들이 디딤돌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많은 문제들을 디딤돌 삼아 나가겠다고 마음먹으니 뜨거운 도전정신이 가슴에서 용솟음쳤다. 모든 문제는 ‘보기 나름’이었다.”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를 만들겠다는 꿈이 드디어 구체성을 띠고 용트림을 시작한 것이다.
드림캠퍼스를꿈꾸며
역사와 전통이라는 말이 때로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숙대처럼 오래되어 낙후된 학교시설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한 경우가 바로 그런 예이다.
입학식, 졸업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를 치루는 강당은 1958년 건립 이후 30년이 넘도록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우중충한 모습인데다 난방조차 되지 않았다. 총장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외부에서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강당이 너무 낡아서 초대한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난방조차 안 되는 곳에서 추위에 떨며 축하해 주는 손님들을 보며 마음이 편치 못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집주인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번은 기업인들을 초청해 숙대를 세계적인 명문여대로 만들겠다는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갑자기 총장실 전구가 ‘탁’ 하고 터지면서 전구 세트가 천장 아래로 내려앉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총장이 “바로 이런 상황들을 말끔히 해결하기 위해 모금을 하는 겁니다”라는 재치있는 말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민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총장실이 이랬으니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수십 년간 보수 한번 변변하게 못해 여름이면 비가 줄줄 새는 강의실이 적지 않았다. 학생들은 오래되어 초라하게 변한 책상과 걸상, 빛바랜 벽면, 난방이 되지 않아 손을 호호 불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실험실에는 부품이 없어 방치된 기자재가 널려 있었다. 어떤 기자재는 워낙 오래되어 부품이 아예 생산 중단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영화배우 신성일 씨는 아내인 엄앵란 씨가 숙대 출신인데다 딸도 역시 숙대에 입학했기 때문에 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학부모 자격으로 숙대를 방문해 둘러보고는 “아니 내 딸이 이런 시설에서 공부를 한단 말인가?” 하며 열악한 환경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화장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하니 그 처참한 환경을 짐작할 만하다.
초라한 교문 역시 학생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초창기 숙대 캠퍼스는 세 군데로 나눠져 있어서 교문이 세 개나 되었다. 또 벽돌 교문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낡고 금이 간데다 군데군데 허물어지기까지 해서 민망할 정도였다. 게다가 교문의 형태도 제각각이었고 밖에서 보면 본관 쪽 캠퍼스만 숙대 교정으로 보여 캠퍼스를 더욱 좁게 느껴지게 했다. 학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교문이 이 정도였다.
문제는 낡은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좁은 학교 캠퍼스도 문제였다. 당시는 학생 수가 적어서 그 정도의 규모로도 그럭저럭 지낼 만했지만 학생 수가 늘어날 것을 고려할 때 교지를 넓히는 일은 중요한 과제였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총장뿐만 아니라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바였다.
실제로 숙대의 명성을 듣고 지원을 한 학생은 “학교 캠퍼스를 보고 실망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환경을 바라보는 이 총장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학생들을 위해 어떡해서든 건물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어야 했다. 교지를 넓히는 일 또한 총장이 맡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과 비전을 심어주어야 할 캠퍼스가 오히려 꿈과 비전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바꿔야 하는 임무가 이 총장에게 주어졌다.
이 총장이 학부생이던 시절, 숙대의 목조건물을 볼 때마다 타 대학의 석조건물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 총장은 건물 하나하나를 대리석이나 화강암으로 만든 예술 작품처럼 짓고 싶었다. 또 각종 문화활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숙대를 단순한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드림캠퍼스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가슴 속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부심이 스며들도록 해주고 싶었다.
숙대 캠퍼스는 숙대생들만의 캠퍼스가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문화예술의 진원지로자리매김해야 했다.
최고의리더십대학, 숙명여대
‘현모양처 양성소’라는 이미지는 숙대의 씻을 수 없는 이미지로 굳어 있었다. 숙대 출신 하면, 예의 바르고 단정한 모습의 훌륭한 아내감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이고 조용한 여성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남성우위의 사회를 전제로 논의되는 인재상일뿐이다.
현모양처는 더 이상 숙명인의 모습이 될 수 없었다. 현모양처가 여성의 최고덕목일 수는 있으나, 성공한 남편과 자식의 이름에 가려 자신은 물론 출신학교의 존재나 가치마저도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숙대생의 상당수는 “현모양처를 배출하는 학교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고 회고한다. 그만큼 변화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것이다.
세계는 숙대에게 새로운 여성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교육 인프라로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벗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과감한 변신이 필요했다. 이를 감지한 이 총장은 ‘좋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숙대는 최초의 민족여성사학인 만큼 한국의 여성교육을 선도한다는 이미지와 함께 현모양처 양성학교에 걸맞는 반듯한 이미지도 고수해야 했다. 물론 새 시대가 요구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리더십도 담아야 했다. 심사숙고한 끝에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섬기는 리더십을 갖춘 세계 속의 한국여성’이란 인재상이 탄생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숙대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로 이미지 혁신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혁신이라고 하면 과거를 모두 부인하고 미래에만 집착하는 경향으로 알고 있으나, 가치 있는 혁신은 지킬 것과 버릴 것을 명백히 구분한다. 숙대는 전통과 여성이라는 장점을 살리면서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혁신의 첫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울 수 있었다.
‘세계 최상의 명문여대’
‘섬김리더십’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세계 최고의 리더십대학’
숙대는 분명한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이 총장은 리더십 특화, 글로벌화, 융합화의 전략으로 학생들의 독특한 재능과 무한한 잠재력을 키우고 인격을 함양토록 지원할 것임을 천명했다.
“무엇보다 차별화되고 체계적인 리더십 교육과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교양뿐 아니라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지식도 겸비할 수 있는 교과 과정,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 스스로가 명확한 인생 로드맵을 설계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또한 해외 선진 대학들과의 교류를 확대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과 소양을 쌓도록 지원할 것이다. 또한 우수 교원을 확보함은 물론, 그들이 독창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협조하고 창의적인 교수학습방법도 적극 도입할 것이다. 그래서 숙대를 세계적인 리더십 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겠다.”
이 총장은 “리더십이 있어야 자기 자신을 이끌고 남도 이끌 수 있다. 리더 한 사람이 바로 서면 그 조직이 산다. 조직을 살리는 리더십은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섬김리더십이다”라며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숙대는 2020년까지 대한민국 리더의 10%를 배출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이 비전은 비단 숙대만의 비전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여성 인력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여성의 경쟁력은 개인의 경쟁력을 넘어서 조직의 경쟁력,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글로벌 여성 리더를 양성하겠다는 숙대의 비전은 국가의 비전인 것이다.
비전을이룰 재정을 확보하라
숙대가 겪는 시련과 고통의 근원은 결국 재정 문제로 귀착되었다. 재정이 부족하니 교직원에 대한 대우가 좋을 리 없고, 투자를 못하니 시설이 낙후할 수밖에 없다. 좁은 교지 역시 재정문제와 연관된다. 숙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재정적 지원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비전과 목표도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숙대가 세운 마스터플랜의 성패는 결국 일정 수준의 재정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일이었다.
학교의 재정은 학교 재단, 학생 등록금, 동문회, 외부인의 기부금으로 이루어지는데, 숙대는 이 네 경로가 모두 여의치 않았다. 재정의 원천이 마르니 학교 운영에 심각한 타격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
숙대의 경우, 학교 재단에는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었다. 해방 이후 대통령제가 도입되면서 조선 황실은 사실상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상태였으므로 숙대는 그야말로 주인 없는 학교였다. 더욱이 남과 북으로 나눠지면서 상당 부분 학교 부지의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조선 황실이 사라지고 학교에 투자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재정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홍익대의 이면영 이사장은 “종교단체가 지원하는 학교나 돈 많은 독지가가 학교를 건립한 경우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적다. 그러나 숙대처럼 주인이 없는 대학은 수입원이 학생들의 등록금뿐이므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런데다가 1994년 당시 숙대의 전체 학부 학생수는 약 6,800명, 규모면에 있어서도 다른 종합대학과 비교가 안 되었다. 그러니 등록금 만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란 버거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동문회의 역할 또한 미미했다. 동문의 90%가 가정주부이다 보니 학교발전기금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역사에 비해 동문의 숫자도 매우 적어서 4만 3,000여 명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