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 신서 3213
오프라인 비즈니스 혁명
1판 1쇄 인쇄 2011년 3월 4일
1판 1쇄 발행 2011년 3월 11일
전자책 발행일 2011년 5월 11일
지은이 정지훈 펴낸이 김영곤 펴낸곳 (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기획·편집 장보라 본부장 이승현 마케팅 문병구 도건홍 박민준 이총석 김정규
디자인 엔드디자인
출판등록 2000년 5월 6일 제 10-1965호
주소 (우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단지 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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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정지훈
ISBN 978-89-509-2969-5 13320
E-ISBN 978-89-509-3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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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컴퓨터 세상을 지배하던 IBM의 회장은 “전 세계에 컴퓨터는 다섯 대만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당시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 말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두 명의 천재가 설립한 애플사의 애플II에 의해 개인용 컴퓨터의 세상이 열리면서 시대를 완전히 잘못 읽은 말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버렸다.
최근엔 이러한 컴퓨터의 기능과 무선접속이 가능한 인터넷을 무기로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이 역시도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다. 최초의 휴대폰은 벽돌 정도의 크기에 가격도 1000만 원을 호가하는 부유층의 상징으로 치부되었고, 무선 인터넷 인프라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으로 과거 수퍼컴퓨터에서나 활용 가능했던 수준의 컴퓨팅 파워와 무선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스캐너나 컬러 프린터 역시 비슷한 단계를 거쳤다. 처음 상용화될 때만 하더라도 수천만 원의 가격대에 팔렸지만, 이제는 몇 만 원 정도의 부품화 단계를 거쳐서 복합기라는 이름의 하나의 기능으로 팔리고 있다. 이와 같이 과거에는 불가능했다고 생각했던 상황들이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현실화되는 과정을 우리는 계속해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변화는 무엇일까? 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 웹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이미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사회의 서막은 열렸다. 다음의 거대한 물결은 더 이상 단순한 인터넷이나 IT 기술만의 변화에 있지 않다. 바로 가장 전통적인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제조업, 서비스업, 유통업이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IT 기술의 발달과 스마트폰, 소셜 웹이 세상을 바꾸는 인프라의 역할을 하면서 나타나게 될 거대한 산업변화의 물결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10년 1월에 출간한 《제4의 불: 휴먼에너지, 미래를 이끌어갈 원동력》(열음사)을 집필 중에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는 패러다임 변화가 전통적인 제조업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하여 기술하다가 이를 전통산업 전반으로 확대해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담아내고,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동기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2010년 1월 말에 《롱테일 경제학The Long Tail》으로 유명한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와이어드Wired>의 커버스토리로 쓴 ‘다음 산업혁명, 원자들이 새로운 비트다In the Next Industrial Revolution, Atoms Are the New Bits’라는 제목의 새로운 제조혁명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하였다. 이 글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탓에 ‘원자가 비트를 만났을 때’라는 가제를 붙이고 자료를 조사하고, 블로그에도 글을 포스팅하면서 진행하였는데, 어느 순간 단순히 제조업에 국한되기보다는 소셜 커머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유통산업의 부상과 더 나아가서는 전통 서비스 산업과 경영방식의 변화에까지 써보자는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1부에서 전통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다양한 기술의 발전에 대해 다루고, 2부에서는 제조, 3부에서는 유통과 광고, 마케팅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기업의 경영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였다.
다루는 내용의 범위가 확대된 탓에 새로운 책의 제목을 정하기가 어려워서 무척이나 고민을 하였는데, 아끼는 후배인 김재연님의 새로운 책 《또 한 번의 권력이동, 소셜웹 혁명》에 추천사를 써주기 위해서 원고를 읽다가 ‘꿈은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다’라는 무척 좋은 제목의 모티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역시도 필자와 같이 결국 최근의 변화의 물결이 결국에는 오프라인으로 수렴하게 될 것을 예감하였고, 꿈과 오프라인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 들려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21세기북스 편집팀과의 협의를 통해 탄생한 제목이 바로 ‘오프라인 비즈니스 혁명’이다.
최근의 인터넷, 모바일, 소셜 웹, 스마트폰, 클라우드 등 IT 기반의 변화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만져지지 않는 가상공간에서만 떠돌아서는 안 된다. 결국 세상에서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물건들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물건과 사람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구현되어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때 진정한 혁명이 시작된다. 이 책에서는 이런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과거 산업혁명을 통해 에너지와 내연기관에 의한 생산성 혁신이 일어난 것이나, 철도 등의 교통인프라가 사회전체를 변화시킨 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이런 변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 전반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은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끌어내는 인프라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수많은 파생혁신이 뒤를 따르면서 우리 사회는 수백 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철학과 삶의 방식, 그리고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최근의 인터넷, 모바일, 소셜 웹, 스마트폰, 클라우드 등도 결국에는 인프라가 바뀌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인프라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되고 이들을 엮어내는 순간에 과연 어떠한 방식의 파생혁신이 뒤따를 것인지 조금이나마 그려낼 수 있다면,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을 통해 미래 구상을 현실화시키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과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가는 것에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끝으로 언제나 정신없이 바쁜 남편과 아빠를 믿어주고 지원해주는 나의 아내 서가원과 우리 아이들 정선우와 정민서, 그리고 양가의 부모님들, 집필활동을 포함한 외부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이왕준 이사장님 이하 관동의대 명지병원의 식구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에서 커다란 지원을 해주신 21세기북스의 스태프들과 출간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2011년 2월 18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KTX 기차 안에서
정지훈
인터넷의 혁신이 이제는 제조와 유통의 혁신을 부르고 있다. 지금까지 웹, 그리고 스마트폰이 촉발시킨 모바일 혁명에 이어 앞으로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꿀 변혁은 바로 전통적인 제조, 서비스, 유통산업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혁의 징조가 벌써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있다.
1부에서는 이런 혁신을 일으키는 변화의 원동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소비자 중심의 사회와 새로운 경제이론의 부상, 그리고 프로슈밍, 롱테일, 바이럴은 모두 나노경제학을 대표하는 말이다. 소셜 웹, 스마트폰, 그리고 증강현실과 3D 프린터 등의 기술혁신을 만나면서 나노경제학은 그 실체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개개인 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나노경제학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향후 10년을 좌우하게 될 혁신의 정체와 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1부에서 그 실체를 만나보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현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하단에는 일상용품Commodities이 있었다. 일상용품이란 땅 위에서 찾아내거나 캐내거나 기르는 등의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동물, 광물, 식물 등을 의미한다. 이를 열린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인간은 삶을 지속하였고, 이것이 농경제의 기본이 되었다. 이런 형태의 경제구조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는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상품Goods이라는 것이 경제의 기본이 된다. 이를 위해 일상용품은 원자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갔다. 이제는 상품도 일상용품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서 사람들은 상품과 과거 의미의 일상용품을 유통 채널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들을 얼마나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대량생산에 대항하는 소규모 맞춤형 서비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서비스산업이 나타난다. 서비스산업의 종류는 일상적인 서비스부터 정말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급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지난 20년 정도를 되돌아보면 이러한 서비스산업도 점차 일상용품화되고 있다. 전화나 인터넷 서비스, 패스트푸드 식당, 미용실 등도 가격과 서비스를 규격화하고 일상적인 가격을 붙여서 경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로 넘어가게 될까? 서비스가 맞춤화된다면? 새롭게 디자인한 서비스가 특정한 사람에게 아주 딱 맞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것이 바로 이 순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것이 같은 가격으로 제공될 때, 가격과 가치가 일치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경험의 가치로 치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각 개인이 원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경험experience이다. 앞으로는 경험이 경제가 제공하는 것의 중심이 될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본다면, 제품의 경우에는 보통 소유 개념이 들어 있어서 따지고 보면 정해진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용을 통해 어떤 경험의 가치로 치환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서비스는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과 연관된다. 그렇다면 제품이나 서비스의 경계를 넘어서 직접 경험의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구매 또는 공유하거나 잠시 이용하는 종류의 경제 시스템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훨씬 공정하고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다.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 앞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에는 언제나 소비자의 감성이 녹아 들어간다. 소비자와 관련한 경험경제를 강조하는 조셉 파인Joseph Pine은 그의 TED 강연에서 경험경제 시대의 핵심은 진정성authenticity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사업을 영유하는 기업의 진정성과 해당 조직 및 사업의 가치가 실제와 부합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비자의 가치 창출과 이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소비자 중심주의를 주창하는데, 그가 강조하는 진정성이라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소셜 웹 시대의 투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시스템 변화와도 그 맥이 닿아 있다.
광고가 사실과 동떨어질 때,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을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된다. 과거와 같이 정보가 개방되지 않고, 비교적 제한된 경험을 하던 시기에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광고와 관계없이 훨씬 나은 경험을 하고 나면, 과거에 형편없는 경험을 제공한 기업이나 사업체, 서비스 등은 진정성과 신뢰를 잃게 된다. 진정성은 광고로 만들어낼 수 없다.
스타벅스를 경험경제의 가치를 적용해서 생각해보자. 스타벅스가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는 무엇일까? 기본은 커피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 핵심은? 제품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커피 콩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용품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커피 콩의 가격은 몇십 원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볶아내고 갈고 포장해서 상품진열대에 올려놓으면 1인분에 몇백 원 수준으로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그에 덧붙여 스타벅스의 분위기를 가지고 커피를 만들어서 서비스한다면 이제는 몇천 원이 된다. 이런 커피 한 잔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것은 감성이고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된 경험이다.
신뢰와 경험경제의 시대
우리는 이제 신뢰와 경험경제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경제 시스템에서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행복을 찾기 위해 가지고 있는 시간과 돈을 쓰며,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와 사업을 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제공하는 가치가 진정성의 토대 위에서 만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또한 이런 사회는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진정성과는 관계없이 소비자를 기만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즈니스라는 미명 아래 돈을 거두는 생각만 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은 접을 때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얄팍한 속임수가 통하지 않을뿐더러, 진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과 기업은 일반 대중에게 외면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
나노경제학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미래학과 관련하여 가장 처음 집필한 책인 《제4의 불: 휴먼에너지, 미래를 이끌어갈 원동력》에서부터 이용한 것으로, 필자가 바라보는 미래의 경제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용어이다. 나노nano는 10억분의 1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흔히 아주 미세한 분자 수준에서 조작하는 나노 기술과 관련하여 많은 미래 관련 서적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필자는 미래의 경제학을 이러한 나노의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는 수많은 개개인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재화, 노하우 등을 생산과 동시에 소비하는 프로슈밍prosuming 현상, 즉 자신을 위한 생산임과 동시에 남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형태의 매우 느슨하게 결합된 네트워크가 동적으로 결합했다가 끊어지는 현상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결국 개개인이 자율적이면서도 대단히 생산적인 중요한 기준점이 되어 여러 시나리오와 이벤트, 그리고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반응하는 극도의 효율적인 시스템이 나타날 것이며, 이런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집단이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마침내 미래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진보한 인터넷 환경과 기술 플랫폼들은 수백만 가지의 소규모 사업을 가능하게 만드는데,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매시업Mashup(웹으로 제공하는 정보와 서비스를 융합하여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데이터베이스 등을 만드는 것)이다. 개개인의 역량이 모여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나노경제학이란
이러한 개념은 소위 웹 2.0을 언급하면서 가장 큰 특징의 하나로 이야기하는 롱테일 현상과 그 맥이 닿아 있다. 각각의 개인이나 소규모 사업 단위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과거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대중과 매스mass로 상징되는 대량생산 및 유통·배포에 의한 시스템이 현재까지의 산업사회를 이끌어온 셈이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은 인터넷을 통해 개인이나 소규모 단위의 경제 시스템들이 실시간 네트워크화되고 바이럴 효과에 의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대규모 유행과 전파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경제·경영 이론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를 포괄적으로 ‘나노경제학Nano-Economics’이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다. 구글을 통해 찾아보니 나노경제학이라는 용어가 쓰인 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과학 분야의 나노 기술에서 파급되는 여러 산업과 경제학에 대해 언급하는 쪽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일부는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과 유사한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정보화진흥원(구 한국전산원)에서 발간된 2006년 <NCA Issue Report> 11호에 실린 ‘롱테일과 나노경제’라는 제목의 글에서 롱테일 경제학을 중심으로 한 사례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대량생산, 대량판매의 매스경제에서 아주 사소한 특정 소비자들이 주역으로 부상하는 나노경제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나노경제를 소비자 개개인의 필요에 정확히 부응하는 서비스와 정보 등을 제공하며 개인 및 소량 단위의 거래 규모를 확대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셜 웹 시대, 개인 주도의 경제가 부상할 것
소셜 웹 시대에는 개개인의 기여와 이들이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나타내는 효과가 시장 우위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며, 마케팅과 유통의 측면에서도 사용자의 소문 및 평가에 의한 소셜·바이럴 마케팅 및 소셜 쇼핑이 일반화될 것이다.
나노경제학을 굳이 표현하자면 아마도 ‘롱테일 경제학+바이럴 경제학+링크(네트워크)의 경제학+매시업 경제학+알파’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전통적인 경제학을 구분할 때에도 거시경제Macroeconomy와 미시경제Microeconomy로 나누었기에, 나노경제Nanoeconomy라는 용어가 전체적인 개념을 표현하기에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소비자 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나노경제학의 중요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결국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 경험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직접 참여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프로슈밍 현상을 일으키며, 과거에는 거대한 회사들이 대량으로 생산하고 유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들을 만나볼 수 있는 롱테일, 그리고 소비자들이 직접 대규모 유행을 일으켜 마케팅 및 영업활동을 대체하는 바이럴 현상은 나노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원칙으로, 소비자 중심의 경험 및 신뢰 기반의 경제와도 그 맥락이 일치한다.
나노경제학과 앞으로 소비자 중심의 사회로의 변화를 앞두고 가장 중요한 원칙이 바로 프로슈밍이다. 이 용어는 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에서 나온 것으로, 생산Produce과 소비Consume를 동시에 한다는 의미로 돈 탭스코트가 1996년 저술한 《디지털 경제The Digital Economy》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이다. 프로슈머의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 사회에 적용되고 있으며, 이 책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DIYDo It Yourself 관련 산업의 유행과도 그 맥이 닿아 있다.
슈퍼마켓에서 시작된 프로슈밍
이렇게 거창하게 프로슈머와 프로슈밍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적인 소비활동 자체의 변혁이 일어났던 최초의 프로슈밍 사건은 1916년 미국에서 일어났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커다란 유통 체인이 발달하지 않았고, 주로 작은 식료품 가게나 슈퍼마켓과 같은 형태의 유통업체들이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가게에서 물건을 사려면 오늘날의 약국에서처럼 일단 줄을 서서 원하는 물건을 이야기하면 점원이 그 물건을 찾아서 가져다 주고 계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이것은 한국에 한정된 이야기로, 오늘날 미국의 약국 체인에서는 소비자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상품을 고른다).
이런 방식의 상점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람이 바로 클라렌스 사운더스Clarence Saunders이다. 그는 오늘날에는 아주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하였는데,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상점의 물건 진열대로 들어와서 물건을 고르고, 이를 계산해주는 방식을 허용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은 원하는 물건을 쉽게 고를 수 있었고, 가게 주인들은 점원을 적게 고용해도 되었기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되었다. 이에 고무된 사운더스는 이러한 셀프서비스 슈퍼마켓의 개념을 특허까지 내게 된다. 이것이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 가장 깊숙이 들어와 있는 프로슈머 개념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소비자Consumer가 점원Producer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예 계산대에서도 직원들이 필요 없어질 모양이다. 유럽에서는 마트에 들어갈 때 포터블 스캐너를 들고 들어가서, 자신이 고른 물건을 모두 계산하고 마지막에 나갈 때 자신이 알아서 정산을 하는 새로운 방식이 보급되고 있고, 미국에서는 홈디포Home Depot를 시작으로 계산대에 점원이 아닌 무인계산대가 있어서 물건을 산 사람들이 직접 스캔을 하고 계산하는 셀프 체크아웃Self checkout 시스템을 적용하는 유통업체들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의 무보수 프로슈머의 역할이 더욱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무보수 프로슈머의 생산성을 이용하는 기업은 바로 아마존Amazon.com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존의 소비자들은 서적과 음반에 대한 리뷰, 개인의 의견 등과 같은 소중한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회사에서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나열할 뿐 모든 유통 활동을 소비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거의 없다.
이처럼 프로슈머 경제는 소리 소문 없이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고 있다. 작은 발상의 전환 하나가 새로운 경영과 효율, 그리고 미래형 기업으로 변신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로슈머가 함께 키우는 기업, 레고
프로슈머와의 관계에 있어 가장 모범 사례가 되는 기업은 바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기업인 레고LEGO이다. 레고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작은 플라스틱 벽돌 조각을 이용해서 장난감을 조립하도록 하는 회사였지만, 그 영역이 점점 넓어져서 이제는 마인드스톰Mindstorm과 같이 거의 반 컴퓨터-로봇 부품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인드스톰이라는 제품은 그 첨단성에서도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제품이지만, 기업 문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마인드스톰은 출시되자마자 성인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오래지 않아 사용자 그룹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마인드스톰 로봇 시스템을 완전히 분해해서 센서, 모터, 제어장치 등을 새롭게 조립하고, 프로그래밍도 다시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조립 제품들을 만들었다. 이들 그룹은 자신들의 성취를 다른 모든 마인드스톰 사용자들에게 전파하고 싶어서, 레고 본사에 자신들의 노하우와 조립 방법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다.
이때 레고 본사의 첫 번째 반응은 황당하게도 “소송을 걸겠다”는 것이었다. 레고 본사 측은 자신들의 노하우나 앞으로의 제품 라인업과 관련한 핵심 역량이 외부인들에 의해 침해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해킹을 통해 컨트롤러를 재프로그래밍한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레고 본사의 반응에 사용자 그룹은 당연히 극렬하게 반발했고, 결국에는 레고가 입장을 선회해서 사용자들의 제안을 제품에 반영을 하기로 하였다. 레고가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실제로 소비자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게 되자, 레고는 공격적으로 소프트웨어 사용허가 계약서에 해킹할 권리까지 넣으면서 마음껏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을 장려했다. 거기에 더해 마인드스톰 웹페이지http://mindstorms.lego.com를 따로 꾸며 사용자들이 소프트웨어를 원하는 대로 배포하고 수정하도록 장려하였다. 이 웹사이트에서 고객들은 마인드스톰 SDKSoftware Development Kit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자신이 만든 완성품의 소프트웨어 코드, 필요한 부품 등에 대한 상세한 명세를 올릴 수 있다.
각각의 고객들이 새로운 작품을 하나 올릴 때마다 마인드스톰의 가치는 실제로 조금씩 상승한다. 공짜로 일을 해주는 수많은 연구개발자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2005년 마인드스톰의 새 버전인 NXT를 출시하면서 레고는 또 하나의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동안 마인드스톰 커뮤니티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한 사용자 4명을 거의 1년 동안 사실상 레고 직원으로 일하게 한 것이다. 그들의 참여에 의해 발표된 NXT는 현재까지도 가장 잘 만들어진 로봇 개발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고, 수많은 창작물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마인드스톰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레고는 전통적인 블럭 키트에도 “고객 중심의 개발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이 직접 레고세트를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가 있는데, 레고의 가상공장에 들어가서 맞춤형 모델을 설계, 공유하고 구매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3D 모델링 프로그램Lego Digital Designer을 다운로드하고, 이를 이용해서 작품을 창작한 뒤에 조립 설명서와 키트를 업로드하면, 자신의 모델을 필요한 부품과 함께 구매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이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이제 레고는 본사에 있는 제품 설계자 100명이 만드는 제품이 아니라,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창의력을 활용하는 작품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이와 같이 미래에는 소비자들의 참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업에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소비자들을 단순히 돈만 내는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협력과 상생을 하는 동료로 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미래의 나노경제학 원칙 중에서 프로슈밍과 함께 중요한 나머지 2가지 원칙이 롱테일long tail과 바이럴viral이다. 프로슈밍이 전통적인 소비자와 공급자의 시각과 역할의 새로운 원칙으로 자리매김한다면, 롱테일과 바이럴은 각각 유통·시장과 광고·마케팅의 새로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유통의 원칙으로 중시되는 롱테일
유명한 조직 이론 중에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인 파레토가 주장한 “80:2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 중에서 파레토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원래의 내용은 “부의 80%는 인구의 20%가 소유한다”는 것이지만, 원인을 제공하는 20%가 80%의 효과를 일으킨다는 형태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매출의 80%는 20%의 상품에서 나온다”, “회사 성과의 80%는 20%의 우수한 인원으로부터 나온다” 등이 있다. 파레토 법칙은 인사와 영업, 관리 등 모든 영역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결국 “소수가 중요하고, 대다수는 불필요하다”라는 인식을 낳게 되고, 이러한 측면을 부각하여 일부에서는 파레토 이론을 “핵심 소수의 법칙 law of the vital few”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법칙을 신봉하는 많은 기업들은 불필요한 80%를 무시하면서 중요한 20%의 자원에 집중하는 경영 전략을 펼치게 되고, 80%에 역량을 넣어봐야 투입된 비용도 못 건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직도 이 원칙은 건재하며, 많은 경우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서점을 예로 들어도 대부분의 매출은 베스트셀러에서 발생한다. 잘 팔리지 않는...